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물이었습니다 / 이대우
나는 눈물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많은 눈물이었습니다
내가 세상 향해 흘린 눈물은 다 어디로 가고
어머니가 흘리신 눈물만 내 맘속에 남았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선명하기만 한 눈물 자국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나는 눈물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많은 눈물이었습니다
내가 살아서 흘리던 눈물은 다 어디로 가고
어머니의 눈물만 뿌려지는 붉은 꽃잎 되었습니다
넓디넓은 손수건을 가지셔도 다 흘리지 못한
어머니의 안타까움입니다
나는 눈물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많은 눈물이었습니다
내가 눈물로 바라봤던 별이 지금은 정다운데
어머니가 바라보시던 별은 아직도 눈물로 차갑습니다
얼마나 많이 우셨길래 보송한 세월을 한번 못 본
어머니의 젖어있는 마음입니다
어머니 / 이대우
하늘에서 비가 샌다하여도
이미 멀리 가셨기에
야속타 몸부림쳐도
못 달려오시는 어머니
내가 못된 벌레처럼
내가 어머니를 다 갉아 먹었네
세월의 흰 이빨이 갉기 전
내가 먼저 갉아 먹었네
산맥 같이 누운 몸이어서
어머니 앞에 나는 가시였네
숨 마디마디마다 아픔이었네
이제 어머니는 멀리 가셨고
먼 산에 고사리 필적에
배고프시던 어머니가 생각나
원 없이 먹는 하얀 쌀밥이
수많은 모래 같은 눈물로 핀다
어머니 2
어머니,
나를 낳으실 때는
작은 내 신발 사러 갈
돈을 그 어디엔가
마련해 두셨겠지요
그러나 내 발은 신발냄새
맡을 수 없어 개미다리 하나
다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공로로 내 발은 개미한테
감사패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나를 안으실 때는
씩씩하게 자라면
꽃 같은 님 만나
살 거라고 믿으셨겠지요
그러나 내 몸은 방 구들장의
노예로 살아 찾는 님 없어
남몰래 울었습니다
그 후로 내 눈엔 눈물이
남고 또 남았습니다
어머니,
나를 부르실 때는
어서 말 배워 아름다운 말
하나씩 모두 맛보아라고
말씀하고 싶으셨겠지요
그러나 내 입은 언어의
고운 맛 느낄 수 없어
만남이 많은 이 세상에서 나는
하얀 웃음을 웃습니다
그런 까닭에 죄를 모르는
내 입술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까칠한 선인장,낙타를 만나 찔리다"
제법 봉긋한 봉우리를 가진 선인장이 뽐내듯이 낙타의 혹을 흉본다.
자신의 무수한 가시들을 잊어버린 것인지 오히려 그 잘난 가시를 자랑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상처만
남기는 선인장의 독설이 시작된다.
-뜨거운 사막을 죄인처럼 혹을 지고 가는 낙타야, 네 도시락 어디 있니?
그 많은 물음중에 못생긴 두 혹을 시비로 엉뚱한 도시락 타령이다.
땅에 가만히 붙어있어도 먹고 사는거 아무문제 없는데 뭐하러 길고 먼 사막을 걸어가느냐는 듯이...
낙타는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작가의 상상속으로 빠져보자.
그 감동을 함께 나누는 따뜻한 글을 남겨주세요.
『 낙타의 도시락』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
이대우 지음 / 도서출판 솟대
전신마비 이대우시인, 시집 ‘낙타의 도시락’ 펴내
“바퀴 달린 의자로 거리에 나서니/
하늘과 땅 사이에/
그리운 건 미소더라//
꽃도 피고/
풀도 자라는 세상에서 그리운 건/
사람의 미소더라//
무표정한 사람들/
피곤함이 하품하는 거리마다/
그리운 건 희망이더라”
(거리에 나서니, 「낙타의 도시락」)
전신마비를 딛고 최근 세 번째 시집 ‘낙타의 도시락’을 펴낸 이대우(55·사진) 시인.
경북 월성군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3개월 고열에 시달렸고, 전신마비라는 장애가 찾아왔다.
들을 수는 있지만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해 누워서만 지낸다.
그런 그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시였다.
“시가 나의 손이고 입이 됩니다. 학교도 못 다닌 내가 이렇게나마 남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는 하얀 이면지에 희망을 새겨놓듯이 한 자 한 자 시를 꾹꾹 써내려갔다.
“골방에 있다 보니 너무 외로웠었죠. 나에 대한 존재감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불편한 몸, 세상구경은 그에게 사치였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방 한 켠이 그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온 세상이고 우주였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친구는 라디오였다.
라디오가 전해주는 세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세상과 만났다. 서른하나이던 1987년 조카의 도움으로 황량하리만치 넓은 세상으로 첫 외출에 나섰다.
“생전 처음 휠체어를 타는 날, 휠체어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워 하루 종일 감사했습니다.”
천형처럼 드리워진 육신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느낀 순간이었다.
자유를 찾아 그 다음해 집을 떠나 서울, 전라도 무안, 목포의 장애인 시설을 거쳐 2006년 주위의 도움으로
천안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그는 1989년 나눔시각장애인선교회 문예공모전에서 은상 수상을 시작으로 시작활동에 몰입했다.
그 결과 1997년 첫 번째 시집 ‘나의 웃음이야기’, 2002년 ‘영혼의 큰 그릇’에 이어 지난해 11월 ‘낙타의 도시락’을 출간했다.
“애통의 눈물로 맘을 씻고/
인내의 땀으로 몸을 씻어도/
아직 낮아지지 못한/
나의 냄새를//
기도의 심지로 태울 때/
소망의 웃음은/
꽃 되어 피어나고/
살 돋는 기쁨은/
겸손한 향기 되리//
이제는 낮아지리/
이제는 비우리/
깨끗한 그릇처럼/
나를 비우리”
(나를 비우리, 「낙타의 도시락」)
그의 고난과 삶에 대한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진 시를 보며 그에게 삶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캄캄한 밤이 별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는 것같이 삶의 고난은 시가 되죠. 삶이란 가슴의 향기로운 언어로
피어나는 꽃이 아닐까요?”
앞으로의 계획에 묻는 질문에 그는 “삶이란 웃음보다 오히려 절망에 자주 시달리는 것이지만 내 영혼 잔에 소복이 쌓이는 소망으로 등불 삼고 나를 힘들게 하는 내일이 있을지라도 수천 번 거듭하여 매듭을 푸는 그런 인내와 기도로 시를 쓰며 내게 남아 있는 것으로 더 많은 사랑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우 시인은 시집 ‘낙타의 도시락’을 필요한 곳에 조금씩 보내줄 계획이다.
신청은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goodlife21)로 하면 된다.
천안=김윤미 기자 cailloupong@daejonilbo.com
대전일보
출처: 세상의 소금 카페.
http://cafe.daum.net/goodlif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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