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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뜨거운 밤 / 안도현

by kimeunjoo 2011. 5. 19.

 

 

 

 

 

 

 

뜨거운 밤 / 안도현

 

 

아 .. 고 잡거들이 말이여 불도 한점 없는 거 뭣이냐 깜깜한 뮛동가에서

둘이서 불이 붙어가지고는 누가 왔는지 누가 지나가는지 누가 처다보는지 모르고 말이여

여치는 싸랑싸랑 울어댓쌓은디 내가 어떻게나 놀라부럿는가

첨에는 참말로 귀신들이 아닌가 싶어 대가리 털이 바짝 서두만

 

가만히 본께 두 년놈들이 깨를 홀라당벗고는 메뚜기같이착싹 붙어가지고는 일을 벌이는디

하이고매 숨이 그만 탁 막혀 나는 말도 못하고 소리도 못지르겠고

그런다고 좋은 구경 놔두고 꽁무니 빼기도 그렇고

 

마른침을 꼴딱 삼켜가면서 눈알이 빠져라 쳐다보는디

글쎄 풀들이 난데없이 야밤에 짓뭉개져가지고는 푸르딩딩 멍든 자죽처럼 짓뭉개져가지고는

야한 냄새를 피워올리는 바로 고것들이 무슨 죄일까 싶어

 

나 참 별 생각도 다해 봤는디 말이여 그때 말이여 반딧불 하나가 눈을 깜빡깝빡하면서

싸가지 없이 나를 빤히 보고 있었던 거 아니겄어 한마디로 챙피해두만

 

눈을 깜빡깜빡하면서 내가 벌겋게 달아오른 것을 지가 다 봤을거 아녀

처음부터 끝까지 저도 다 보고있었으면서 말이여 .하이고매 ~~~

 

 

 

봄날은 간다 / 안도현

 

늙은 도둑놈처럼 시커멓게 생긴

보리밭가에서 떠나지 않고 서 있는살구나무에

꽃잎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자고 나면 살구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누가 꽃잎을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는 그가 누구인지

꽃잎을 자꾸자꾸 이어붙여 어쩌겠다는 것인지

나는 매일 살구나무 가까이 다가 갔으나

꽃잎과 꽃잎 사이 아무도 모르게

봄날은 가고 있었다

나는 흐드득 지는 살구꽃을 손으로 받아들다가

또 입으로 받아먹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어느날 들판 한가운데

살구나무에다 돛을 만들아 달고 떠나려는

한척의 커다란 범선을 보았다

살구꽃 피우던 그가 거기 타고 있을 것 같았다

멀리까지 보리밭이 파도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서 가서 저 배를 밀어주어야 하나

저 배 위에 나도 훌쩍 몸을 실어야 하나

살구꽃이 땅에 흰 보자기를 다 펼쳐놓을 때까지

나는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애편지 / 안도현

 

스무 살 안팎에는 누구나 한번쯤 연애편지를 썼었지

말로는 다 못한 그리움이며

무엇인가 보여주고 싶은 외로움이 있던 시절 말이야

틀린 글자가 있나 없나 수없이 되읽어 보며

펜을 꾹꾹 눌러 백지 위에 썼었지

끝도 없는 열망을 쓰고 지우고 하다 보면

어느 날은 새벽빛이 이마를 밝히고

그때까지 사랑의 감동으로 출렁이던 몸과 마음은

종이 구겨지는 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리곤 했었지

그러나 꿈속에서도 꿨었지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잃어도 괜찮다고

그런데 친구, 생각해보세

그 연애 편지 쓰던 밤을 잃어버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타협을 배우고

결혼을 하면서 안락을, 승진을 위해 굴종을 익히면서

삶을 진정 사랑하였노라 말하겠는가

민중이며 정치며 통일은 지겨워

증권과 부동산과 승용차 이야기가 좋고

나 하나를 위해서라면

이 세상이야 썩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친구, 누구보다 깨끗하게 살았노라 말하겠는가

스무 살 안팎에 쓰던 연애 편지는 그렇지 않았다네

남을 위해서 자신을 버릴 줄 아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집안에 도둑이 들면 물리쳐 싸우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가진 건 없어도 더러운 밥은 먹지 않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사랑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한 발자국씩 찾으러 떠나는 거라고

그 뜨거운 연애편지에는 지금도 쓰여 있다네

 

(안도현·시인,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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