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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북항 - 안도현

by kimeunjoo 2012. 6. 28.

     

     

     

     

    북항 / 안도현

     

    나는 항구라 하였는데 너는 이별이라 하였다

    나는 물메기와 낙지와 전어를 좋아한다 하였는데

    너는 폭설과 소주와 수평선을 좋아한다 하였다

    나는 부캉,이라 말했는데 너는 부강이라 발음했다

    부캉이든 부강이든 그냥 좋아서 북항,

    한자로 적어 본다, 北港, 처음에 나는 왠지 北이라는

    글자에 끌렸다 인생한테 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로든지 쾌히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맹서를 저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신하기 좋은 북항,

    불꺼진 삼십 촉 알전구처럼

    포구에 어선과 여객선을 골고루 슬어놓은 북항,

    이 해안도시는 따뜻해서 싫어 싫어야 돌아누운 북항,

    탕아의 눈밑의 그늘같은 북항,

    겨울이 파도에 입을 대면 칼날처럼 얼음이

    해변의 허리에 백여 빛날 것 같아서

    북항, 하면 아직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편이

    있을 것만 같아서 나를 버린 것은 너였으나

    내가 울기 전에 나를 위해 뱃고동이 대신 울어준

    북항, 나는 서러워져서 그리운 곳을 북항이라

    하였는데 너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하였다

     

     

     

     

     

     

     

    모항으로 가는 길 / 안도현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위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이야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번쯤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

     

    부안읍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달리면
    객지밥 먹다가 석삼 년만에 제 집에 드나드는 한량처럼
    거드럭거리는 바다가 보일 거야
    먼 데서 오신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하자고,
    조용하고 깨끗한 방도 있다고,
    바다는 너의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 지도 모르지
    그러면 대수롭지 않은 듯 한 마디 던지면 돼
    모항에 가는 길이라고 말이야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거든

     

    모항에 가는 길은 우리들 생이 그래 왔듯이
    구불구불하지, 이 길은 말하자면
    좌편향과 우편향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한데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싸움에 나섰다가 지친 너는,
    너는 비록 지쳤으나
    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
    저 잘난 세상 쯤이야 수평선 위에 하늘 한 폭으로 걸어두고
    가는 길에 변산 해수욕장이나 채석강 쪽에서 잠시
    바람 속에 마음을 말려도 좋을 거야
    그러나 지체하지는 말아야 해
    모항에 도착하기 전에 풍경에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촌스러우니까
    조금만 더 가면 훌륭한 게 나올 거라는
    믿기 싫지만, 그래도 던져버릴 수 없는 희망이
    여기까지 우리를 데려온 것처럼
    모항도 그렇게 가는 거야

     

    모항에 도착하면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거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물어 오겠지
    아니, 몸에다 마음을 비벼 넣어 섞는 그런 것을
    꼭 누가 시시콜콜 가르쳐 줘야 아나?
    걱정하지 마, 모항이 보이는 길 위에 서기만 하면

    이미 모항이 네 몸 속에 들어와 있을 테니까

     

     

     

    연애 / 안도현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사시사철 바라보는 곳마다 진달래 붉게 피고

    비가 왔다 하면 억수비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 있지는 더욱 못하고

    길거리에서 찾집에서 자취방에서

    쓸쓸하고 높던 연애

    그때가 좋았는가

    연애 시절아, 너를 부르다가

    나는 등짝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무릇  연애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기에

    문득 문득 사람이 사람을 벗어버리고'

    아아, 어린 늑대가 되어 마음을 숨기고

    여우가 되어 꼬리를 숨기고

    바람 부는 곳에서 오랜 동안 흑흑 울고 싶은 것이기에

    연애 시절아,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서 봐라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사랑은 싸우는 것 / 안도현

     

    내가 이 밤에

    강물처럼 몸을

    뒤척이는 것은

     

    그대도

    괴로워 잠을 못

    이루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창 밖에는 윙윙

    바람이 울고

    이 세상 어디에선가

     

    나와 같이

     

    후회하고 있을 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이런 밤 어디쯤 어두운 골짜기에는

    첫사랑 같은 눈도

     

    한 겹 한 겹 내려 쌓이리라 믿으면서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어 쓰고 누우면

     

    그대의 말씀 하나하나가 내 비어 있는 가슴 속에

    서늘한 눈이 되어 쌓입니다

     

    그대

    사랑은 이렇게

    싸우면서 시작되는 것인지요

     

    싸운다는 것은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 벅찬 감동을 그 사람말고는 나누어 줄 길이없어

     

    오직 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인 것을

     

    사랑은 이렇게

    두 몸을 눈물나도록 하나로 칭칭 묶어 세우기 위한

    끝도 모를 싸움인 것을

    이 밤에 깨우칩니다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은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인 것을

     

     

     

     

    나를 슬프게 하는 시들 / 안도현

     

    세상을 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80년대 시인들이 망원경으로 세상을 보았다면,

    90년대 시인들은 현미경으로 본다는 사실을 일단 인정한다고 하자.

    그러나 모든 것을 현미경으로만 보려고 하는 90년대적 세상 읽기 방식이 나를 슬프게 한다.

     

    거기서 싹트는 새로운 상투성이 나를 슬프게 한다.

    망원경과 현미경을 번갈아 가며 보자. 때로는 그 따위 것들 없이,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자.

    광장이 지겹다고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어서야 쓰겠는가.

     

    시로써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슬프게 한다.

    그런데 시로써 말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 한 줄 없이 자기 뱃속에 든 것을 줄줄이 쏟아 놓기만 하는 시는 나를 슬프게 한다.

    얼마나 말을 하고 싶었으면 시라는 형식을 빌어 일방적인 고백을 할까 싶기도 하지만, 시의 옷을 입고 이리저리 시달리는 그 언어는 또 얼마나 몸이 아플 것인가.

     

    말을 하고 싶어도 참을 줄 알고, 노래를 시켜도 한 번쯤은 뒤로 뺄 줄 아는 자가 시인일진대,

    어두운 노래방에서 혼자만 마이크를 잡고 있는 시인은 나를 슬프게 한다.

     

    또한 시인이란, 감정의 물결을 슬기롭게 조절하면서 헤쳐 나갈 줄 알아야 할 터이다. 시란 깊은 강물 위의 노젓기와 같아서 감정을 밀었다가 당기고, 당겼다가 미는 데서 그 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인데,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한 자리에 뱅뱅 도는 시는 나를 슬프게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뒤가 보이고, 뒤로 물러서야 앞이 보이는 법 아니겠는가.

     

    술을 먹지도 않고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는 시가 있다.

    아침에 한 말을 저녁에 또 하고, 3년 전에 한 말을 5년 후에 또 되풀이하는 시는 나를 슬프게 한다.

    수많은 '역전앞'과 '고목나무'와 '서해바다'와 '풀장'의 동어반복이 나를 슬프게 한다.

     

    밤톨만한 돌멩이에다가 설탕물을 바른 시도 나를 슬프게 한다.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소중하고 고귀한 게 사랑이라는 것을 그 누가 모르랴마는 ,

    암컷과 수컷의 달콤한 속삭임만 옮겨 적는 대필자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모든 암수가 밥을 먹고 똥을 싼 뒤에 짝짓기를 한다는 사실은 왜 관심을 두지 않는가.

    때로 사랑도 독약이라는 것, 희망도 아편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알면서도 왜 모르는 척하는가.

     

    시에서 구체성은 감동의 원천이고, 삶의 생생한 근거이다.

    구체성의 습지에 몸을 비벼댄 흔적이 없는 시는 나를 슬프게 한다.

    미당의 시에 나오는, 옛날의 '누이의 손톱'보다 나는 말년의 '할망구의 발톱'이 더 좋은 것이다.

    누이는 재기 넘치는 허구이고 할망구는 깊어진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를 슬프게 하는 시들을 앞으로도 내가 더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생각하는 일은 나를 슬프게 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내가 이제까지 낸 시집들은 나를 슬프게 한다.

    너무 많은 언어를 함부로 다루었구나. 시집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나무들한테 지은 죄 크구나.

    모든 후회는 또 다른 후회를 낳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오늘 다시 뉘우친다. 뉘우침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 간에 순도 백 퍼센트여야 한다.

    그럼에도 내 뉘우침은 뼈가 아프도록 간절하지도 않고, 다만 묽고 싱거운 것 같구나.

     

     

     

     

     

     

     

     

     

     

     

     

     

     

     

    나를 슬프게 하는 시

     

    좌향,우향, 썩은 정치냄새나는 시 (자칭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기치로 내걸고 )

    득도하신 성스러운 가르침의 시( 나이도 얼마 안되신 분들이)

    행과 열을 교묘히 바꿔놓고 어려운 척 하는 시( 장난하냐?)

    자기 지식 자랑하는 시(시한편 속에 철학책 5권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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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걍 편하게 울고 웃는 시가 좋다( 무지한 민초들 달래주면 좋지않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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