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 花蛇 / 서정주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베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잃은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무러뜯어,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麝香) 방초(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것은
우리 할아버지의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석유(石油) 먹은듯…석유(石油) 먹은듯…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슴여라! 베암.
우리순네는 스믈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
슴여라! 베암.
꽃 / 서정주
가신 이들의 헐떡이던 숨결로
곱게 곱게 씻기운 꽃이 피었다
흐트러진 머리털 그냥 그대로,
그 몸짓 그 음성 그냥 그대로,
옛사람의 노래는 여기 있어라.
오ㅡ 그 기름 묻은 머릿박 낱낱이 더위
땀 흘리고 간 옛사람들의
노랫소리는 하늘 우에 있어라
쉬여 가자 벗이여 쉬여서 가자
여기 새로 핀 크낙한 꽃 그늘에
벗이여 우리도 쉬여서 가자
맞나는 샘물마닥 목을 축이며
이끼 낀 바윗돌에 턱을 고이고
자칫하면 다시 못볼 하늘을 보자
국화 옆에서 /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귀촉도(歸蜀途) / 서정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하(銀河)ㅅ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
생명력과 절대언어, 그리고 에로티시즘
최 현 식 | 문학평론가
미당 서정주의 등단작은 「벽」(《동아일보》, 1936. 1. 3)이다.
하지만 훗날 그는 「화사」가 자신의 실질적인 문학적 출사표였음을 간곡히 고백했다.
물론 여기에는 투고용 습작품에 불과했던 「벽」이 덜컥 당선되어버린(미당은 2등이었고, 수위는 김혜숙〔본명:허윤석〕이었다) 데 대한 계면쩍음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실제적인 이유는 「화사」야말로 ‘인간원형’이나 인간의 ‘구경적(究竟的) 운명’에 대한 열렬한 탐구의지, 일체의 형용 수식을 배제한 직정(直情)언어의 활달한 구사를 통한 강렬한 관능적 생명력의 표출 등 초기시를 일관하는 미적 특질을 함축하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화사」는 미당의 직접적인 체험을 다룬 것이 아닌, 오로지 상상력의 산물이다. 거기에는 식민지 현실과 인간존재의 모순이 강요하는 ‘비극의 조무래기들’을 극복하고, 태양과 같은 건강하고도 영원한 생명력을 얻고 싶다는 욕망이 투사되어 있다. 미당은 그것을 ‘화사’와 ‘나’가 동화되는 과정의 묘사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화사’는 시적 대상이기도 하지만 시적 자아, 아니 인간일반의 대리적 형상이기도 하다.
그것은 아름답되, ‘크다란 슬픔’을 지녀 ‘징그라운’ 양가적 존재이다. 이러한 ‘화사’의 모순적 본질은 인간을 ‘악’에 빠뜨린 결과 받게 된 이중의 징벌, 즉 ‘에덴’에서의 추방과 ‘절대언어’(어떤 대상과도 소통 가능한, 신화세계의 언어라는 점에서)의 박탈 결과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잃은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무러뜯어”로 표현된 ‘화사’의 행동은 바로 그런 징벌에 대한 공격적 항변이자, 훼손 이전의 자기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의 역설적 표출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화사’의 양가성은 인간일반, 특히 시인 자신의 것이다.
인간 역시 신의 세계에서 추방됨으로써 시간과 죽음에 제약당하고 태초의 ‘말씀’에 목말라 하는 유한자가 되었다. 서정주 초기시에 자주 등장하는 불구자의 이미지, 이를테면 ‘벙어리’ ‘문둥이’ ‘소리를 빼앗긴 앉은뱅이’ 등은 그런 부자유와 불완전에 갇힌 인간의 근원적 비극을 담아내기 위한 형상들이다. ‘화사’도 그렇지만 이들 역시 ‘언어의 박탈’로 인해 비극의 정점을 달리며, 그러면서도 ‘발성될 수 없는 내면의 말’을 끊임없이 부르짖음으로써 존재의 한계를 초극하려 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미당에게 ‘생명’과 ‘인간 원형’에 대한 관심은 곧 언어에 대한 그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화사’는 어쩌면 시인의 무의식적 욕망이 가탁된 미학적 가상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후반부의 에로티시즘의 의미는 보다 분명해진다. 그것은 ‘화사’로 상징된 심층 자아의 욕구에 충실함으로써 현재의 유한성을 뛰어넘는 생명력과 언어를 성취하려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미당은 그것을 ‘크레오파트라’와 ‘순이’로 대표되는 여성과의 합일 욕망으로 축소하여 제시함으로써, 존재의 새로운 도약을 상당히 제약하고 만다. 그래도 미당다운 점은 성적 합일의 메타포로 ‘고흔 입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 입술에서는 분명 어떤 가식도 의도도 없는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사랑에 겨운 비릿한 ‘말’이 흘러나왔을 터, 그것 또한 ‘절대언어’의 한 모습은 아닐까.
徐廷柱의 '花蛇集' -감각의 향연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의 ‘화사집(1941)’을 읽는 것은 한국어의 관능 속에 깊이 잠겨 그 속살을 더듬는 것이다. 제 몸에 한국어의 감각을 새겨 넣으며 자란 이가 ‘화사집’ 앞에서 전율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스물여섯 살 난 청년이 낸 이 얇은 시집은 한국어가 감당할 수 있는 감각의 가장 아스라한 경지에 우뚝 서 있다. 한 묶음으로 발설되고 64년이 지난 뒤에도 이리 휘황하니, 당대 사람들이 ‘화사집’의 언어를 대하며 느꼈을 미적 충격의 아득함은 짐작도 못 하겠다.
‘화사집’과 나란히 놓일 때 싱거워 보이지 않는 한국어 텍스트를 찾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한국어 화자의 육체에 각인된 리듬을 고스란히 시화함으로써 시인공화국 정부를 헌걸차게 수립한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조차도, 나중에 말하는 자의 이점(利點)을 고려하지 않고 16년을 끌어내려 ‘화사집’ 옆에 나란히 놓는다면, 문득 그 찬란함이 바래는 듯한 느낌을 줄 것이다.
한국 현대시문학의 가장 빛나는 성취들 앞에서 비교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발칙하달 수도 있다. 그러나 40대 후반의 내가 가늠해보는 것이 사실은 10대 후반, 20대 초반 청년들의 작품들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면, 그 발칙함을 용서받을 수도 있겠다.
그 청년들보다 20여 년을 더 산 중년 독자로서 판단하건대, 묘사된 감각의 깊이에서 ‘진달래꽃’은 ‘화사집’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물론 묘사된 감각의 깊이가 시적 성취의 높이와 늘 나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지적해 두기로 하자.
‘화사집’의 세계는 미당보다 여섯 살 아래의 김수영이 그리 탐탁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던 ‘노릿한 아름다움’의 세계다. ‘노릿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김수영의 말이 아니라 내 말이고, 나는 ‘노릿하다’는 말에 아무런 부정적 함축을 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향(麝香), 박하, 방초(芳草), 핫슈(미당은 이를 아편의 일종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대마를 원료로 해서 만든 하시시일 것이다), 꽃뱀, 고양이, 수캐, 노루, 몰약, 닭피 따위로 이뤄진 세계를 노릿하다고 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노릿함이 ‘화사집’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아니다. ‘화사집’의 세계는, 좀더 일반적으로 규정하자면, 봄빛의 세계라 할 만하다. 그 봄빛은 말 그대로 봄 경치이기도 하고, 생명체의 봄과 겹치는 관능과 욕정 곧 춘정이기도 하다.
이 둘을 아우르는 ‘화사집’의 봄기운을 생명충동이라 요약할 수도 있겠다. 청년 미당은 제 생명충동을, 제 쩔쩔 끓는 피를 악마적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탐미의 극한에서 자주 노래함으로써, ‘화사집’의 적잖은 공간을 원색적 노릿함으로 물들였다.
‘화사집’의 세계를 한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감각의 끝간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공간 안에서 언어와 관능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 미당은 서투른 탐미주의자들과 달리 관능을 언어에 부여하는 수고를 굳이 하지 않았다. 이 한국어의 주술사가 순식간에 지어놓은 시의 집 ‘화사집’ 안에서는 언어가 곧 관능이다.
“석유 먹은 듯...석유 먹은 듯...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 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슴여라! 베암.// 우리 순네는 스믈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슴여라! 베암”(‘화사’) 같은 구절들에서, 언어와 관능은 온전히 한 몸뚱어리를 이루고 있다.
‘화사집’에 보들레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은 널리 지적된 바 있고, ‘부흥이’ 같은 작품은 보들레르가 사숙한 에드거 앨런 포의 ‘갈가마귀’를 한 순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화사집’의 미당은 추함 바로 앞까지 탐미를 밀어붙이고 어둠 바로 앞까지 밝음을 추구하는 감각의 자율적 항진 능력에서 오히려 선배들을 앞선다. ‘화사집’의 언어들은 바로 그 한계 이쪽에서 아슬아슬, 바들바들 떨고 있다. 그 언어들은 잘 익은 과일처럼 독자의 입에 침을 고이게 하지만, 익음이 지나쳐 문드러지는 법은 결코 없다.
가장 뛰어난 시인들의 경우에도 첫 시집이 대표 시집이 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적 재능의 성격과 관련되는 것 같다. 수학적 재능이 그렇듯, 시적 재능도 매우 일찍 피어나는 일이 흔하다. 그리고 그런 재능의 극히 일부만이 나이 듦과 더불어 마모하는 일 없이 유지되거나 진화하는 것 같다.
미당은 만년의 다소 흐트러진 듯한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면, 생애 전체를 통해 자신의 시 언어를 한국어의 최정상에 두었던 매우 예외적인 시인이다. 이젠 너무 남용돼 아무런 울림도 주지 못하는 상투적 표현을 다시 끄집어내자면, 미당의 시 언어들은 지난 세기 한국어에 벼락같이 쏟아진 축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미당의 죽음 앞뒤로 문단 안팎을 소란스럽게 한 그의 정치적 몸가짐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미당의 경우를 두고 시와 정치의 관계를 따져보려는 논자들이 쉽게 치이는 덫은 문학과 삶, 또는 문학과 정치를 일관되게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의 유혹이다.
그래서 그의 행적에 비판적인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그의 시적 성취의 허약함을 찾아내려 하고, 그의 문학적 성취에 매혹된 사람은 되도록 그의 행적을 호의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할 상황논리를 구성하려 애쓴다.
이렇게 문학과 삶을 내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오캄의 면도날처럼 매력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명의 깔끔함이 아니라 사실 앞에서의 겸손함이다.
그렇다면 사실은 어떤가? 미당의 삶은, 적어도 그의 공적 자아의 행적은, 시시한 것이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젊은 시절 태평양전쟁 시기에 쓴 전쟁선동시든 갑년이 넘어 군사깡패에게 바친 생일 축시든, 그런 문자 행위가 그에게 절박한 신체적 위협과 함께 강요되었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미당은 천연덕스럽게 그런 역겨운 언어들을 자신의 이름으로 활자화했다. 그리고 아무런 뉘우침 없이 ‘종천순일(從天順日)’이라는 궤변으로 그 행적들을 얼버무렸다.
그가 비슷한 세대의 몇몇 반동적 문인들에 견주어 실제로 누린 것 없이 이름만 더럽혔다는 점을 들어 도리어 그의 순박함을, 그 ‘시인됨’을 높이 사주자는 견해도 있다. 그가 실제로 누린 것이 대단찮았느냐는 판단은 별도로 하더라도, 그 사실이 그 행위들의 역겨움을 눅여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그의 공적 자아는 시시한 것이었다.
‘화사집’의 서시(序詩) 격인 ‘자화상’의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같은 대목은 그의 생애 전체를 미리 요약하는 예언의 울림으로 파닥거리지만, 이 구절들의 빛나는 진솔함이 그의 휘어진 생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반면에, 그가 긴 생애 동안 발표한 단 몇 편의 역겨운 ‘기념시’들을 근거로 그의 시세계 전체를 깎아 내리려는 시도 역시 옹색하다. 누군가가 미당의 시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가 아직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화사집’에 실린 스물네 편의 시만으로도, 한국문학사는 그에게 경의를 표할 만하다. 결국 미당의 삶은 시시했지만, 그의 시는 시시하지 않았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인격의 불연속성이라는 해법을 제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오장 마쓰이 송가’를 쓸 때의 미당과 ‘무등을 보며’를 쓸 때의 미당은 다른 자아를 지녔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어제의 내 뇌세포들이 오늘의 내 뇌세포들과 완전히 동일할 리는 없으니, 이것은 보기에 따라 그럴 듯한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자연과학적 곡예는 어떤 생애에 대한 평가 자체를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이런 평가의 혼돈과 불능을 치유할 길은 없는가? 있다. 문학적 재능 곧 글 쓰는 재주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춤추는 재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선선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행적이 아니라) 문인으로서의 정치적 행적을 심문하는 것은 무용가로서의 정치적 행적을 심문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이라는 점이 또렷해진다.
문학이라는 장르에 특별한 위엄을 부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슬픈 일이겠지만, 문학은 그 정도로 시시한 것이다. 엄중한 것이 삶과 역사라면, 하찮은 것이 문학이다. 미당은 시시한 삶을 살면서도 결코 시시하지 않은 문학을 이뤄냈고, 그럼으로써 문학이라는 행위 자체가 시시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 가시내
눈물이 나서 눈물이 나서
머리깜어 느리여도 능금만 먹곺어서
어쩌나...하늬바람 울타리한 달밤에
한집웅 박아지꽃 허이여케 피었네
머언 나무 닢닢의 솟작새며, 벌레며, 피릿소리며,
노루우는 달빛에 기인 댕기를.
산(山) 봐도 산 보아도 눈물이 넘쳐나는
연순(蓮順)이는 어쩌나...입술이 붉어 온다.
http://www.shinmoongo.net/sub_read.html?uid=3888§ion=sc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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