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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시인뜨락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석

by kimeunjoo 2011. 1. 9.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쟈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힌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의 유지에서 진정한 시의 길을 읽으며 서울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에 가보면 "나누는 기쁨"이라는 찻집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보면 백석 시인의 애인이 자기 평생 시 한 수 백석이 써준 [나와 나타샤와 신당락]이라는 시가 걸려 있습니다. 그것을 품고 있었던 여자인데, 죽을 때까지 백석을 사랑하고 그리워했습니다. 길상사의 원주인이자 백석의 애인이었던 자야 여사의 생각으로는 백석이 1963년에 세상을 떠난 줄 알았는데,

 

최근에 조선일보 2001년5월 4일자 신문을 보니까 백석은 1996년까지 살았더군요. 그리고 그 증명으로 사진과 편지를 한국에 있는 소설가에게 주었고 일본의 NK리포터에 얘기했던 게 있습니다. 그래서 자야가 1963년에 백석이 죽은 줄 알았는데 내가 신문을 보고 아니다 그러면 이것을 알려줘야지 그래서 자야가 살았던 그 집에 찾아가서 쓴 시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백석의 입장에서 간 겁니다. 그러나 이게 맞아야 되기 때문에 그 두 편을 읽어야 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이유]라는 작품입니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백석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아녕이라고, 그런데 백석은 한때 그녀를 자야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3년 동안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천 억의 재산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그 사람 생각을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어디서?" "한국에서요"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천 억이 그 사람의 시 한 편만 못합니다. "나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를 쓸거야" 이번에는 시를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 데는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이렇게 하고서 열흘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음은 [나타샤]라는 작품입니다. 자야 여사는 흔히 보는 기생이 아니었습니다. 기생 하기 싫어서 얼마나 도망을 다녔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조선어학회에서 이 여자를 동경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졸업할 무렵이 되어 아무도 오지 않고 소식이 없어서 함흥으로 갔습니다. 조선어학회 사람들이 모두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만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도저히 면회가 이루어지지 않자, 자신이 기생 출신이니까 기생을 해봐야겠다고 함흥에서 제일 큰 "함흥관"에 들어갔습니다. 함흥관에 들어간 첫날 거기에서 백석을 만난 거지요. 백석이 첫눈에 반해서 "내 마누라가 여기에 있다"고 선언했답니다. 당시 백석은 스물 여섯, 자야는 스물 둘이었답니다. 하지만 방랑벽이 있던 백석은 만주로 떠돌고, 자야는 서울로 와 명월관의 기생이 되었습니다. 이제 분단이 되어, 두 사람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운명으로 갈라놓았습니다만, 다음의 시는 시속의 화자가 백석이 되어 자야를 찾아가는 것을 상정하고 쓴 시입니다.

 

<나는 갔다. 백석이 되어 찔레꽃 꺾어들고 갔다. 간밤에 하얀 까치가 물어다 준 신발을 신고 갔다.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는데 길을 몰라도 좋았다. 마당의 느티나무 아래서 젊은 여인들은 날 알아채지 못하고 차를 마시며 부처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까치는 내가 온다고 반기며 자야에게 달려갔고, 나는 극락정 마당 물 위를 밟으며 갔다.

 

하얀 눈이 내리면 재로 뿌려달라던 흰 유언을 밟고 갔다. 참나무 밑에서 달을 보던 자야가 나를 반겼다. 느티나무 밑은 대낮인데, 참나무 밑은 우리 둘만을 위한 밤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울었다. 죽어서 만나는 서러움이 무슨 기쁨이냐고 울었다. 한참 울다보니 그것은 장발이 그려놓고 간 그녀의 스무 살 때 치마였다.

 

나는 그 치마를 잡고 울었다. 죽어서도 눈물이 난다는 사실을 손수건으로 닦지 못하고 울었다. 나는 말을 못했다. 찾아오라던 그녀의 집을 죽은 뒤에 찾아와서도 말을 못했다. 찔레꽃처럼 속이 타들어갔다는 말을 못했다. 나는 말을 못했다. 찾아오라던 그녀의 집을 찾아와서도 말을 못했다. 찔레꽃 향기처럼 속이 타들어갔다던 말을 못했다.>---이생진 시인의  <시인과 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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