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그늘 / 김지하
아
이제야 그늘 속에
꽃
핀다
꽃과 그늘 사이
언젯적부터인가
그 긴장은
이제야
짧은 행간에
웬 무늬 무늬 드러나
흰 무늬들
속의 속
흐드러 진다
내 삶의
꽃
여기
청도 각북골에 와
엎드린 한 새벽에 흘러
흘러 넘치며 아롱거리는
샘물 속
꽃
그늘.
사랑 / 김지하
꽃 피어도
나비
오지 않는다
봄의 적막이
속에 든다
춥고
외로와
사랑하고저 하나
내밀어 볼
팔
없다
온 마음
맨몸이 죽도록
거리를 걷는다
피투성이로 걷는다
사랑하고저.
사랑1 / 김지하
내가 이렇게 기대 있는 것은
누굴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기대 있는 것은
한밤중 열두 시가 지난 시간
당신도 자고 아이들도 잠든 시간
담 건너 고양이 울음도 죽은 시간
이 시간에 깨어 있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괴로운 시간
깨어 있다는 것
죽기보다 더 버리고 싶은 일
알겠어요 이 시간
내가 기대고 있는 까닭
내가 기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
누구라도 좋지요
돌멩이라도 좋고
쓰레기라도 좋고
잿더미라도 좋지요
사랑하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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