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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사는 이유 - 최영미

by kimeunjoo 2012. 5. 7.

           

           

           

           

           

           

          사는 이유 / 최영미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 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 웃음이

          생각 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에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 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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