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집안에 있기 아까운 계절이다. 집을 나서면 고생이라지만 고생을 해도 후회하지 않는 계절이 가을이 아닌가 싶다. 산에 가면 각가지 색으로 단풍 옷을 갈아 입은 나무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고 들로 나가면 황금 벌판의 벼 익는 냄새가 고향을 그리게 한다. 또 산과 밭엔 사과, 배, 감 등 과일들의 노래가 정답다. 보기만 해도 부자가 되는 계절, 이 가을에는 사서 고생을 하더라도 여행 한번쯤 꿈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요정에서 사찰로 변한 길상사
서울에서도 부촌으로 잘 알려진 성북동, 향나무들이 축축 늘어지고 담장이 하늘을 닿을 듯 하며 굳게 닫힌 대문들이 수두룩한 길을 따라 오르면 소담한 길상사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유명한 요정이며 잘 나가던 자유당정권을 지나 유신정권, 그리고 5공화국 때까지 우리나라의 긴요한 일들이 논의되고 결정되든 밀실이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2동에 개원한 이 절은 1997년 길상사로 봉행됐다. 길상사의 역사는 매우 짧고 그리 크지 않은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설립계기가 특이해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지 모른다.
길상사는 도심 속 문화공간
길상사 사찰은 1960년대와 70년대 그리고 80년대 말까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최고급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사찰이다. 성북동 깊숙한 산자락의 대원각 주인이었던 김영한(법명 길상화)여사가 7000여 평의 대지와 건물 40여동 등 1000억원대의 부동산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했다. 그의 법명을 따서 길상사로 탈바꿈하게 됐으며 1995년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등록했다.
서울에 있는 절이지만 송광사 말사로 등록한 것도 특이 하다. 회주 법정스님은 알려진 바와 같이 대중법회를 거의 하지 않는 분이다. 하지만 길상사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으로 창건된 사찰인 만큼 법정스님이 법회를 하고 있다. 한편 길상사는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의 사찰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으로도 유명하며 불도체험, 수련회 등의 프로그램과 미술대회, 결식아동을 돕기 위한 길상음악회 개최는 물론 대중가수의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건강한 사회를 위한 사회참여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도심속 문화공간의 역할도 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석상 꼭 보세요
길상사를 들어서자 마자 만날 수 있는 관세음보살석상은 천주교 고 김수한 추기경의 도움으로 세워졌다고 알려졌다. 이 보살석상은 편안하며 행복감을 줄뿐만 아니라 정감 가는 불상으로 꼽힌다. 마리아 상을 닮기도 했고 불상을 닮기도 하여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뜻을 읽을 수 있다. 화강암으로 제작된 이 관세음보살상은 천주교 신자인 한국 조각계의 거장 최종태 씨가 자청해 제작해서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관세음보살상이기도 하다.
침묵의 집
가을에 길상사를 찾는데는 이유가 있다. 기와 담장에 차곡차곡 쌓인 빨간 단풍잎, 밀실로 올라가는 오솔길에 푹푹 빠질 정도로 포개진 낙엽, 백석과 길상화 여인의 사랑이야기와 기도가 흐르는 구석구석이 애간장을 녹이고도 남기 때문이다. 또 길상사의 특징은 참선 수행을 하는 선방이 여럿 있다는 것, 요정으로 쓰이던 수십 채의 부속 건물들은 이제 선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중 극락전 바로 왼쪽에 위치한 침묵의 집은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선 수행을 하는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참선은 물론 음악을 통한 명상 등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정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용 인원은 8명으로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전 10시~오후 5시 사이에 이용 가능하다. 요정이 사찰로, 밀실이 참선의 공간으로 제공되는 길상사, 가족 가을 여행으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길상사 恨 많은 사랑 엿보기
길상사 실제 창건주인 본명 김영한여사의 법명은 길상화다. 백석 시인에게는 자야로 불렸고 요정에서는 김진향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김영한은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한다. 김영한은 집안이 파산하게 되자 열여섯 살의 나이로 조선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된다. 기생이라고는 하지만 동경의 문화학원을 수학한 엘리트 여성이며 기생생활 중에도 '삼천리문학’에 몇 편의 수필을 발표하며 이름을 알린 문학여성이었다.
조선어학회 회원이었던 해관 신윤국은 김영한의 능력을 인정해 일본 유학을 주선해준다. 신윤국의 후원으로 도쿄에서 공부하던 중 스승 신윤국이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 함흥에서 스승의 면회를 시도했으나 면회가 불가능해 함흥에 눌러앉았다. 이 때 함흥 영생여고 선생님인 백석과 김영한의 운명적인 만남은 이루어졌지만 집안의 반대로 혼례를 치루지 못했다. 백석과 자야가 동거한 기간은 불과 3년여. 백석은 자야와 사랑을 하는 동안 사랑을 주제로 한 여러 편의 서정시를 썼다.
노년의 자야는 1000억원대의 재산인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기부했다. “그동안 고생해서 모은 천억대의 재산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라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후회는 무슨 후회! 천억이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해”라고 대답해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생전의 김영한은 백석의 생일인 7월1일이 되면 하루 동안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못다 이룬 사랑하는 연인 백석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 김영한은 1997년 창작과비평사에 2억을 출연해 ‘백석문학상’을 제정했다. 시집을 대상으로 한 백석문학상은 1999년을 시작으로 매년 수상작을 발표하고 있다.
세상 모든 일은 한 조각 마음에서 비롯된다고들 한다. 내 마음이 열려 있을 때는 모든 일을 포용할 수 있지만, 분노, 어리석음, 탐욕으로 닫혀 있을 때는 바늘 끝 하나 꽂을 데가 없는 것이 또한 사람 마음이다. 화려하지만 한편으론 쓸쓸할 수도 있는 가을, 나를 조용히 돌아보려는 자리, 기도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면 맑고 향기로운 길상사를 방문해 보자. 잃어버린 나를 찾고 내 안의 나와 마주 앉는 시간은 그야말로 나를 맑고 향기롭게 다듬어 줄 것이다. 그리고 올 가을에는 김영한 여사가 쓴 가슴 아린 사랑이야기 ‘내사랑 백석’이란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가을철 햇볕은 최고의 보양식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그야말로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많은 사람이 이맘때면 환절기 건강을 위해 보양식을 찾게 된다. 요즘에는 신종플루까지 유행하면서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보양식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진짜 보양식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음식을 통한 보양은 체력만 보충해주지만 가을 햇볕을 통한 보양은 체력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가을 햇볕이 좋은 이유
가을 햇볕이 다른 계절보다 더 좋은 이유는 계절적인 특성 때문이다. 가을 햇볕은 여름에 비해 낮아진 자외선 강도와 아침 저녁으로 불어주는 선선한 바람 탓으로 여름철보다는 덜 뜨겁고 봄철에 비해서는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좋은 가을 햇볕을 즐기는 요령은 화창한 날 노출 부위에 햇볕을 잠깐씩 몇 번을 반복해서 받는 것이다. 다만 햇빛이 너무 강한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피해야 하며 장시간 야외 활동 시에는 선크림을 발라야 한다.
가을 햇볕이 뼈를 튼튼하게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비타민D는 생선, 특히 연어, 고등어에 많이 들어있고 새우와 우유, 버섯 등에 들어 있으며 햇빛을 많이 쪼여도 보충이 된다. 또 비타민D는 골격 형성에 필요한 칼슘을 대장과 콩팥에서 흡수하는데 기여하며 부갑상선에서 생산되는 파라토르몬, 칼시토닌과 함께 칼슘을 골수로 운반해 뼈대가 제 모양으로 크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비타민D는 비타민 중 유일하게 피부에서 태양의 자외선을 받아 만들어진다.
따라서 가을 햇볕은 체내 비타민D를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햇볕을 적게 쬐는 직업을 가진 회사원들이나 학생들은 햇볕 쪼이는 것이 필수이다. 비타민D가 결핍될 경우 대표적인 질병으로는 머리, 가슴, 팔다리 뼈의 변형과 성장 장애를 일으키는 후천성 구루병, 현기증 등이 있다. 직장인의 경우 점심 후 30분 정도 산책을 하면 하루 권장량에 해당하는 비타민D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우울증 예방에 좋은 가을 햇볕
가을과 겨울에 우울증상과 무기력증이 나타나는 등 활동량이 적은 계절에는 우울증 증상이 악화되는 특징이 있다. 이런 계절성 우울증에는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뿐만 아니라 하루 30분 이상 밝은 빛을 쪼이는 광치료가 효과적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루에 최소 두 번 따뜻한 가을 햇볕을 받는 여유를 가진다면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체내 면역력 강화에도 도움
외부로부터의 세균, 바이러스 등에 의한 인체 방어시스템을 면역력이라고 한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감기 등의 작은 질병에서부터 크게는 암까지도 발생할 수 있어 면역력 강화는 매우 중요하다.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에는 몸에 좋은 보양 음식을 먹거나 질환에 맞는 약을 복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손쉬운 방법이 바로 햇볕을 쬐는 것이다. 햇볕을 받으면 피부의 말초혈관이 확장돼 혈액 공급이 원활해지고 이 때문에 혈액 속 백혈구들의 기능이 활발해져서 인체 저항력이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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