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冬安居) / 고재종
목화송이 같은 눈이 수북수북 쌓이는 밤이다
이런 밤, 가마솥에 포근포근한 밤고구마를 쪄내고
장광에 나가 시린 동치미를 쪼개오는 여인이 있었다
이런 밤엔 윗길 아랫길 다 끊겨도
강변 미루나무는 무장무장 하늘로 길을 세우리
눈은 길을 끊는다. 집과 집 사이, 마을과 마을 사이로 난 모든 길을 지운다. 함부로 소통하려 하지 마라, 통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더냐. 도저한 단절이다.
우리는 눈의 감옥 속에 유폐되어 비로소 안거에 이르게 된다.
가마솥에 쪄낸 고구마와 속을 개운하게 씻어 내리는 동치미 국물을 내오는 여인에 대한 그리움. 이 그리움 위로도 눈은 푹푹 내린다.
지붕 위에 두툼한 눈 이불 끌어 덮고 굴뚝만 간신히 내어놓은 채 잠을 자는 집, 안에서 무얼 하는지 굴뚝 연기만 중얼중얼 알아들을 수 없는 잠꼬대처럼 피어오르는 겨울 집.
그 속에 들어 나는 하늘로 가는 길을 생각할 것이다.
눈 속에서 붉어진다는 어느 먼 산중의 단단한 열매 하나와 속살이 벗겨져 나온 가지에 남은 산토끼 시린
이빨 자국이라도 더듬어볼 것이다.
<손택수·시인>
중앙일보 - 시가 있는 아침 -
누님 / 고재종
저것 좀 보아 저 아가씨
봉선화 따서 손톱 묶네
저 아가씨 얼굴 좀 보아
홍색 자색 연분홍 드네
가슴 봉긋한 저 아가씨
꽃물 든 손 가슴에 얹네
저 먼 데로 까치발 딛네
말만한 엉덩이 저 아가씨
어쩌자고 저 아가씨
바알갛게 달아오르네
숨쉬기조차 힘들어 하네
아아, 저 아가씨 눈이슬짓네
내사 차마는 못 보겠네
진저리치다 깨어나니
울 밑의 봉선화 비에 젖네
환한 마당
활활거리는 화톳불이 온 마당에 환하다
잘갔다고 한다, 맏상제도 덩달아서
아침밥 잘 잡숫고는 잠든데끼 가셨구먼, 한다
윷판에선 윷 모 떨어져 환호성 지르고
초경 이경 상여 놀이로 서로를 낄낄거리고
필요도 없이 오래 사는 치도 많은데
잘 갔다고 한다, 마나님도 덩달아서
평생을 흙 파묵고 살았응께
인자 흙밥 되는 게 옳지라우, 한다
텃밭 가에선 초롱초롱 오동꽃도 등 밝히고
내일 발인 날엔 날씨도 화창할 거라 하니
활활거리는 온 마당에 화톳불이 환하다
그래도, 그래도 쪼끔은 서러워야 한다고
배경음을 깔아대는 저 지랄 불여귀들!
서러운 사랑 이야기
저 밤나무의 밤송이들이
왜 가시옷으로 무장을 하고
왜 종주먹질을 해대는지 아시는지요
나는 기억하는데요
모내기 끝난 지난 유월
모내기 끝낸 여남은 사람들
해설피 정자에 앉아
남은 막걸리 마저 기울이다간
앞산 보고 넋을 잃었는데요
그 앞산엔 젖살빛 밤꽃무더리
뭉실뭉실, 수만 구름 떼 밀어올리며
물큰물큰, 숫컷내 마냥 풍겨댔는데요
그 꽃 보다 넋을 잃다 다 가고
샛터집 과수댁만 뿌리치고 남아
워매, 저 징헌 놈의 꽃 좀 보소
워매, 이 징헌 놈의 냄새 좀 보소
꽃멀미 한 태산 일으켰는데요
혹여 그 일 때문에
혹여 그 환장할 일 때문에
저 밤나무의 밤송이들
저렇게 가시옷에다
종주먹질을 해대는 건 아닐런지요
그렇다면, 정녕 그렇다면
저 밤나무의 밤송이를 까주어선
그 속의 알알들 쏟게 할 수 있는 건
바람 같은 세월일까요
미륵불 같은 침묵의 기다림일까요
아, 남에게는 넘치는데
나에겐 바짝 마른 사랑일까요
■ 책 소개
이 책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오정희, 곽재구, 고재종, 이정록이 가족, 고향, 자연 등 우리 삶을 이루는 근원적인 부분에 대한 ‘그리움’을 주제로 쓴 여러 산문을 묶은 그들의 삶의 흔적이다. 각자의 개성이 확연이 드러나는 필치와 문장들은 그들 작가의 삶과 경험, 그리고 그를 향한 애정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그리워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곧 소중하고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그만큼 소중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이들 작가들과 그리움의 감정을 공유하면서 많은 독자들이 삶의 소중함과 따스한 위로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탄과 연민 /시인 고재종
눈 들어 산을 바라보면 연두 초록 마구 번지는 사이로 산벚꽃, 철쭉 꽃, 조팝꽃이 펑펑 제 황홀을 터뜨린다. 발자국 옮겨 들길을 걸으면 보 리밭 서리서리 물결치는 그 곁에 자운영, 민들레, 제비꽃은 또 꽃수를 놓고, 어느 담장 안을 들여다본들 영산홍, 금낭화, 홍도화 한 무더기 피 지 않은 집이 없다.
산벚꽃의 휘황함이요, 철쭉꽃의 정열이요, 조팝꽃의 떨림이라 했던가. 민들레의 미소요, 자운영의 유혹이요, 제비꽃의 교태라 했던가. 저 영산 홍의 출중함과 저 금낭화의 붉은 입술과 저 홍도화의 귀기(鬼氣) 어린 관능을 보아라. 그 색깔과 향기의 길에 한번쯤 푹 빠져보아도 좋으련만.
친구 중에 유난히 감탄을 잘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들길을 걷거나 어 디를 가도 항상 그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열려 탄성을 발하곤 한다.
"이것 봐, 이것 봐! 이 제비꽃은 보라색인데 저건 흰색이야. 또 이 흰 색 민들레와 노란색 민들레 좀 봐. 어쩌면 한 종류이면서 이렇게 각기 독특한 색깔을 가졌지?"
"그래. 그 꽃들보다 오히려 세상이 신비로 가득 찬 듯 여기는 그대가 더 꽃 같구먼. 어쩌면 그렇게 나이 먹는 줄도 몰라?"
사실이 그렇다. 누군 열두 살에 세상을 다 알아버렸다고 했던가.
이후 로 견뎌야만 하는 생의 환멸과 권태가 얼마나 끔찍한 줄 아느냐 했던가.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실 세상의 아웃사이더인 나 같은 자에게도 생은 그렇게 감탄할 만한 것만은 아닌 성싶다. 더더욱 오늘날 디지털이 니 사이버니 하는 것들이 온통 설쳐대는 세상에서 거기에 앞서거니 뒤서 거니 온통 혈안(血眼)을 하고 날뛰어야만 되는 삶으로 누가 길섶의 작은 꽃 하나를 보고 감탄하며 누가 동백꽃에만 사는 동박새와 산록 맑은 계 곡의 산천어에 눈길을 주겠는가.
생의 고통을 혹독히 치르고 꽉 찬 중년에 와서야 생명 찬양의 길에 들 어선 듯한 시인 천양희 님도 다음의 시 '한 아이'에서 그 눈이 어린애 같은 감탄으로 가득 차 있다.
시냇물에 빠진 구름 하나 꺼내려다/
한 아이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송사 리떼 보았지요/
화르르 흩어지는 구름떼들 재잘대며/
물장구치며 노는 어 린 것들/
샛강에서 놀러 온 물총새 같았지요/
세상의 모든 작은 것들, 새 끼들/
풀빛인지 새소린지 무슨 초롱꽃인지/뭐라고 뭐라고 쟁쟁거렸지요//
무엇이 세상에서/
이렇게 오래 눈부실까요?
사실 이런 시를 보면 감탄이 아니라 경탄(敬歎)까지 든다. 부유하는 먼지같이 메마른 세상에서 가장 오래 눈부신 것을 발견해내어 그것을 애 절하게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얼마나 곱고 아름다운가.
"헌데 친구야. 이 금낭화를 좀 보아. 이 꽃엔 며느리밥풀꽃에 붙은 것 과 비슷한 사연이 숨어 있다네.
가난 가난 열두 가난 시절, 시집살이가 험악한 어느 산골 마을의 며느리가 밥을 다 푸고선 어찌나 배가 고팠던 지, 주걱에 묻은 밥풀 몇 알을 떼먹고 있었다지.
그러다 마침 들에서 돌 아오던 시어머니에게 들켜선 저 혼자 밥 다 처먹는다고 작대기로 늘씬 얻어맞아 죽은 뒤, 이듬해부터 그 집 뒤란 장독대에 피었다는 게 이 꽃 이야. 여자의 새빨간 입술에 흰 밥알을 문 듯한 모습이 그 며느리의 한 을 상징한다는 거야."
"어머머. 그래? 세상에 이런 슬픈 일도 있다니?"
친구는 어느새 말을 잊고 눈시울이 젖어든다. 그의 눈은 이미 금낭화 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그가 배꽃, 사과꽃, 황매화 펄펄 바람에 다 흩날려선 길가에도 강물에도 풀숲에도 함부로 처박히는
세월을 어찌 다 보겠는가.
그런 그가 연두, 초록, 진초록 겁 없이 마구 번지는 자리에 소쩍소쩍 쏟아지는 저 불여귀(不如歸)의 가르침은 또 어찌 다 듣겠는가.
아니 그런 그가 그 렇게 배꽃 펄펄 날리는 길 위를 절뚝절뚝 절뚝거리는 노부부가 서로 앞 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걷는 그 위로 뿌려지는 꽃잎에 왜 망연자실 않겠는가.
아니 그런 그가 그렇게 초록 산천 마구 날뛰는 들판에 새참 담배 피우다 우두망찰 불여귀 울음에 눈시울 젖는 사람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초록 햇살을 왜 모르겠는가.
그래 그렇게 강물은 흐르고 백양나무도 금 은 물살 치는 강변에 오늘 또 무엇이 그리 서러워서 울고 서 있는 그대 의 슬픔, 어찌 한없이 맑아지지 않겠는가. 연민의 마음. 그렇다. 그 친구는 세상에 대한 감탄뿐만 아니라 언제나 스러지고 상처 입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 가득한 사람이다.
모두들 황금 에만 눈이 멀고 이기주의로만 똘똘 뭉친 세상에서도 말이다. 연민이란 '상대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데서 오는 슬픔'이다. 어떤 이는 이를 '상대의 고통을 동정하는 감상' 정도로 여겨 도리어 악덕 취급 을 하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란 이 삼라만상 의 엄정한 법칙 면에서 보면 우리 인간은 어쩔 수없이 가련하고 불쌍한 존재이다. 필히 죽어가야만 하는 이런 실존의 고통을 이해하고 같이 슬 퍼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인간 본질에 대한 따뜻한 이해이다. 그래서 연 민의 자리는 신의 숨결이 닿는 자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함민복 시인의 '만찬'이란 시이다.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어떤 지 인이 마음을 써서 김치를 보내왔다. 그 김치를 따뜻한 햇살로 여긴다.
그 지인이 보낸 연민의 마음을 흔쾌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까닭에 한 저 녁 홀로 먹는 초라한 식탁이 황제의 만찬이 되어 있다.
상대에게 연민을 확대하고자 할 때는 한없이 낮고 열린 자세가 필요하지만 이를 받아들이 는 자도 흔쾌하게 열려야 한다. 감탄과 연민. 이 둘은 이 메마르고 닫힌 세상의 초록 같은 것이다.
'♧ 문학의 향기 > ♣ 영상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설야(雪夜) / 김광균(金光均) (0) | 2011.01.17 |
|---|---|
| 눈의 심장을 받았네 / 길상호 (0) | 2011.01.17 |
| 아내 / 박제영 (0) | 2011.01.17 |
| 소문들 / 권혁웅 (0) | 2011.01.17 |
| 은향(銀香) - 시:박가월/영상:청랑 김은주 (0) | 2011.0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