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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눈물 / 피천득

by kimeunjoo 2011. 5. 19.

 

 

 

 

 

눈물 / 피천득

 

 

간다 간다 하기에

가라 하고는

 

가나 아니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아라

 

 

 

너는 아니다 / 피천득

 

너같이 영민하고

너같이 순수하고

 

너보다 가여운

너보다 좀 가여운

 

그런 여인이 있어

어덴가에 있어

 

네가 나를 만나게 되듯이

그를 내가 만난다 해도

 

그 여인은

너는 아니다

 

 

 

수필 / 피천득

 

수필(隨筆)은 청자 연적(靑瓷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淸楚)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女人)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平坦)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포도(葡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

(住宅街)에 있다.

 

수필은 청춘(靑春)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中年)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情熱)이나 심오한 지성(知性)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오, 그저 수필가(隨筆家)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散策)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餘韻)이 숨어 있다.

 

수필의 빛깔은 황홀 찬란(恍惚燦爛)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頹 落)하여 추(醜)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 우미(溫雅優美)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무늬는 사람 얼굴에 미소(微笑)를 띠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懶怠)하지 아니하고, 속박(束縛)을 벗어나고서도 산만(散漫)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의 재료는 생활경험, 자연관찰, 인간성이나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등 무엇이나 좋을 것이다.

그 제재(題材)가 무엇이든지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個性)과 그때의 심정(心情)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 다.

 

또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필자(筆者)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行路)이다. 그러나 차(茶)를 마시는 것과 같은 문학은, 그 차가 방향(芳香)을 가지지 아니할 때에는 수돗물같이 무미(無味)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수필은 독백(獨白)이다. 소설가나 극작가(劇作家)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 보아야 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오필리아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찰스 램은 언제나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率直)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 러므로 수필은 독자(讀者)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덕수궁(德壽宮)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硯滴)은 연꽃 모양 으로 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整沿)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하나 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均衡)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옆으로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餘裕)를 필 요로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다가, 그런 여유를 가지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 마지막 10분의 1까지도 숫제 초조(焦燥)와 번잡(煩雜)에다 주어 버리는 것이다.

 

 

 

기도 / 피천득

 

무릎을 꿇고 고요히 앉아 있는 것도 기도입니다. 말로 표현을 하든 아니하든 간절한 소망이 있으면

그것이 기도입니다. 브르흐의 '콜 니드라이'와 바다르제우즈카의 '소녀의 기도'는 음률로 나타낸 기도이고 엘 그레꼬의 '산토 도밍고'나 밀레의 '만종' 은 색채로 이뤄진 기도입니다

 

말로 드리는 으뜸가는 기도는 '마태복음' 6장에 있는 '주의 기도'입니다. 저희에게 오늘의 양식(빵)을 주옵시고...' 하신 말씀은 그의 인간미를 느끼게 합니다. '빵에 잼을 많이 발라 주세요'하고 기도하는 프랑스 아이가 있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하고 우리는 기도의 끝을 맺습니다.

어찌 '부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타고르의 '기탄잘리'의 한 대목이 있습니다

 

'저의 기쁨과 슬픔을 수월하게 견딜 수 있는 그 힘을 저에게 주시옵소서'

 

내가 읽은 짧고 감명 깊은 기도가 있으니 '저희를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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