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의 시심에 절로 젖는 예향
세계일보 | 입력 2010.10.07 22:10
통영, 저 푸른 해원을 가르는 배의 긴 자취… '한 폭의 풍경화'
"통영에 살면 메마른 사람의 가슴에도 감수성이 길러질 것 같아요. 삶과 생각을 부드럽게 할 것 같은 통영에 살면 좋겠어요." 공연담당 기자였다가 지금은 가족과 함께 외국에서 살고 있는 후배 기자가 언젠가 했던 말이다. 윤이상국제음악회에 다녀온 그는 예술가를 여럿 배출한 경남 통영의 매력에 젖었던 듯하다.
그 통영에 다녀왔다. 대전∼통영 고속도로의 맨 남쪽 나들목인 통영 나들목을 빠져나와 통영시청 앞을 지나자 차가 제법 밀린다. 자연스럽게 옛 도심의 문화를 살린 여느 지방의 도시처럼 구불구불한 시내 도로들이 정겹다. 통영을 찾는 이들이 손으로 꼽는 '통영 8경'에는 바다와 섬이 다수 포함된다. 미륵산에서 바라본 한려수도가 첫손에 꼽히고 통영운하 야경, 소매물도에서 바라본 등대섬, 달아공원에서 바라본 석양, 제승당 앞바다, 남망산 공원, 사량도 옥녀봉, 연화도 용머리가 8경에 속한다.
통영운하와 산양관광도로를 거쳐 '통영ES리조트'에 올랐다. 고지대에 있는 통영수산과학관을 지나 리조트에서 바라보자 통영의 8경 중 5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360도로 펼쳐지는 산꼭대기에 들어선 리조트의 장점일 것이다. 거리 때문에 실루엣처럼 흐릿한 곳도 있지만, 동행자에게 손가락으로 특정 지역을 지목할 수는 있었다. 가깝게는 달아공원이 보이고, 멀리 사량도와 제승당 앞바다, 연화도 용머리가 보인다. 그보다 멀리는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흐릿하게 다가온다.
통영 앞바다와 섬들은 이름만으로도 감수성을 자극한다. 욕지도와 사량도, 비진도는 그 이름의 배경을 궁금하게 하는 섬이다. 해금강, 매물도, 연화도 등이 주는 이미지는 또한 어떤가. 3개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통영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되는 섬은 151개.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41개, 무인도는 110개다. 사람은 살지 않을지라도 무인도들은 갈매기 같은 바닷새의 고향으로 넉넉한 역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간혹 드넓은 남쪽 바다를 지나던 바람과 구름이 잠시 한눈을 팔게 했을 곳이다. 때로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영감과 혼을 주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도 통영이 영감을 준 대상은 응당 사람이었을 것이다. 통영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과 토지의 작가인 소설가 박경리, 생명파 시인인 청마 유치환을 낳고 기른 땅이다. 통영 앞바다는 윤이상의 음악에 영감을 주었고, 유치환의 시 '깃발'과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의 배경이 돼 문학작품에서도 복원된 땅이다. 이들 예술가에 견줄 시인 김춘수와 시조가 김상옥, 극작가 유치인, 소설가 김용익, 화가 전혁림이 태어나 자란 곳이 또한 통영이다. 어느 시인은 "나를 기른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통영 출신의 예술가는 "나를 기른 건 8할이 통영 앞바다"라고 고백했을지도 모른다. 이들만이 아니다. 시인 정지용과 화가 이중섭이 통영에 들러 명작을 남기기도 했다.
음악과 시와 소설에서 한국의 정서를 깊게 담았던 예술가의 고장은 마냥 파란 빛깔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원고지와 오선지, 캔버스에 그린 통영은 역사를 가득 담고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파도 소리와 파란 바다를 눈망울에 담은 예술가들은 '평화'의 마음을 가슴에 담았을지 모른다. 평화의 간절한 마음은 통영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의 객사인 세병관(洗兵館)이 말해준다. 서울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목조건물인 세병관의 현판은 두보의 시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이름을 따왔다.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어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통영이 예술의 고장으로 거듭나게 된 데에는 이런 염원과 함께 역사도 힘으로 작용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우수영이 들어서자 8도 쟁이바치(예술가)들이 모여든 것. 대목장과 소목장, 나전장 등 장인들이 통영에 들어와 살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후대에 전하게 됐다. 기후가 좋고 물산이 풍부한 고장에서 평화를 갈구하는 땅으로, 더 나아가 예술적인 분위기도 짙은 고장이 된 셈이다.
통영에서는 어느 곳이든 차를 멈추는 곳이 풍경이 된다. 차를 멈추고 좌우를 살펴보면 바다나 섬이 보인다. 그도 아니면 푸른 산이나 파란 하늘이 보인다. "1년 365일 중 250일 이상이 쾌청한 곳이 통영"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자랑한다. '그림 같은 한려수도의 비경'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맑고 파란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통영에서는 햇살과 바다와 사랑을 주변 사람 누구와도 함께 나눠마실 수 있을 것 같다.
통영=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통영에 살면 메마른 사람의 가슴에도 감수성이 길러질 것 같아요. 삶과 생각을 부드럽게 할 것 같은 통영에 살면 좋겠어요." 공연담당 기자였다가 지금은 가족과 함께 외국에서 살고 있는 후배 기자가 언젠가 했던 말이다. 윤이상국제음악회에 다녀온 그는 예술가를 여럿 배출한 경남 통영의 매력에 젖었던 듯하다.
그 통영에 다녀왔다. 대전∼통영 고속도로의 맨 남쪽 나들목인 통영 나들목을 빠져나와 통영시청 앞을 지나자 차가 제법 밀린다. 자연스럽게 옛 도심의 문화를 살린 여느 지방의 도시처럼 구불구불한 시내 도로들이 정겹다. 통영을 찾는 이들이 손으로 꼽는 '통영 8경'에는 바다와 섬이 다수 포함된다. 미륵산에서 바라본 한려수도가 첫손에 꼽히고 통영운하 야경, 소매물도에서 바라본 등대섬, 달아공원에서 바라본 석양, 제승당 앞바다, 남망산 공원, 사량도 옥녀봉, 연화도 용머리가 8경에 속한다.
◇미륵산에서 바라본 통영 앞바다. 파랗고 맑은 바다를 가르며 남긴 배의 자취가 유독 통영에서 잘 어울린다. |
통영 앞바다와 섬들은 이름만으로도 감수성을 자극한다. 욕지도와 사량도, 비진도는 그 이름의 배경을 궁금하게 하는 섬이다. 해금강, 매물도, 연화도 등이 주는 이미지는 또한 어떤가. 3개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통영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되는 섬은 151개.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41개, 무인도는 110개다. 사람은 살지 않을지라도 무인도들은 갈매기 같은 바닷새의 고향으로 넉넉한 역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간혹 드넓은 남쪽 바다를 지나던 바람과 구름이 잠시 한눈을 팔게 했을 곳이다. 때로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영감과 혼을 주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통영 ES리조트에서 바라본 통영8경의 한 곳인 제승당 앞바다. |
음악과 시와 소설에서 한국의 정서를 깊게 담았던 예술가의 고장은 마냥 파란 빛깔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원고지와 오선지, 캔버스에 그린 통영은 역사를 가득 담고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파도 소리와 파란 바다를 눈망울에 담은 예술가들은 '평화'의 마음을 가슴에 담았을지 모른다. 평화의 간절한 마음은 통영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의 객사인 세병관(洗兵館)이 말해준다. 서울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목조건물인 세병관의 현판은 두보의 시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이름을 따왔다.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어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통영이 예술의 고장으로 거듭나게 된 데에는 이런 염원과 함께 역사도 힘으로 작용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우수영이 들어서자 8도 쟁이바치(예술가)들이 모여든 것. 대목장과 소목장, 나전장 등 장인들이 통영에 들어와 살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후대에 전하게 됐다. 기후가 좋고 물산이 풍부한 고장에서 평화를 갈구하는 땅으로, 더 나아가 예술적인 분위기도 짙은 고장이 된 셈이다.
◇푸른 빛깔이 가득했던 사량도 앞바다가 붉은 낙조에 공간을 내주고 있다. |
통영=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 문학의 향기 > ♣ 시인뜨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화 옆에서>의 일왕 찬미 전쟁 찬미 / 김우종 (0) | 2010.10.26 |
---|---|
천상병 전통찻집 '귀천' 문 닫는다 (0) | 2010.10.22 |
고은 시인, 매년 반복되는 '노벨상 유력후보→실패'..왜? (0) | 2010.10.07 |
고은, 노벨문학상 관련 '노코멘트' (0) | 2010.10.07 |
고은 노벨문학상, 올해는 '양치기소년' 아니다? (0) | 2010.10.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