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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 여강 최재효

by kimeunjoo 2011. 1. 17.

 

                    

         

                     강릉시 초당동 허난설헌 생가 앞 허초희 동상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 寄 蘭雪軒 許楚姬 -

 

 

 


                                                                                                                                                     - 여강 최재효

 

 


 임이 보고 싶어 천리 눈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임께서는 보지도 듣

못했을 먼 훗날 탄생한 시커먼 철마(鐵馬)를 타고 왔답니다. 생각 같아서임께서

생전에 좋아하시는 난(鸞)새를 타고 한걸음에 달려오고 싶었지만 아난새를 잡아

타고 올 경지는 아닌 듯 합니다. 임을 대하면 먼저 눈물이 앞을 가리니 제대로 이야

기를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먼 훗날 몽애(蒙騃)한 어떤 나그네의 넋두리로 아시

들어 주소서.

 

 올 봄에는 경기도 광주 고을에 있는 임의 유택(幽宅)에 들러 무심히 지나가는 구름

과 이름 모를 산새들 그리고 춘풍(春風)과 도란도란 임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날은 진달래와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어 마치 제가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누워 있

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답니다. 산을 넘고 구름을 안으며 눈보라를 맞으며 한걸

음에 임에게 달오는 길은 제가 늘 꾸었던 바로 그 꿈길이 분명했습니다.

 

 철마가 달릴 때 마다 눈보라가 솟구치면서 산들이 온통 설무(雪霧)로 뒤덮인 자욱

한 광경은 저절로 탄성이 나와 혼자 보기 아까웠습니다.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산

(蓬萊山)이나 곤륜산(崑崙山)이 아닌가 하는 몽환적(夢幻的) 상상에서 어나지 못

할 지경이었습니다. 6시간 동안 달려오는 내내 말과 글로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한참 애를 먹었답니다. 태백 준령을 넘어 푸른 동해(東海)가 시야에 닿으면서 간신

히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답니다.


 철마를 타고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다릴 때 임이 태어나신 주변 지세(地勢)를

시 살펴보았습니다. 서쪽으로 백두산에서 부터 시작된 반도(半島)의 정기(精氣)

잠시 머물고 있는 대관령(大關嶺)이 손을 뻗치면 있고 동쪽으로 눈이 부시도록 푸

른 동해(東海)가 출렁거리고 있습니다. 준령과 바다 사이 솔숲에서 어린 임께서 댕

기머리 휘날리며 어 놀았을 고택(古宅)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 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과연 대쪽 같은 기상과 고매한 기품은 선남선녀(善男善女)를 품은 봉황(鳳凰)이

누워있는 듯한 지세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대관령

과 푸른 동해 그 사이에서 임은 소녀(小女)였으며, 선녀(仙女)였습니다. 또한 동생

균(筠) 역시 거칠 것 없는 호방한 선인(仙人)이셨습니다. 늘 선녀를 꿈꾸다 정말로

선녀가 되신 임. 임께서 남기신 시문(詩文) 213수는 동생 균(筠)에 의해 삼한(三韓)

뿐만 아니라 지나(支那)와 바다 건너 왜(倭)에 필명(筆名)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자주 임의 시향(詩香)에 취해 밤을 잊거나 사바(娑婆)의 질곡(桎梏)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서천(西天)의 서왕모(西王母)를 만나기도하고 섬궁(蟾宮)의

상아(孀娥)를 유혹하여 수작(酬酌)하는 즐거운 상상(想像)을 한답니다. 비록 맛은

없지만 집에서 부터 짊어지고 온 제 술을 흠향(歆饗)해 보소서. 저는 임이 목숨처

럼 아끼던 시문(詩文)들이 다비(茶毘)된 사실이 너무 원통하고 분하여 병이 생길

지경입니다.

 

 지나간 일을 새삼 떠올리면 무엇 하겠습니까. 고부(姑婦)간의 갈등(葛藤)도, 부부

(夫婦)간의 무정(無情)도 어찌 보면 다 부질없는 짓인걸요. 눈 깜작할 사이에 인생

이 가고 세월이 가고 세상이 지나가 버리는 것을요. 허무하고 덧없는 것이 우리네

한 평생아니던가요. 그래도 동생 교산(蛟山)으로 인하여 임의 체취를 맡아 볼 수 있

음이 불행 중 다행입니다. 임의 유작(遺作) 중에 “芙蓉三九朶(부용삼구타) 紅墮月

霜寒(홍타월상한)”란 구절이 늘 제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因緣)이 아닌 인위적(人爲的)인 인연을 억지로 이어간다면 필

경 불행이 이어지겠지요. 그 당시에 이혼(離婚)이 손쉬웠다면 ‘붉은 부용꽃 스물일

곱송이가 차가운 달빛 서리를 받고 떨어졌을까요’. 임 말씀대로 조선(朝鮮)이란 거

대한 바위 위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죄로 활짝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

린 임을 ‘비운의 부용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낭군은 과거(科

擧) 준비로 자주 집을 비워 텅 빈 방에 임 홀로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을 임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안타까움이 파도처럼 밀려든답니다.


 임의 일생은 달빛을 머금고 무서리에 붉게 물든 스물일곱 송이 부용꽃처럼 짧지만

화려하고 길 인생을 사셨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계십니다. 그 짧으면서 영원할

후손들과의 인연으로 임은 오히려 현세인들에게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깨닫게 했습

니다. 지금 쯤 저 은하수(銀河水) 한가운데 오작교(烏鵲橋)에서 임께서 경모(敬慕)하

던 시인(詩人) 두목지(杜牧之)를 뵙던지 혹은 초장왕(楚莊王)과 그의 비(妃) 번희(樊

姬)를 초빙하여 돛대가 없는 배를 띄우고 미주(美酒)를 들며 방금 지은 시문(詩文)을

놓고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고 계실 테죠.


 잘 아시겠지만 사람의 일생이라는 게 참으로 덧없다는 것을 요즘 들어 새삼 뼈저

리게 느끼고 있답니다. 임의 서랑(書郞) 김성립(金成立)은 조선의 명망(名望)있는

안동김씨 가문의 후손(後孫)이었습니다. 두 분은 슬하에 요절(夭折)한 남매(男妹)

를 두었고 태중에 아이까지 잃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임의 특출한 시문(詩文)으로

인하여 임의 낭군은 후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아름답지 못한 평을 듣고 있습니

다. ‘낭군께서 백락(伯樂)을 조금이라도 닮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

늘 응어리로 남아있습니다.


 임의 낭군께서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의 부군(夫君) 이원수(李元秀)를 조금이

라도 닮았더라면 임은 한민족(韓民族) 역사상 최고의 문장가(文章家)로 그 필명을

영원히 남겼을 테고, 스물일곱 송이 부용꽃이 늦가을에 무서리를 맞는 일은 없었

테죠. 임의 아버지 허엽(許曄)은 양천 허씨(許氏)로 선조 임금 때 동인(東人)의

거두(巨頭)로 부제학(副提學)을 거쳐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중추부동지사

(中樞府同知事)를 지낸 분이십니다. 공(公)은 재취(再娶)한 강릉김씨(江陵金氏)에

게서 봉(葑), 균(筠) 두 아드님과 임을 낳으셨습니다.


 오빠인 하곡(荷谷) 봉(葑)은 임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분으로 통훈대부 사헌부

장령(掌令), 성균관 전한(典翰)을 지내셨습니다. 참으로 묘하게도 같은 시기에 조정

(朝廷)에 출사하신 임의 아버님 허엽(許曄) 공(公)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은

동서(東西)로 나뉘어 사사건건 대립(對立)하였습니다. 오라비 역시 율곡선생과 대립

의 각을 세우던 중 율곡 선생을 탄핵(彈劾)하다가 도리어 함경도 종성(鍾城)에 유배

(流配)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 석방된 오라비는 정치에 혐오(嫌惡)를

끼고 금강산에 들어가 유유자적하다 38세에 세상을 버렸습니다.

 

 부자(父子)가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객사(客死)하는 불운을 임은 가슴에 묻어야

했습니다. 한분은 처가(妻家)가 있는 경포 호숫가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하며 강릉

(江陵)과 인연을 맺어 가세(家勢)를 일으켰고, 또 한분은 지근(至近)의 오죽헌(烏竹軒)

에서 태어나 조선의 성리학을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과 양분하는 대학자이며 정

치가로 성장하여 문명(文名)이 대대손손(代代孫孫) 전해지고 있는데, 무슨 악연(惡緣)

인지 모르지만 두 분이 강릉을 인연으로 두고 있으면서 대결(對決)하였다는 것이 참

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같은 고을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마치 수천 년 세월의 차이가 나는 것 같은 임과 사임

(師任堂) 신씨, 현세의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임당 신씨가

상을 뜨고 12년 후에 임께서 세상에 나오셨습니다. 만약 임이 좀 더 일찍 세상에 왔

라면 아버지와 그리고 오라비가 율곡선생과 정치적으로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불

미스러운 장은 안 보아도 될 뻔했습니다.

 

 두 가문(家門)의 갈등은 후대를 사는 강릉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큰 상처로 오래 남아

있을 테지요. 어떤 모자(母子)는 후세의 추앙받는 위인(偉人)이 되시었고, 어떤 가문

(家門)의 선녀는 아직도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짊어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임을 받들고

숭모(崇慕)하는 이들이 점점 구름같이 모여들어 임의 시문(詩文)을 입에 달고 다닌답

니다. 조선에 태어났다고, 여자로 태어났다고, 거안제미(擧案齊眉)를 제대로 할 줄 모

르는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고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친정(親庭)의 불운(不運)을 탓할 필요도 없습니다. 임의 아버님과 큰 오라버니

성(筬), 둘째 오라버니 봉(葑), 임의 남동생 균(筠) 그리고 임을 일러 양천 허씨 문중

다섯 문장가(文章家)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답니다. 정치인은 시류(時流)

가 변하면 금방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지지만 문향(文香)이 고운 임의 시문(詩文)

은 영원토록 저 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며 꺼지지 않는 등불로 많은 문사(文士)들과

묵객(墨客)들의 허한 가슴을 채워주고 세상을 밝혀 주리라 믿습니다.


 화관(花冠)을 쓰고 창작(創作)에 열중이신 임을 봅니다. 낭군은 며칠째 돌아오지 않

고 쓸쓸한 동방(洞房)에 황촛불만 가끔 바람에 춤을 추면 한(恨)이 끈끈하게 밴 임의

탄식(歎息)에 팔폭 병풍 속 화조(花鳥)들도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합니다. 춘삼월 늦

은 밤 꽃비가 내리는지 진한 꽃내음이 창문 틈으로 스며들자 임은 살며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봅니다. 달빛이 마당에 쌓인 꽃잎들 위에 하얗게 부서지면서 임의 두 눈가

에 어느덧 알알이 수정방울이 맺힙니다.

 

 따뜻하게 덥혀 놓은 이부자리는 이미 차갑게 식어 버린지 오래 달님도 미안한 생각

얼른 구름 사이로 숨어 버립니다. 여포(呂布)의 초선(貂蝉)이 감히 임에게 비견(比

肩)이나 되겠습니까. 저 멀리서 소쩍새가 짝을 찾는 구슬픈 소리가 바람을 타고 전

지자 임은 붓을 잠시 놓고 경대(鏡臺)를 들여다봅니다. 거울에 비친 여인은 옥황

제(玉皇上帝) 딸인 직녀(織女)이거나 잠시 인간세계에 유배온 선녀가 틀림없습니

다. 임의 아리따운 미모에 달나라로 섬궁(蟾宮)에 살고 있는 항아(姮娥) 조차 질투심

을 유발시킬 지경이었어요.

 

 바람이 불 때마다 꽃향기는 더욱 진해지고 달빛은 태산처럼 뜰에 쌓여도 기다리던

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낙심한 임은 다시 붓을 들어 임의 가슴에 응어리진 정한(情

恨)을 풀어 놓습니다. 그날, 임이 그려 놓으신 그림은 제곁에 두고 애송(愛誦)하고 있

답니다. 먼 훗날 타관에서 달려온 나그네의 목소리로 그때 임이 지으신 시를 낭송해

보겠습니다.

 


    燕倞斜簷兩兩飛(연량사첨양양비)  제비는 처마 끝에 쌍쌍이 날아들고 
    落花僚亂撲羅衣(낙화요난복라의)  지는 꽃은 어지럽게 치마를 스치네. 
    洞房極目傷春意(동방극목상춘의)  봄철 빈 방에서 애태우는 이 속내 
    草綠江南人未歸(초록강남인미귀)  풀은 푸른데 가신 분은 오시지 않네.


                                                        - 허난설헌의 시 “규정(閨情)”에서

 


 어디 그뿐인가요? 이 하계(下界)에는 상심한 여정(女情)을 달래 줄 사람이 없음을

알고 많은 밤과 낮을 통한(痛恨) 속에서 지새우다 은연중에 임의 흉중(胸中)을 시문

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이 시문(詩文) 역시 임의 맑고 마음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규중(閨中) 여인이 이 같은 문장(文章)을 지었다면 사대부(士大夫)들의 지

(指彈)을 받았을 게 뻔합니다. 

 

 그러나 임은 솔직하고 진솔한 심정으로 독사(毒蛇)같은 양반들의 시기(猜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감정을 담아 내셨습니다. 또한 절제 된 묘사

로 여인의 정한(情恨)을 보이고 계십니다. 정말로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맑고 투명

한 유리 하병(花甁)같아 음미하는 내내 사내인 저도 양볼이 빨갛게 달아 올라 사방

을 두리번 거린답니다.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가을의 장호와 옥류는 깨끗하고 푸른데 
    荷花深處繁蘭舟(하화심처번난주)  연꽃 우거진 깊은 곳 난을 실은 배에서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연자)  물을 두고 임을 만나 연을 따서 던지네 
    或被人知半日差(혹피인지반일수)  혹시 누가 보았을까 반나절 부끄러웠지

 

                                                            - 허난설헌의 시 “채련곡(採蓮曲)”에서 - 

 


 감추고, 누르고, 못 본척 해야 하는 당시의 분위에서 임의 시는 명징(明澄)하면

도 금강산 비룡폭포에서 떨어지는 옥류수 보다 더 차고 맑기도 하고 오뉴월 장미

보다 더 뜨겁습니다. 오죽했으면 있지도 않은 가상의 연인(戀人)을 만들어 놓고

연밥을 따서 연못에 던지고 한나절 부끄러워했을까요. 수줍음 많은 여인의 휑한

가슴을 보는 듯하여 감상하는 저로서는 차마 가슴이 저리고 아파 겨우 끝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뜻이 임의 낭군에게 전해졌더라면 어찌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남, 녀

의 마음은 여반장(如反掌)이라 하룻밤 사이에도 구름을 만들고 비를 내리게 하지요.

운우(雲雨)란 참으로 묘합니다. 그 와중에 임은 두 아이들을 먼저 저승으로 떠나보

내야 했습니다. 임의 곡자(哭子)라는 시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답니다. 임의 유택 앞 오른족에 마련된 남매의 무덤을 보면 울컥하는 심

정(心情)을 참을 수 없습니다.

 

 차례로 어린 남매를 먼저 보내야 했던 어미의 가슴 찢는 통곡으로 하늘이 울고 땅

꺼질 듯 한 임의 통한의 노래는 천지신명(天地神明)께서는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올 봄에도 임의 유택을 찾았을 때 외삼촌(外三寸)이신 하곡(荷谷) 허봉(許葑)님이 쓴

두 조카의 죽을 애도하는 비문(碑文)을 보고 저도 참았던 누선(淚腺)을 차마 막을 수

없었답니다. 임의 심정이야 말하면 무엇하겠습니까.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  슬프고 슬픈 광릉 (광주) 땅이여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  두 무덤이 마주 보고 있구나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  백양나무에는 으시시 바람이 일어나고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  도깨비 불은 숲속에서 번쩍인다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  지전을 불살라 너의 혼을 부르고
   玄酒存汝丘(현주존여구 )  너희 무덤에 술잔을 따른다
   應知第兄魂(응지제형혼 )  아아, 너희들 남매의 혼은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으리
   縱有服中孩(종유복중해 )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安可冀長成(아가기장성 )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라리오
   浪吟黃坮詞(낭음황대사 )  황대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이는구나


                                               - 허난설헌의 시 “곡자(哭子)”에서 -

 


 복중(腹中)에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연년사(連年死)한 어린 남매의 무덤을 보며

울부짖는 임의 울음소리가 귓전에 맴돌아 임의 유택(幽宅)에서 발걸음을 돌릴 수

었습니다. 이는 임뿐만 아니라 그 당시 집이라는 질곡(桎梏)에서 힘든 삶을 인

내하며 살아야 했던 대부분 조선 누이들의 슬픈 노래 아니던가요. 제가 임의 흔

적(痕迹)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꽃처럼 어여쁜 임을 무관심 속에 방치한 남편의 무

정(無情)을 탓하고자 함이 아니랍니다.

 

 꽃은 일년 생이지만 사람이란 이름으로 피어난 꽃은 영원을 산답니다. 그러나

사람이라 하여 모두가 영원을 사는 꽃은 아니지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는 축

하를 받고 태어나지요. 임께서 곱게 자라 김성립(金 成立)이란 사내와 부부의 연(緣)

을 맺은 것도 우연은 아닐 테고, 다 피워보지도 못하고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하게 된 것도 역시 우연은 아닐 테지요.

 

 따지고 보면 이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절대 우연에 의해 생겨난 것은 없습

다. 모두가 필연에 의해 생멸(生滅)을 반복할 뿐이지요. 임을 뵙고 싶어 철마(鐵馬)

타고 천리 눈보라 속을 달려온 저나 임의 생가(生家)를 찾는 무수한 발걸음들은

전생(轉生)에 있어 임과 옷깃이 한번이라도 스친 분들 아닌지요.


 가슴에 불덩이를 안고 봉건윤리(封建倫理)의 인위적인 틀 속에서 박제된 채 살아가

야 했을 임의 울분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향한 임의 강렬한 여심(女心)

이 임의 시문(詩文)에 그대로 묻어나 있습니다. 처음 임의 시문(詩文)을 접하는 사람

에게는 임이 하늘에 사는 천녀(天女)로 착각할 테지요.

 

 수많은 신선(神仙)들과 선녀(仙女)들은 바로 임 자신 아니던가요. 아름다운 천녀(天

女)들을 통해 임의 이룰 수 없었던 꿈을 형상화한 유선시(遊仙詩)는 중국의 것들과 비

교하면 수작(秀作)이 틀림없습니다. 한 폭의 요지경(瑤池鏡)을 보는 듯한 몽상에 자주

빠지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습니다.


 임의 시(詩)에 묘사된 화려한 궁궐, 재미있는 놀이, 맛있는 음식들, 아름다운 옷과

식품들, 신선들과 여선(女仙)들 간의 사랑 이야기 등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

들에게 정신적 탈출구가 될 뿐만 아니라,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꿈꿀 수 있게 해주었

습니다. 단지 임의 정신세계를 공유(共有)하기 위해서 도교(道敎)에 관한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안 됩니다.

 

 당송(唐宋)의 복사꽃 향기를 잠시라도 맡아본 문사(文士)라면 얼마든지 임의 체취

느낄 수 있거든요. 필명(筆名)을 드높이기 위하여 창작(創作)을 하는 미천(微賤)한 문

사(文士)들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시류(時流)와 손잡고 짙은 분칠을 한 그들의 문장(文

章)이란 우수마발(牛溲馬勃)이나 마찬가지랍니다. 백 사람이 한번 보고 쓰레기통에 던

져 버리는 시문이 아닌, 한 사람이 평생을 곁에 두고 보는 시문이 더욱 가치가 있고 귀

한 보배 아니겠는지요.


 또한 임의 고귀한 창작(創作)을 두고 일부 정신 나간 자들은 표절(剽竊)이라는 무

임한 독설(毒舌)을 내뱉고 있으나, 이 역시 달보고 짖는 견폐지성(犬吠之聲) 쯤으로

치부하면 될 듯 합니다. “여자무재편시덕(女子無才便是德)”, 여자의 재주 없음은 오

려 미덕이다.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주창(主唱)하던 뻔뻔스러운 조선 중기 사대부

(士大夫)들의 머릿속이 이러했습니다.

 

 그저 여자는 평생 문밖 출입을 삼가고 집안에 들어앉아 애나 낳고 남편의 뒷바라

만 하면 되는 그야말로 여비(女婢)의 신세라야 했습니다. 아비가 죽고 정신적 스승이

었던 오라비 허봉(許葑)이 세상을 뜨고 동생 균(筠) 마저 귀양길에 오르자 임은 몰락

한 가문의 딸이 되어 시어미의 하대(下待)에 죽지 못해 사셨습니다.


 조선(朝鮮) 전,중,후기 여류문인(女流文人)들을 모두 일별(一瞥)해 보아도 임을 능가

할 분은 없습니다. 조선뿐만 아니라 지나(支那)나 동영(東瀛)의 그 여류(女流)들도 감

히 임의 시문(詩文)에 다가 설 수 없습니다. 한대(漢代)의 반첩여(班婕妤), 당대(唐代)

의 설도(薛濤)와 어현기(魚玄機), 송대(宋代)의 이청조(李淸照) 주숙진(朱淑眞)등 지나

(支那)의 여류 문인들이나 조선의 명월(明月), 인임당(姻姙堂), 김삼의당(金三宜堂),

이매창(李梅窓) 등은 감히 임의 곁에 세울 수 조차 없을 듯 합니다.

 

 그들의 시문(詩文)은 여염(閭閻)의 담장을 넘지 못했으며, 사대부들의 감시 하에

우 기방(妓房)에서 사내들의 흥을 돋우는데 이용되었을 뿐입니다. 여성이 사람대

을 받지 못했던 시절이라 임의 고통은 더했습니다. 아버지 초당(草堂) 선생과 오라

하곡(荷谷) 그리고 두 어린 남매의 잇따른 죽음과 동생의 귀양은 임에게 더 이상 삶의

존재 이유를 상실케 했습니다. 임은 조선에게 재앙이자 희망이었습니다. 당시의 재

앙의 불꽃은 후대에 이르러 희망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시문(詩文)의 창작으로 이승에서의 피안처(彼岸處)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던 임은 시

어머니 송씨(宋氏)에게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테지요. 아아, 참으로 어리석고 몽매(蒙

昧)한 시대에 까막눈을 가진 자들 틈에서 한 송이 부용화로 피어난 임은 분명 인간세

에 피어날 꽃이 아니었습니다. 천제(天帝)의 노여움을 사 잠시 하계(下界)에 몸을 의탁

(依託)했던선녀가 분명했습니다. 지상의 우매(愚昧)한 자들이 미쳐 임을 알아보지 못

했습니다.


 뒤늦게 임을 알아본 현세의 후손들이 임의 아픈 상처를 위무(慰撫)하고자 경기도

광주 고을에 이어 임이 일곱 살 때 까지 뛰어 놀던 이곳 초당동(草堂洞) 임의 생가

(生家) 앞에 임을 비롯한 양천허씨(陽川許氏) 다섯 문장을 기리는 시비(詩碑)를 세우

고 기념관(記念館)을 건립하였습니다. 영국이란 나라가 셱스피어(Shakespeare)를

인도(印度)라는 거대한 땅덩이와 바꾸지 않겠다고 호언했지만 우리는 임을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습니다.

 

 임이 세상을 떠나시고 곧 명(明)나라 오명제(吳明濟)란 사내가 조선시선(朝鮮詩選)

이란 서책을 내고, 동시대 남방위(藍芳威)란 명나라 장수가 임진년(壬辰年) 왜인(倭

人)들로 조선이 어수선 할 때 찾아와 조선의 시를 수집하여 조선고시(朝鮮古詩)를

명국(明國)에서 편찬하여 임을 만방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명나라 문인(文人) 주지번(朱之蕃)은 동생 균(筠)과 친교(親交)가 있었

던 자로 임의 시문(詩文)을 모아 명나라에서 난설헌집(蘭雪軒集)을 엮었으며, 1711

년 왜(倭)에서도 분다이지로(文台屋次郎)란 사내가 임의 시집을 편찬한 사실을 아시

는지요. 이렇듯 이웃에서 임을 사모(思慕)하는 기운이 충천(沖天)한데 정작 이 땅의

후손들은 임을 홀대하는 듯 하여 가슴이 미어진답니다.

 

 중국을 대국(大國)으로 섬기며 중국풍의 시문을 지어야 양반행세를 할 수 있다는

사대부(士大夫)들의 고리타분한 습성을 일거에 격파한 분이 바로 임이십니다. 오랜

사대주의(事大主義) 망령이 씌운 자들의 세치 혀는 무시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羽客朝升碧玉梯(우객조승벽옥제) - 우객은 비취 옥계단 타고 올라가고
  桂嚴晴日白鷄啼(게엄청일백계제) - 계수나무 벼랑 맑은 햇살에서 흰닭이 운다
  純陽道士歸何晩(순양도사귀하만) - 순양도사는 왜이리 늦는지
  定向蟾宮訪羿妻(정향섬궁방예처) - 아마 월궁에 항아를 만나러 갔나보네

 


 순양도사인 여동빈(呂洞賓)이 월궁(月宮)에 사는 절세가인(絶世佳人)인 예(羿)의

처, 항아(姮娥)를 만나러 간 이야기를 그린 임의 이 유선시(遊仙詩)는 한 폭의 신

선도(神仙圖)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 공부를 핑계로 임을 독수공방(獨守空房)하

게 한 낭군을 원망하는 마음을 이렇듯 신선의 세계를 시문(詩文)으로 그려내신 임

의 절박한 심정을 조금은 알듯 합니다.

 

 남녀가 자유로이 노닐며 도덕적 금기(禁忌)를 깨버리는 임의 문장은 남존여비(男

尊女卑)와 부창부수(夫唱婦隨)를 부르짖는 당시에는 가히 혁명적 발상이라 할

있겠습니다. 봉건시대(封建時代) 여성에 대한 속박(束縛)을 격파하는 임의 시에

사를 보냅니다. 대관령에서 불어 온 설한풍(雪寒風)이 휘몰아치며 나그네를 눈밭에

묶어놓습니다. 새롭게 조성된 임의 동상(銅像) 옆에 앉아 임의 숨소리를 듣습니다.

시공(時空)은 아무 장애물(障碍物)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놓은 잔에 눈꽃이 내려앉아 감로수가 넘칩니다. 차후로 임을 대하면 눈물

보이지 않겠습니다. 눈물대신 미소를 지어 임의 우울한 심사(心事)를 조금이나마

덜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 동해의 해조음(海潮音)이 들리시는지요. 저 백두대

간(白頭大幹)의 웅장한 모습이 보이는지요. 반도(半島)는 더 이상 소국(小國)이 아니

랍니다. 이제는 지나(支那)에 조공(朝貢)을 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이 땅의 많은 갑남을녀(甲男乙女들이 임의 시향(詩香)을 감상하여 신기루(蜃氣樓)

같은 황금의 노예(奴隸)가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여 주시고, 눈앞에 이익을 쫓는

사람이 아닌 멀리 혜안(慧眼)을 지녀 서로의 가슴을 부여안고 살아가도록 보살피소

서. 나그네는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임의 시비(詩碑)를 또 끌어안습니다.

 

 임은 무서리를 맞고 달빛에 젖어 시들어가는 스물일곱 송이 부용꽃이 아니라 하루

스물 일곱 번 피고 지는, 이 땅에 사는 후손들의 영원한 연인(戀人)이며 아울러 세계

만방(世界萬邦)에 그 문명(文名)을 길이길이 남기실 하늘같은 분이십니다. 마지막

잔을 올리니 마다하지 마시고 흠향(歆饗)하소서.

 

 

 

 


                                                                     - 창작일 : 2011.1.1. 16:00
                                                                      강릉시 초당동 허난설헌 生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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