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부추꽃으로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꺽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 박남준 시 <흰 부추꽃으로> 전문
박남준 시인의 나긋나긋한 육성 시낭송을 들어보셨는지. 음정 박자 깡그리 무시해버리고 분위기에 푹 절여져 읊조리는 절창은? 그의 먹그림을 만날 기회가 있으셨는지? 몇 차례 전시회의 이력을 가진 바 있는. 그와 술을 마셔본 적 있으신지. 좌중을 평화롭고 유쾌하게 하는. 외로운 날, 문득 그의 안부가 궁금해 그에게 전화를 걸어본 적은? 먼 유랑길에 오른 주인을 대신해 빈집에 홀로 남아 대꾸해주는 주인 닮아 쓸쓸하기 짝이 없는 자동응답기의 재생음을 듣고 또 듣다가 문득 사는 일이 고즈넉해진 경험은? 그의 시, 그의 시집을 머리맡에 놓아두고 새벽까지 뒤척이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 있으신지? 그의 시가 갖는 잿빛 회한이 원망스러웠던 기억 갖고 계신지.
누런 서류봉투 겉면에 '파손주의' 라 쓴 빨간색 싸인펜의 당구장 표시를 보고 깜짝 놀랐더랬다. 뭐지? 남준 선배 이름이 반갑긴 했지만 사전통보 한 마디 없었던지라 서둘러 개봉했다. 거기, 세상에 거기 말이다. 마흔 넘은 노총각, 박남준 시인의 시낭송씨디가 들어있지 않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선배 박남준 시인의 나긋나긋한 음성이 한보리 님의 노래 네 곡과 함께 피식- 청승맞게 웃고 있는거라. 적포도주빛 케이스(케이스랄 것까지도 없는 단순한 봉투)가 주는 묘한 천진성이 박선배와 잘 맞아 떨어지더군. 표지에 적힌 <아름다운 관계> 서체도 유치원생처럼 삐뚤삐뚤하고, 하여, 처음엔, 워낙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음악 몇 곡 선곡해 측근들과 나눠들을 심사로 공 씨디에 구워 보냈나보다 생각했더랬지. 물론, 그 정도로 소박하고 정겹다는 뜻이지.
듣고 계신지. 지금 배경음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시낭송이 바로 <흰 부추꽃으로>이다.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누구에게랄 것없이 주절주절 말 건네고 있다. 서녘 놀 일 수도 있겠고, 소매 단추 잠그게하는 소슬 바람일 수도 있겠고, 내내 둘이 될 수 없는 자신을 대상으로 둔 독백일 수도 있겠다.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고. 몸이 서툴다니, 마흔 넘게 부려온,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어느 한곳 손 안 간 데 없는 몸 아니던가, 그 몸이란 녀석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 게다. 분명 내 몸임에도 내 마음과 다른 그 어떤, 서투름에 대해, "한때 숲"을 이뤘던 나무, 아궁이 속에서 거품 물고 타오르는 나무, 무섭게 타올라 허공에 올라 재가 된, 흰 재를 거둬 "부추밭에 뿌"리며 흰 부추꽃으로의 환생을 꿈꾸는 것이다. "목숨처럼 환"한 저 흰 부추꽃!
무거운 새
새를 보면 도마가 떠오를 때가 있다 도마 위에 새 그림만을 그려놓고 전시장을 채운 그곳을 갔다온 후였지 아마 강렬하지는 않았어 우울증의 화가는 새에 빗대었구나 이승에서의 꿈은 쓸쓸했으므로 나약한 자살의 꿈 그랬었는데
연상작용이라고 하나 도마를 보면 새가 생각나고 칼을 보면 날카로운 새의 비명 내 몸은 온통 칼에 낭자한 붉은 피 도리질을 치며, 길들여진 것인가 이건 무엇이지 새가 도마 위에- 그것이 도대체 어떻다는 것이냐 공중과 나무의 숲과 새장만이 새의 전부인가 당연한가 당연하다고 여긴 그것이 길들여진 것이 아닌가
길들여졌나 새를 보았던 눈 때문이지 마음에 매어두었기 때문이야 끈 말이야 끊어버리겠어 식칼 어디 있지 칼 아니 새 아니 도마 새장 공중 아니 저 나무의 숲 피투성이의 외마디소리 벌거벗은 내 몸 무엇이 이토록 혼란스럽게 하지 그래 길들여진 병 정신병일까 잘못 보았어 다시 시작할까 안과에서부터 아니 혹 나는 전생이 무거워 날 수 없는 새였나
- 박남준의 시 <무거운 새> 전문
숨이 차다. 단숨에, 한달음에 좌르륵 읽힌다.
들린다, 비명! 도마에 달랑 새만 그려놓고 붓을 꺾고, 무릎을 꺾고, 생을 꺾던 우울증 화가의 외마디가 들린다. 굳은 관절을 빼내 도망치려다 나무화석이 되어버린 새의 목쉰 비명이 들린다. 한때 유혹이며 노래이며 울음이던 것, 지금은 지워지고 없는 저 너머의 아득한 세월이 들린다. 바람이 구름이 풀잎의 아우성이 들린다. 들려진다, 들려온다, 우우- 허공이 일제히 몰려와 귀안에 고인다, 가득. 무심코 지나쳤던 전시장 도마 위 새는 어쩌면 그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새를 도마에 붙잡아놓은 우울증 화가였을지 모른다. 새가 날던 나무의 숲일 수도 있겠고 칼일 수도 있겠고 자살을 꿈꾸는, 시인일 수도 있겠다. 피투성이 새를 보아버린, 이미 새인 그! 길들여져 날 수 없는 무거운 새!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툇마루에 앉아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본다 마당 한쪽 햇살이 뒤척이는 곳 저것 내가 무심히 버린 놋숟가락 목이 부러진
화순 산골 홀로 밭을 매다 다음날 기척도 없이 세상을 떠난 어느 할머니, 마루 위엔 고추며 채소 산나물을 팔아 마련한 돈 백만원이 든 통장과 도장이 검정 고무줄에 묶여 매달려 있었다지
마을 사람들이 그 돈으로 관을 마련하고 뒷일을 다 마쳤을 때 그만 넣어왔다 피붙이도 없던 그 놋숟가락 언젠가 이가 부러져 솥 바닥을 긁다가 목이 부러져 내 눈밖에 뒹굴던 것
버려진 것이 흔들리며 옛일을 되돌린다 머지않은 내일을 밀어올린다 가만히 내 저금통장을 떠올린다 저녁이다 문을 닫고 눕는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 박남준의 시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전문
"전업시인을 꿈꾸고 있다면 산문을 잘 써야한다. 시만 써갖고는 밥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너는 산문도 되니 밥 굶을 일은 없겠다." <시인>지를 만들어내던 조태일 시인이 생전에 박남준 시인에게 이른 말이란다. 조태일 시인의 선견지명이 우연이 아니었을까? 박남준 시인은 시와 산문만으로 생활을 꾸려간다. 아주 가끔 문학강연이나 방송출연도 하지만 주수입원은 순전히 글쓰기이다. 그 살림이 넉넉할리 없겠다. 옹색하겠다. 그래도 그는 후배들 앞에서 궁색한 티를 내지 않는다. 자신은 혼잣몸이니 걱정말라며 오히려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후배들을 염려하고 챙긴다. 저금통장에 백만원쯤 모여질라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단다. 겁부터 난단다. 자신이 부자인 걸 누가 눈치채 따라오기라도 할까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단다. 문단속도 각별히 신경 쓰인단다. 물론 가난이 체질인 그의 일면이다. 겉과 속이 더할나위없이 맑디 맑다.
그는 늘 풀기를 좋아한다. 악양(예전엔 모악산방)에 떼로 몰려오는 선배며 후배들 뒤치닥거리도 마다 않는다. 오히려 올 날만 손꼽아 기다리다 오일장에 맞춰 악양장에 간다. 버스정류장까지 한참을 걸어야하고 또 드문드문 오는 시외버스를 먼지 뒤집어쓰며 무한정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서 행복해한다. 그러니 통장에 백만원이 생겼다한들 그게 며칠이나 버티겠는가. 그런 그이기에 화순 산골에서 홀로 밭을 매다 세상을 뜬 어느 할머니가 당신의 장례비용으로 "고추며 채소 산나물을 팔아 마련한 돈 백만원이 든 통장과 도장"은 남다르게 다가왔을 것이다. '나 죽거든 귀찮아하지 말고 저어기- 저 마루 위 기둥에 고무줄로 매달아놓은 통장에서 돈 꺼내 장례를 치러주'길 산 아래 마을 사람들에게 무언의 당부로 예비해놓은 할머니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혼잣몸이니 마땅히 그러했을 것이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당 한쪽에서 뒤척이는 놋숟가락, 목이 부러진, "그만 넣어왔다", "내 눈밖에 뒹글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목 부러진 놋숟가락이 할머니 떠나보내고 돌아서려는데 비로소 '눈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밖과 안, 실금 하나 차이일뿐인, 실금 바깥의 것이 실금 안으로 넘어온 것이다. 턱을 넘어선 것이다. 경계가 경계를 지운 것이다. 나 이외의 문제였던 것이 내 문제가 된 것이다. 나와 무관한 존재였으나 이제는 나와 관계맺은 존재가 된 목.이.부.러.진. 놋.숟.가.락!을 넣어오던 날 "버려진" "옛일"을 되돌리며 "내일을 밀어"올려보기도 하는 것이다. 화순 산골 할머니가 그리하셨듯 가만히 자신의 "저금통장"의 잔고를 떠올려보기도 하는 것이다. 흘러가는 것들, 흘려보내지 못하고 그 밤엔, 가만 귀기울여었나보다.
아름다운 관계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솔씨 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 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 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피워본 적 있었던가
- 박남준의 시 <아름다운 관계> 전문
박남준 시인을 모르는 분들은 이 시를 떠올리면 된다. 그는 세상 모든 것들과 아름답게 관계 맺기를 소망하는 사람이다. 솔씨 하나 품에 안고 그것들을 위해 딱딱하게 굳은 몸 벌려 틈을 내준 바위와 거기 뿌리내린 소나무의 관계이고자 한다. 사랑이고자 한다. 바위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소나무가 필시 드리워줄 "푸른 그늘"을 믿는 사람이다.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 소리 흐"를 것임을 믿는 사람이다. 소나무가 "새들을 불러모아" 들려줄 노랫소리를 꿈꾸는 사람이다. 이러하니 그대들, 세상이여! 이 자에게 상처입히지 말라. 제발 울리지 말라.
언젠가 선배가 많이 아팠다. 그 몸으로도 꼭 챙겨야 될 사람들 행사에는 마다않고 쫓아다녔다. 서울을 오르내렸다. 밥도 술도 먹지 못했다. 야윈 몸은 더 말라갔고 눈은 천길 움푹 깊어져만 갔다. 간호해주는 이 없으니 병은 오래갔다. 몸이 눈에 띄게 축이 났다. '저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지?' 싶어 안부를 물으면 "괜찮아. 넌?"하고 물었다.
우린 아주 가끔 통화를 하는데 그건 주로 각자가 좋은 자리에 있을 때다. 그만 있으면 완벽할텐데 그가 없어 서운할 때 약 올린다는 핑계로 전화를 걸지만 사실은 보고 싶어서다. 그가 내게 전화를 하면 첫 마디가 이렇다. "세실리아냐?" 그러면 나는 "네-"한다. 내가 그에게 전화를 걸면 첫 마디가 이렇다. "남준 오라버니?" 그러면 그는 "응. 세실리아냐?"한다. 주위 사람들과 빠짐없이 통화하도록 전화를 돌린다. 문단에서 내가 스스럼없이 '오라버니'라 칭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그다. 단지 연배가 위여서가 아니라 큰 그릇을 가졌다는 걸 의미한다. 바람이 있다. 홀로인 그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다음 늙고 늙어서 세상 떠날 때도 이렇게 홀연히 떴으면 좋겠다. 흰나비처럼. 투명한 슬픔 속을 날아오르는 흰나비처럼, 팔랑팔랑, 너울너울 춤을 추다가.
봄날 춤을 추다 죽음을 보다
춤을 추다 죽고 싶어
사위에 감겨 날아오르고 싶어
흰나비 한 마리 허공을 가른다
봄날 눈 들어보면 꽃들 꽃들
그 눈부셔 투명한 슬픔 속에
흰나비 한 마리 날아오른다
- 박남준 시 <봄날 춤을 추다 죽음을 본다> 전문
시낭송 음반, 혼자 사는 박남준 시인 집에 모르긴 몰라도 쌓여있을 게다. 기획사에서 출연료 대신 건넸을 수도 있겠고, 가난한 기획사 생각한답시고 그가 수량 헤아리지 않고 몇 박스 보내달랬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청빈한 주변머리론 아마 열 장도 팔지 못할 게 분명하다. 공짜로 나눠주면서도 본인 음성 담긴 걸 쑥쓰러워할 게 분명하다. 그래놓고는, 시쓰고 산문써서 빵구난 음반값 떼우느라 한 일년 낑낑거리겠지. 시낭송, 어제 온종일 듣고 또 듣는다. 좋다. 평생 혼자 살 작정을 했는지 청승이 극에 달했다. 한량도 그런 한량이 없다. 이건 좋다는 뜻이다. 성우나 탈렌트가 들려주는 시낭송과는 격이 다르다. 시인이 자신의 시를 머리맡에 앉아 나즉나즉 들려주는 것이다. 사람 애간장 탄다. 몇 사람 또 쓰러지겠다. "세실리아는 * * 회의 시낭송 대표주자"라는 윤정모 선생님의 말씀대로 나도 시낭송하면 한 가락하는 사람인데 박남준 선배 앞에서는 명함도 못내민다. 노래도 한 노래하는데 선배 앞에서는 노래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 정도로 고수다. 겸손한 프로다,
박남준 시인의 시낭송 음반 아니, 박남준 시인의 시낭송 시집 <아름다운 관계>! 마음 얻고 싶은 사람 있거든 슬며시 건네시길 권한다. 가을, 쓸쓸해질 바엔 어중간히 말고 확실히 쓸쓸해지자. 어쩌면 이미 불치의 病이 되어버린 시인의 '슬픈 그리움'이 그대들의 먹먹한 가슴과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잠시 해보면서.
- 프로필: 전남 법성포 출생.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풀여치의 노래>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가 있다.
- 출처: 박남준 시집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 문학동네
- 2005/ 8/ 30/ 손세실리아
흰 부추꽃으로 박남준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이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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