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 조오현
새 떼가 와도 손 흔들고 팔 벌려 웃고
사람이 와도 손 흔들고 팔 벌려 웃고
남의 논 일을 하면서 웃고 있는 허수아비.
풍년이 들거나 흉년이 들거나
― 논두렁 밟고 서면 ―
남의 것이거나 내 것이거나
― 가을 들 바라보면 ―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나도 웃는 허수아비.
사람들은 날더러 허수아비라 하지만
손 흔들어주고 숨 돌리고 두 팔 쫙 벌리면
모든 것 하늘까지도 한 발 안에 다 들어오는 것을.
할미꽃 / 조오현
이른 봄 양지밭에
나물캐던 울 어머니
곱다시 다듬어도
검은 머리 희시더니
이제는 한줌의 귀토(歸土)
서러움도 잠드시고
이 봄 다 가도록
기다림에 지친 삶을
삼삼히 눈감으면
떠오르는 임의 樣子
그 모정 잊었던 날의
아, 허리 굽은 꽃이여.
하늘 아래 손을 모아
씨앗처럼 받은 가난
긴긴 날 배고픈들
그게 무슨 죄입니까.
적막산 돌아온 봄을
고개 숙인 할미꽃
아지랑이 / 조오현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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