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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고무지우개똥 / 고형렬
사랑도 지워집니다, 사랑을 잠시 쉬고 연필 끝
고무머리로 삭삭 밀면
사랑은 몇줄의 지우개똥으로 남습니다
지워지는 사랑은 떨기를 떨어뜨리는 꽃
다음 사랑 위에 다른 사랑을 씁니다
조용히 다른 사랑은 다른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사랑 위에 다른 풀, 새 사랑 속에 묻힙니다
사랑이 어려운 건 사랑이 우리를 바람처럼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언제나 용서돼야 합니다
사람들은 사라져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사랑합니다
거리에 돌아오는 바람처럼, 꽃처럼
나중에 모두 몽당연필이 되는 사랑은 새 향나무
육각연필로 쓰는 행위입니다
말랑한 고무머리로 다 지울 수 없는 사랑을
모두 쓰고 나면 그제사 우리가 눈뜨는 사랑이란
이 지상에 없습니다 가벼운 사랑이여
우리 몸은 한 자루의 육각연필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중에서
사람꽃 / 고형렬
복숭아 꽃빛이 너무 아름답기로서니
사람꽃 아이만큼은 아름답지 않다네
모란꽃이 그토록 아름답다고는 해도
사람꽃 처녀만큼은 아름답지가 못하네
모두 할아버지들이 되어서 바라보게,
저 사람꽃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는가
뭇 나비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여도
잉어가 아름답다고 암만 쳐다보아도
아무런들 사람만큼은 되지 않는다네
사람만큼은 갖고 싶어지진 않는다네
<성애꽃 눈부처> 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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