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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사랑 1~6 / 김승희

by kimeunjoo 2011.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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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랑1 / 김승희

 

 

가장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
가장 좋은 어머니는 죽은 어머니

가장 좋은 하느님은 돈의 하느님
가장 좋은 아내는 매장된 아내

- 현대문학 2000년 3월호 -



사랑 2 / 김승희

멕시코인들은 말하지
우리에게 하느님은 너무 멀리 있고
미국은 너무나 가까이 있다

세상의 여자들은 말하네
우리에게 하느님은 너무 멀리 있고
남자는 너무나 가까이 있다


사랑은 항상 때아니거나 때늦기 십상이고, 사랑은 대체로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가까이 있기 마련이죠.

그렇지 않은들 어디 사랑이겠습니까?

게다가 이 사랑은 서구중심적인, 남성중심적인 명분들로 똘똘 뭉쳐 있기도 합니다. 김승희 시인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국면들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멕시코와 미국, 여자와 남자, 그 약한 자와 강한 자 사이에 사랑은 불가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은 ‘너무 멀리 있어’ 그림의 떡이고, 사랑의 수탈자들은 ‘너무나 가까이 있어’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뺐고 빼앗기는 사랑도 사랑일까요?

이렇게 어긋나야만 사랑일까요?

당신의 사랑은 무사한가요?
(정끝별ㆍ시인)

 

 

 

사랑 3 / 김승희

 

-고엽제 이야기-


나르키서스는 자신만을 사랑하는 남자
에코는 그만을 사랑하는 여자

그가 말한다
왜 너는 나를 사랑하는 거야?
에코는 따라서 말한다
사랑해줘요.

그가 말한다
제발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아!
그녀는 말한다
가까이 오세요!

나르키서스는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남자
에코는 그의 말을 (잘못) 따라하는 여자

모든 사랑에는 혀의 고엽제가 들어 있다
혀를 말리는 하얀 약이 키스할 때마다 배급된다

 

 

에코(Echo), 나르키서스(Narcissus),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테스피아이의 미소년. 보이오티아의 강의 신 케피소스와 님프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오비디우스의 《메타모르포세이스》에 따르면, 리리오페는 나르키소스를 낳자 테베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 아들이 오래 살 것인지를 물었는데, 테이레시아스는 “자기 자신을 모르면 오래 살 것”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나르키소스(Narcissus)의 아름다운 용모에 반하여 숱한 처녀들과 님프들이 구애하였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메이니아스는 사랑을 거절당하자 나르키소스가 준 칼로 자살하였다.

 

숲과 샘의 님프인 에코(Echo)도 그를 사랑하였는데, 헤라로부터 귀로 들은 마지막 음절만 되풀이하고 말은 할 수 없는 형벌을 받아 마음을 전할 수가 없었다. 결국 에코는 나르키소스로부터 무시당하자 실의에 잠겨 여위어 가다가 형체는 사라지고 메아리만 남게 되었다.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이들 가운데 하나(또는 에코)가 나르키소스 역시 똑같은 사랑의 고통을 겪게 해 달라고 빌자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이를 들어 주었다.

헬리콘산에서 사냥을 하던 나르키소스는 목이 말라 샘으로 다가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샘만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탈진하여 죽었다. 또는 샘물에 빠져 죽었다고도 한다. 한편 고대 유적에 대한 묘사의 정확성으로 잘 알려진 《그리스 안내》의 저자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나르키소스는 먼저 죽은 쌍둥이 여동생을 그리워하여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통해 여동생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라고 한다.

그가 죽은 자리에는 시신 대신 한송이 꽃이 피어났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나르키소스(수선화)라고 부르게 되었다. 정신분석에서 자기애(自己愛)를 뜻하는 나르시시즘도 나르키소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랑 4 / 김승희

 

- 눈보라 속에는 -


눈보라 속에는 손이 들어 있다 하얗게 나부끼며
다가오는 손 누가 추워하나 누가 아파하나
하얀 눈보라 속에는 따스한 손들이 들어 있다
눈보라 속에는 눈들이 들어 있다 환부를 읽으려고
다가 오는 눈 누가 아파하나 누가 다쳤는가
하얀 눈보라 속에는 고요한 눈들이 들어 있다
눈보라 속에는 귀들이 들어 있다 하얗게 나부끼며
달려오는 귀 누가 울고 있나 누가 빌고 있나
눈보라 속에는 따스한 귀들이 들어 있다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가진 천수천안관세음
숭숭 구멍 뚫린 가슴에서 하얀 눈보라 깃털같은
붕대가 화안히 화안히 흩어져 나오는…

 

- 김승희 시집<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민음사.-

 

 

 

사랑 5 / 김승희


성채를 흔들며 신부가 가고
그 뒤에 칼을 든 군인이 따라가면서
제국주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부케를 흔들며 신부가 가고
그 뒤에 흰 장갑을 낀 신랑이 따라가면서
결혼 예식은 끝났다고 한다.

모든 결혼에는 흰 장갑을 낀 제국주의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오세영 시인의 해설]
인간의 사유와 상상력이란 참으로 다양하다. 그래서 인간의 발전도 가능했으리라.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 예식에서 시인은 사랑이나 평화를 보기보다는 제국주의의 공포를 발견한다.

이 얼마나 독특한 관점인가. 그러고 보니 우리의 전통적인 삶에 있어 결혼이란 여자가 남자에게 예속되는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국가(國家)라는 말에 이미 집 혹은 가정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듯 비유적으로 가정을 국가라 한다면 남성 우위의 가정이란 곧 제국주의와 유사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페미니스트로서 김승희씨의 면모가 유감없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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