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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설야(雪夜) / 김광균(金光均)

by kimeunjoo 2011. 1. 17.

 

 

 

 

설야(雪夜) / 김광균(金光均)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찬란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안방 / 김광균

 

아침에 방문을 여니 어머니가 안 계시다

아 어머님은 세상을 떠나셨나 보다

지난 십이년 그 오랜 날과 밤으로

하루같이 보고 싶어 하시더니

어머님은 저 세상에 가시는 길에

이북에 들러 동생을 만나셨겠지

어머님은 오래 못 본 아들을 껴안고

얼마나 거기서 울으셨을까

산이

두 주먹으로 쳐부수고 싶은 산이

남북을 가로막아

내 귀에는 어머님 울음 소리가 안 들리나 보다

먼-훗날 형제 마주 앉으면

동생은 자세한 이야길 하리라

이야기하다 아야기하다 날이 새면

북한산성 기슭을 찾아가

어머님 무덤 위에

동생과 나는 뎅굴며 울을 것이다.

 

김광균 시집 『와사등 』,《자유문학사 》

 

 

 

 

추일 서정(秋日抒情) /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하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紙)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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