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일 초 1 / 정윤천
사랑이
사랑을 만나
사랑을 완성하는 시간은 실은 일 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랑으로 빚어진 일 초는
지나가버린 일 초도
지금의 일 초도
어디선가 오고 있을 일 초도
모두 다 같은 의미의 시간입니다
반드시 제 몫의 시간일 것이며
제 탓의 시간입니다
어디까지만 내 것의 시간이고
어디서부터는 남의 것이 될 수 없는 시간입니다
사랑의 일 초 동안은 머리 위에 와서 쌓이고
사랑의 일 초 동안은 손톱 밑으로 스미고
사랑의 일 초 동안은 발바닥을 간질여주기도 합니다
일 초들은 거의 십만 년쯤을 거슬러 옵니다
병과 죽음을 포함한 온잦 훼절의 시간들이 잠시나마
일 초 동안을 갈라놓거나
등을 돌리게 하여도
일 초들은 그러나 막무가내로 되돌아서곤 합니다
아침의 이슬방울로도
새떼의 날갯짓 소리로도 저녁의
바람에 흔들리는 들찔레 덩굴의 가시 같은 것으로도
사랑의 일 초 2 / 정윤천
사랑을 지우는데 드는 시간은
일 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 초는
일 초 만에 다시 돌아와 제자리를 잡기도 합니다
칼로 물 베기의 일 초 입니다
일 초 동안 당신에게서 잠시 벗어나보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떄부터의 일 초는
전혀 딴 세상의 일 초입니다
먹구름과 번개가 동반하는 일 초입니다
장풍을 맞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일 초입니다
당신에게로 돌아가는 일 초
사랑을 지워,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시간은
일 초 밖에 걸리지 않는 너무도 뻔한 상식의 시간입니다
시집 - 십만년의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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