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얼굴 / 김현승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내게 불행이 와도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밖에서 오고
한 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있다.
내가 행복 할 때
나는 오늘의 햇빛을 따스히 사랑하고
내가 불행 할 때
나는 내일의 별들을 사랑한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숨결은
밖에서도 들이쉬고
안에서도 내어쉬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바다는
밀물이 되기도 하고
썰물이 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출렁거린다.
절대고독 / 김현승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
그 체온으로 내게서 끝나는 영원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의 언어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며,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낸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무한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 ― 나의 시(詩)는.
- 시집 "절대고독"(1970)
시인의 후기 대표작인 이 시는 서울시 문화상(1973)을 수상한 시집 <절대 고독>의 표제가 되었다. 주지시이며 모더니즘 계열의 견고한 비유로 이루어진 철학시, 관념시이다. 시인은 줄기차게 고독을 추구하였는데, 그의 고독은 감상적, 허무적인 고독이 아니라 윤리적 차원에서의 고독으로서 어디까지나 고독 그 자체를 위한 고독일 뿐이다.
1연은 ‘절대 고독’의 상태에 도달하여 본질적인 자아를 발견하고, 일상과 미몽에서 새롭게 깨어남을 표현한 것. ‘영원의 먼 끝’은 시인이 평생을 끈질기게 추구하여 도달한 관념과 추상의 공간적 개념으로 ‘절대 고독의 경지’이다. 이것은 5연의 ‘무한의 눈물겨운 끝’이며 ‘더 나아갈 수 없는 끝’이다.
그 절대적 공간-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삶을 관조하고 존재마저 달관하는 초월적 공간에서, 이제까지 이상시(理想視)했던 지상의 ‘아름다운 별’들(시인의 신앙까지를 포함해서)은 흩어져 빛을 잃고, 대신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 오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
‘체온’은 고독의 체온을 말하며, 이 고독의 체온이야말로 순수하고 진실하며 절대적인 생명체(역설적으로 더욱 굳건히 되돌아 오는 신앙까지를 포함한)를 표상한다. 인간 본성으로서의 고독을 순수의 정감(情感)으로 여과시켜 생명적 요소로 승화시키고 그것을 영원(永遠)한 영혼(靈魂)의 세계로 표현하는 시인의 고절(高絶)한 내면 세계가 참으로 휘황하다.
3연은 그 절대적 고독을 온 몸으로 품으며 담담한 심경으로 그 고독의 실체를 바라본다. ‘무한의 눈물겨운 끝’이며 ‘더 나아갈 수 없는 끝’에서 바라보는 시인의 언어―이제까지 써 온 시(詩)들은 얼마나 허망한 것들인가! 그래서 시인은 ‘티끌’로 그들을 날려 보낸다. 주름잡힌 손으로 그 언어들을 어루만지며 평생 써 온 그 시와 함께 영원한 침묵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5연의 ‘드디어 입을 다문다 ―나의 시는.’의 의미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나, 지금까지의 삶이나 시조차도 모두 무위(無爲)로 돌리고 침묵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절대 고독의 경지에서 삶과 시가 완성되는 극치의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주제는 ‘영원한 세계에서의 새로운 자아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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