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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환이, 너는 정들다만 애인처럼 소리 없이 가는구나...' | |||||||||
[내맘대로 현대문학] ‘애정남’ 박인환의 ‘달과 서울 사이’(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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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쌀이 떨어져도 월급을 받으면 고급 옷을 사서 멋을 부리던 남자, 한여름에 겨울 코트를 걸치고 나와 “어서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 여름은 통속이야!”라고 외치는 남자, ‘그 흔한 가락국수 사먹을 돈도 없으면서’ 문인들을 만나면 술을 마시고 외국 시를 읊조리며 자신만의 낭만의 세계에 빠지던 남자, 조용한 영화관에서 갑자기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며 감격벽을 표출하던 남자.
그가 마지막 가던 날도 마찬가지다. 울음 소리가 망우리 묘지에 가득 퍼진 가운데 그의 무덤가에 조니워커 한 병이 뿌려졌고 관 위에는 수십갑의 담배가 던져졌다. ‘.../너는 누구보다도 멋있게 살고 멋있는 시를 쓰고 언제나 어린애와 같은 흥분 속에서 인생을 지내왔다/인환이,/네가 없는 명동, 네가 없는 서울, 서울의 밤거리, 네가 없는 술집, 찻집, 영화관, 참으로 너는 정들다만 애인처럼 소리 없이 가는구나/...’ 절친이었던 조병화가 눈물과 함께 낭송한 조시처럼 그는 ‘정들다만 애인처럼 소리 없이’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떠났다. 누구보다 멋있는 삶을 살았던, 멋있는 시를 썼던, 아니, 누구보다도 멋있게 전쟁 후의 피폐함을 버텨냈던 박인환을 이제 떠나보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센티멘탈 속에 숨겨진 50년대 우리의 자화상 박인환의 시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센티멘탈’의 감성 속에 숨겨진 50년대 서울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만약 그의 감격벽과 겉멋, 허세가 아무 의미없는 ‘잘난 척’에 불과했다면 이렇게 많은 문인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의 시도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인식이 떨어진, 서양 시의 모방’이라는 평가 속에 묻혀졌을 것이다. 그러나 50년대는 너도나도 전쟁의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사람’이 철저하게 그리웠던 시기였다. 전쟁과 가난이 대한민국을 휩쓸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고 이념의 갈등은 점점 심해져 조금만 삐딱한 행동을 해도 ‘빨갱이’로 낙인찍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서울은 무너진 도시였다. 건물과 다리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무너진 도시였다. 바로 그 모습을 박인환은 ‘센티멘탈’을 통해 드러냈다. 아니, 드러냈다는 표현은 잘못됐다. 그는 센티멘탈 속에 현실의 아픔, 50년대를 사는 사람들의 슬픔을 숨겨뒀다. 그의 시가 지금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지금도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의 시에서, 그의 글에서 숨겨진 우리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에필로그 : ‘달과 서울 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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