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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 오규원

by kimeunjoo 2011. 4. 22.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흔들리고 있음을

 

 

 

꽃과 꽃나무 / 오규원

 

노오란 산수유꽃이

폭폭, 폭

박히고 있다

자기 몸의 맨살에

 

 

 

빗방울 / 오규원 

 

빗방울이 개나리 울타리에 솝-솝-솝-솝 떨어진다

빗방울이 어린 모과나무 가지에 롭-롭-롭-롭 떨어진다

빗방울이 무성한 수국 잎에 톱-톱-톱-톱 떨어진다

빗방울이 잔디밭에 홉-홉-홉-홉 떨어진다

빗방울이 현관 앞 강아지 머리에 돕-돕-돕-돕 떨어진다

 

 

 

죽고 난 뒤의 팬티 / 오규원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도 아닌 죽은 자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 / 오규원

 

죽음은 버스를 타러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나는 할 일이 많아

죽음은 쉽게

택시를 탄 이유를 찾았다

 

죽음은 일을 하다가 일보다

우선 한 잔 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한 잔 하고

한 잔 하다가 취하면

내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무슨 충신이라고

죽음은 쉽게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이유를 찾았다

 

술을 한 잔 하다가 죽음은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것도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두기로 했다

 

술이 약간 된 죽음은

집에 와서 TV를 켜놓고

내일은 주말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이 제일이지―

죽음은 자기 말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그래, 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오규원 시인

 

*1941년 12월 29일~ 2007년 2월 2일

*출신지-경상남도 밀양

*학력 - 동아대학교

*데뷔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경력 -1982년~2002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수상 - 2003년 제3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학부문
  1982년 현대문학상 수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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