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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할매 말에 싹이 돋고 잎이 피고 / 고재종

by kimeunjoo 2011.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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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말에 싹이 돋고 잎이 피고 / 고재종

고들빼기는 씨가 잔게 흙에다 섞어 뿌리고
도라지는 잔설 있을 때 심거야 썩지 않는다네
진안장 귀퉁이 주재순 할매의 씨앗가게
콩씨 상추씨 아주까리씨며 참깨씨랑
요모조모 다 있는 씨오쟁이마다 쌔근거리는 씨들
요렇게 햇볕 좋고 날 따수어야 싹이 튼다네
흙이 보슬보슬해져야 간지럼도 태우고
보슬비도 와서 촉촉해져야 쑥쑥 자란다네
세상에 저 혼자 나오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다 씨가 있어야 나온다는 할매 말에
금세 수숫잎이 일렁이고 해바라기가 돌고
배추가 깍짓동만 해지고 참깨가 은종을 울리는
장터, 이제 스스로는 무얼 더 생산할 수도 없이
유복자가 해준 틀니에 등은 온통 굽었는데
나는 작은 게 좋아, 요 씨앗들이 다 작잖아,
요것 한 줌이면 식구들 배불리 먹인다는 할매는
길 걸을 때면 발길 닿는 데마다 씨오쟁이를 열어
갓씨 고추씨 오이씨 죄다 뿌린다네
할매에겐 땅 한 뼘 없어도 걸어댕겨 보면
천지에 온통 오목조목 씨뿌릴 땅이어서
어느 누가 거두어 가든 상관 않고 뿌린다네
누가 됐든 흡족하게 묵으면 월매나 좋겄냐고.

 

 

 

 

분통리의 여름 / 고재종

 

닷새 만에 헛간에서 발견된

월평할매의 썩은 주검에서

수백 수천의 파리떼가 우수수,

살촉처럼 날아오르는 처참에 울고

 

빈대 뛰는 온 방안 뒤지고 뒤져

찾아낸 전화번호 속의 일곱 자녀들

기름때 묻은 머리로 하나 둘 달려와

뒤늦게 뉘우치며 목놓는 아픔에 울고

 

급기야 상여를 멜 남정네들 모자라

경운기로 울퉁불퉁 북망길 떠난 할매

삭기로 파놓은 구렁에 묻히는

그 험한 종말에 또 울었지만

어디 그뿐이랴 이 사양의 마을

 

그 어디건 헐린 담장, 텅 빈 마당에

개망초 눈물꽃은 흐드러지고

뻐꾹새 피울음은 종일 쏟아지고

 

이제 불과 예닐곱집 연기나는 곳

퀭한 눈만 남은 또다른 월평네들의

간단없는 해소기침만 너무 질겨서

사방 산천 진초록도 목숨껏 노엽고

 

 

고재종 『날랜 사랑』(창비시선)

 

 

 

 

 

골프군 러브호텔면 가든리의 화훼농 김씨의 꿈 / 고재종

 

 

그래! 나도 이참에 꽃농사 거두면 아반떼 하나 뽑겠다던,

그 차에 읍내 태양다방 화자년 태우고 한바탕 씽씽 밟겠다던,

나라고 맨날 일로만 살 수 있겠느냐던 화훼농 김씨의 꿈,

그가 키운 장미처럼 붉었지. 아무렴! 그렇게 달려서,

뭐 도회놈들만 줄창 가는 게 아닌 가든집에도 가겠다던,

가서 갈비도 굽고 포커도 치겠다던,

사람일 모르는데 언제까지 이럴 순 없잖느냐던 화훼농 김씨의 꿈,

그가 키운 백합처럼 환했지.

그래그래! 그러곤 샛강변 러브호텔로 직행하겠다던,

그 쌩통같은 화자년 팍팍 죽여주겠다던,

가능하면 그 누구라도 구워삶아서,

국민 스포츠의 하나인 골프도 배워야겠다던 화훼농 김씨의 꿈,

그의 하우스 안의 황국처럼 부풀었는데, 그랬는데,

아뿔사! 이 웬 재변인가,

그날 그가 그냥 설레는 사이 전기조작을 잘못해서,

온풍기가 터져서, 화훼농 김씨의 꿈, 그 화염으로 더욱 휘황했던,

그날따라 뒷동산 골프장에선 그 꿈의 백구도 더욱 눈부시게 날았다던,

골프군 러브호텔면 가든리의 이야기......가 사실이냐구요?

정말 사실이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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