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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요즘 뭐하세요? / 문정희

by kimeunjoo 2011. 4. 13.

 

 

 

 

 

 

요즘 뭐하세요? / 문정희

 

 

누구나 다니는 길을 다니고

부자들 보다 더 많이 돈을 생각하고 있어요

살아 있는데 살아있지 않아요

헌옷을 입고

몸만 끌고 다닙니다

화를 내며 생을 소모하고 있답니다

몇 가지 물건을 갖추기 위해

실은 많은 것을 빼앗기고 있어요

충혈된 눈알로

터무니없이 좌우를 살피며

가도가도 아는 길을 가고 있어요

 

 

 

거짓말 / 문정희

 

가령 강남 어디쯤의 한 술집에서

옛사랑을 다시 만나

사뭇 떨리는 음성으로

"그동안 너를 잊은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면

그것은 참말일까

그 말이 곧 거짓임을 둘 다 알아차리지만

그 또한 사실은 아니어서

안개 속에 술잔을 부딪칠 때

살아온 날들은 거짓말처럼

참말처럼 사라지고

가령 떠내려가 버린 그 많은 말들의 파도를

그 덧없음을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때 우리는 누구일까

시인일까

 

 

 

부부 / 문정희

 

부부란 여름날 멀찍이 누워 잠을 청하다가도

어둠 속에서 앵 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나머지를 어디다 바를까 주저하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함께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 보는 사이이다

 

서로를 묶는 것이 거미줄인지

쇠사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부부란 서로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오도 가도 못한 채

죄 없는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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