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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시인뜨락

슈만과 클라라와의 사랑

by kimeunjoo 2010. 6. 4.

슈만과 클라라와의 사랑


독일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천재 로베르트 슈만은 교양이 높은 양친 사이에서 1810년 6월 8일 독일 작센의 소도시 츠비카우에서 태어났다.

양친이 결혼을 하기 전 슈만의 아버지는 서적상으로 번역은 물론 소설까지 쓰기도 했으며, 어머니는 외과의사의 딸이었다. 그들은 양가의 반대에도 불구하도 뜨거운 연애 끝에 결혼했다.

 

교육에 열성적인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길러줘야겠다고 생각에서 슈만이 15세가 되던 해 작곡가 웨버의 제자로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실현되기 전에 아버지는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슈만은 음악을 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던 어머니의 권유로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라이프찌히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가장 유명했던 피아노선생 비크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됨으로써 음악의 길로 나섰다.

 

이러한 인연으로 마침내 슈만은 클라라와 만나게 되었다. 비크의 아름답고 재치 있고 훌륭한 딸이 바로 클라라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당시 피아노의 신동으로 이름을 날릴 때 나이는 방년 16세였는데 클라라라는 이름은 “화려하게 빛나고 유명하리라”는 뜻이었다. 클라라라는 이름은 너무 귀한 탓에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지어진 이름이라 하였다.

 

클라라는 슈만보다 9살 어렸는데 사실 두 사람 이 처음으로 만났던 것은 슈만이 18세, 클라라가 9세 때였다. 1832년 5월에 쓴 슈만의 일기에는 "클라라는 더 귀여워지고, 자랐고 힘도 세고 건강해졌다"고 쓰여져 있는 것을 보면 13세의 소녀 피아니스트에게 눈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클라라도 이 20세가 갓 넘은 슈만을 오빠라 부르며 잘 따랐으며 그것이 연애감정으로 확실히 변한 것은 3년여 지나고부터였다. 그리고 첫 입맞춤은 클라라가 16세였고 슈만은 25세였을 때였다. 그 후 결혼하기까지 5년 간의 큰 시련 끝에 두 사람의 사랑은 맺어졌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 슈만에게는 중요한 일들이 기다렸다. 1832년 6월에 피아노를 쉽게 치기 위해 기계를 사용하다가 갑자기 손가락에 마비가 와서피아니스트로서의 장래를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 결과 1833년 가을, 그에게 최초의 심한 우울증이 발작되었다.

 

1835년 둘의 입맞춤을 시작으로 사랑이 싹트지만 클라라의 아버지는 이미 피아니스트의 꿈을 저버리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작곡가 슈만이 천재 피아니스트로 만인에게 인정받는 딸과 결혼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였다.

1837.9.18일에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아버지와의 만남은 아주 안 좋았소. 차가움과 증오밖에 남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보며 사랑을 멸망시킬 준비를 다 마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소. 이렇게 오랜 세월을 기다렸는데, 이제 어찌해야 좋은가? 여기서 끝내야 하는 것인지……


그래도 둘이 헤어지지 않자 비크는 1939년 결혼 조건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그것은 ①비크가 살아있는 동안 둘은 작센을 떠날 것, ②슈만은 비크에게 말이든 글이든 일체의 연락을 하지 말 것, ③슈만의 수입증명을 법적으로 공증할 것, ④클라라의 개인재산은 5년간 압류하고, 클라라는 모든 유산을 포기할 것 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엄청난 조건에 불복하고 결국 전대미문의 소송 즉 아버지의 허락 없이도 결혼할 수 있다는 재판에 승소하여 1840년 9.12 드디어 둘은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비크는 12일간의 감옥생활이 언도되었으니, 클라라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그녀는 이렇게 괴로운 심경을 기록하였다.


  나 자신보다도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그의 품에 안긴 생활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신이여 모든 어려움을 인내할 수 있는 여자가 되도록 저에게 힘을 주소서.


도대체 왜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슈만은 클라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까?

슈만의 아버지가 정신착란으로 돌아가신 지 1년 전인 1826년 누님이 죽는데 누님 역시 정신착란으로 인한 자살이었다. 어머니는 1836년에 돌아가셨다. 더구나 세 명의 형도 그의 생전에 죽고, 또 친구인 의사의 아내 아그네스 카루스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성장기의 슈만에게 더욱 아픔을 가해주었다.

 

무엇보다도 슈만은 아버지와 누이가 연이어 정신 착란의 증세를 보이며 죽어 가자 그는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혈통적인 정신질환이 자신에게도 미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려고까지 한 그는 생을 마칠 때까지 원초적 공표감과 대화 기피증, 환청으로 고생하였다.

 

이런 우울하고 정신적으로 회색이던 슈만에게 클라라는 괴로운 심정을 토로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구원이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클라라 역시 피아니스로의 꿈을 접은 9살 위인 슈만을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 혹은 존경까지 따스하게 위로하여 주었을 것이며, 오랜 순회 연주 등에서 느낀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넉넉한 품으로 슈만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슈만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클라라와 결혼하고 1841년 〈교향곡의 해〉에는 장녀 마리 Marie가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교향곡 제1번, 서곡, 스케르쪼와 피날레,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1845년에 유명한 협주곡이 된다), 교향곡 제4번 등이 완성되었으니, 이 곡들에는 슈만의 마음의 평정과 정열까지도 나타나 있다.

 

슈만은 클라라와 함께 연주여행도 다니지만 결국 혈통적인 정신 질환을 이기지 못한 채 그녀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에도 불구하고 정신 질환에 시달리다가 본 근처의 한 정신 병원에서 1856년 7월 29일 46년의 짧은 생을 마쳤다.

그가 죽기 두 달 전인 5월 1일에 클라라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5월 1일 그대에게 봄 인사도 못하고 지나가 버렸네. 이 편지가 다 하지 못한 우리의 얘기를 대신하겠지, 우리네 사랑의 생일을 지나치다니. 잘 있으오, 내 사랑 - 당신의 슈만이”


슈만의 정신질환은 결혼한 지 3년 쯤 되는 1843년 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는데 클라라가 받은 충격이 너무 컸을 것이다. 사실 그의 다섯째 아들도 정신병원에서 사망하기도 하였다.

1845년 쯤 병세가 다소 호전되어 몇 곡의 작품을 쓰게 되는데 1845년 12월 12일 착수하여 이듬해 10월 완성한 교향곡 2번이었다.

 

슈만은 생을 마치기까지의 그 과정이 참으로 비극적었다. 슈만의 마지막 말년의 2년간은 청각이상과 환각증상에 시달리면서 본 교외 엔데니히의 정신병원에서 혼자서 살았다. 몸소 정신병원에 들어갈 것을 주장한 슈만은 자신의 의지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미쳐서 라인강에 몸을 던졌다. 다행히 그는 어부에게 구원되어 본 교외의 엔데니히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는데, 여기서 2년여의 요양생활을 한 뒤에 숨을 거둔 것이다.

가정형편 때문에 남편을 돌보지 못하고 연주계에 복귀하여 2년간의 연주여행을 떠나있던 크라라는 슈만이 죽기 이틀 전에야 병원에 있는 남편을 만났다. 그때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였을 초췌한 정신병자 슈만을 바라보는 클라라의 한없는 슬픔과 회한에 휩싸여 버렸다. 


 슈만은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내가 요하암을 맞으러 기차역에 간 사이, 그는 병원에서 홀로 영원히 잠들었다. 숨을 거둔지 30분이 지났다고 했지만 그는 평상시처럼 단아한 모습이었다. 뜨겁게 사랑했던 그이, 아! 그는 나를 함께 데려 갈 수 없었는가.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그의 머리맡에 몇 송이 꽃을 놓았다. 그리고 그는 나의 모든 사랑을 가져갔다.


그 날 슈만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클라라는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 슈만의 유해는 본의 묘지에 묻혔다. 이 무덤에는 뒤에 아내 클라라도 함께 묻히고 말았다. 

 

1840년이면 그의 나이 30세, 그리고 클라라와 결혼을 할 시기이다.

슈만은 클라라의 사랑에 힘입어 무려 150편의 노래를 작곡하게 되었다. 그 중 시에 곡을 붙이며 슈만은 이미 다가올 운명을 예감하지 않았을까?

 

슈만의 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는 샤미소(Chamisso)의 독일어로 된 시에 의거 1840년에 작곡되었다. 한결같은 사랑에 사는 여자의 생활감정을 처녀시절의 연애·결혼·출산·남편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노래한 독일 낭만파가곡의 명곡으로서 〈그 사람을 알고부터〉 〈누구보다도 뛰어난 그대〉 〈나는 모르겠다〉 〈내 손가락의 반지〉 〈친구여, 손을 빌려 다오〉 〈다정한 벗이여, 수상한 눈으로〉 〈가슴에 품어다오〉 〈처음으로 괴로움을〉의 8곡으로 이루어졌다. (출처: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그 줄거리는 “한 아가씨가 이상적인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한다. 이윽고 그녀는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된 기쁨에 젖는다. 행복하게 살던 그녀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 미망인이 되고 홀로 남은 쓸쓸함을 노래한다.”는 여인의 일대기였다.


다음은 [여인의 사랑과 생애(Frauenliebe und -leben]의 내용이다.

샤미소(A.V. Chamisso, 1781~1838)의 시를 가사로 한  [여인의 사랑과 생애]는 슈만의 활동이 가장 왕성하던 1840년에 작곡된 것으로 선율의 아름다움과 서정성에 있어서 더없이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여인의 생애를 줄곧 사살의 측면에서 묘사한 곡으로써 서로 연속적인 성격을 띤다. 즉 여인의 생애를 통해 거치게 되는 단계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특히 이작품은 클라라와의 결혼을 오랫동안 미루어 오다가 성사를 이룬 직후여서 더욱 그러하다.

 

 [여인의 사랑과 생애] 는 한 여인의 처녀시절로부터 미앙인이 되기까지 삶을 노래한 연가곡으로 제1곡과 3곡은 남성과의 만남에서 사랑에 이르기까지를, 제4곡과 5곡은 결혼의 행복한 나날들을, 그리고 제6곡과 7곡은 출산으로 어머니가 된 기쁨을, 제8곡은 남편의 죽음으로 미망인이 되어버린 여인의 삶을 각각 묘사하고 있다.

 

시인의 사랑

1828년 라이프치히 법과대학에 입학하게 된 슈만은 그해 가을 남독일 지역을 여행하게 된다. 이때 뮌헨에서 그가 평생에 걸쳐 영향을 받게 된 세 작가(바이런, 호프만, 하이네)중의 한명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다. 특히 1827년에 발표된 하이네의 [노래의 책](Buch der Lieder)은 당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었으며 슈만 역시 이 작품에 깊이 경도되어 하이네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짧지만 강렬한 만남 이후 슈만은 음악에 더욱 심취하여 집중적인 수업을 받게 된다.

 

 

 

250여 편에 달하는 슈만의 가곡 중 최고의 걸작 

당대 최고의 피아노 교사였던 프리드리히 비크(Friedrich Wiek)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있던 슈만은 스승의 딸인 클라라 비크(Clara Wiek)와 열렬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전도가 유망한 피아니스트로 미래가 보장되어있던 클라라에 비해 무명의 작곡가 지망생이었던 슈만은 스승 비크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게 되고 이후 끝없는 법정 공방이 시작되게 된다. 소송이 시작된 지 2년 후인 1840년에야 비로소 비크는 두 사람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허락하게 된다. 이렇듯 극적인 삶을 살았던 슈만의 생애에서 1840년만큼은 가장 행복한 시기로 기록되며 이 시기에 그의 주옥같은 음악적 유산들이 집중적으로 탄생하게 된다. (가장 주요한 작품이 쏟아져 나왔던 이 시기를 ‘노래의 해(Liederjahr)’라고 부르기도 한다.)

 

250여 편에 달하는 수많은 가곡들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48)이 탄생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슈만은 이 작품에서 하이네의 [노래의 책] 중 ‘서정적 간주곡’ 부분에 음악을 붙여 작품을 완성한다. ‘서정적 간주곡’에는 하이네의 사촌 동생이었던 아말리에와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고통이 고스란히 투영되어있다.

 

순탄치 못한 사랑을 했던 슈만이 이 주옥같은 시어에 공감하지 못했을 리 없다. 작품 내에서 이원화된 자아를 투영하거나, 텍스트를 통해 자아를 투영하는 수법을 즐겨 썼던 슈만은 이 [시인의 사랑]에서 극적인 요소보다는 꿈결 같은 선율로 낭만성과 비극성을 극대화 시킨다. 특히 이 작품은 슈베르트의 연가곡처럼 내용적인 연계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완결된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데, 제1곡~6곡은 사랑의 시작을 제7곡~14곡은 실연의 아픔에 대해서 15곡과 16곡은 지나간 청춘에 대한 허망함과 잃어버린 사랑의 고통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전 곡에 유기적인 연결성을 부여하기 위해 못갖춘마디를 사용하는 등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는 파격적인 경향도 드러난다.

 

 

 

 

사랑의 시작과 실연의 아픔, 지나간 청춘의 허망함에 대한 노래

제 1곡 아름다운 5월에 (Im wunderschoenen Monat Mai)
꿈꾸는 듯한 펼침 화음으로 시작되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함께 사랑의 설레는 심정을 아름답게 표현해 냈다. ‘아름다운 5월에 꽃봉오리들이 모두 피어났을 때 나의 마음속에도 사랑의 꽃이 피어났네 ……’

  

 

제 2곡 나의 눈물에서 꽃이 피어나와 (Aus meinen Traenen spriessen)
느릿한 선율로 사랑의 고독함을 노래한다. 선율보다는 가사의 전달이 두드러지는 단순한 진행이 인상적이다. ‘나의 눈물에서 수많은 향기로운 꽃이 피었고 내가 내뱉은 한숨은 나이팅게일들의 합창이 되리라. ……’

 

제 3곡 장미, 백합, 비둘기, 태양 (Die Rose, die Lilie, die Taube, die Sonne)
느리게 전개되는 앞의 곡과 선명한 대조를 보이며 22마디의 짧은 곡이지만 극적인 요소와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 ‘장미, 백합, 비둘기, 태양 이것들을 모두 옛날엔 무척 사랑했노라 지금은 그것들이 아닌, 단한 사람,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깨끗한 사람을 사랑하노라. ……’

 

제 4곡 그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노라면 (Wenn ich in deine Augen seh')
시인의 행복함은 절정에 올라 사랑의 행복에 눈물을 짓게 된다. 선율이 부각되지 않는 레치타티보적인 성향이 강하며 가사의 전달력을 극대화시킨 슈만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그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노라면 번뇌도 고통도 다 사라지고 그대에게 입맞춤을 하면 마음은 분명 맑아지네’

  

 

제 5곡 나의 마음을 적시리 (Ich will meine Seele tauchen)
백합의 노래를 상징하는 서정적인 선율이 아르페지오의 반주부와 함께 꿈결처럼 흐른다. ‘나의 마음을 깊숙히 적시리 백합의 받침대 속으로 그러면 백합은 사랑하는 사람의 노래를 울려 주면서 꽃 피어 향기 떨치리. ……’

 

제 6곡 거룩한 라인 강에 (Im Rhein, im heiligen Strome)
왼손의 지속음은 쾰른 대성당의 오르간 소리를 오른손의 진행은 라인강의 흐름을 나타낸다. 불안한 음형은 다가오는 이별을 예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거룩한 라인 강에 거룩한 대도시 쾰른은 쾰른의 대성당의 그림자를 수면 위에 비추고 있네. ……’

 

 

 

제 7곡 나는 울지 않으리 (Ich grolle nicht)
전반적으로 서정적인 선율을 들려주는 이 작품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배신의 슬픔은 폭발적으로 등장하는 고음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울지 않으리, 이 가슴이 부풀어 터지더라도 영원히 잃어 버린 사랑이여, 나는 울지 않으리 그대가 다이아몬드의 빛으로 꾸밀지라도 그대의 심중의 어둠을 비쳐 줄 빛은 없으리. ……’

 

 

 

제 8곡 만일 예쁜 꽃이 안다면 (Und wuessten's die Blumen, die kleinen)
분노가 폭발하는 7곡과는 대조적으로 시인의 슬픔이 묻어난다. 반주부의 하강음형은 지속적으로 펼쳐지며 9곡의 분노를 암시하는 종지부의 격렬한 반주도 인상적이다. ‘나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고 있는지를 만일 예쁜 꽃이 안다면 이 마음의 깊은 상처를 낫게 해 주려고 나와 함께 울어 줄 터인데. ……’

 

제 9곡 저것은 플루트와 바이올린 (Das ist ein Floeten und Geigen)
왈츠풍의 긴 반주부가 펼쳐지는데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남자와의 결혼식에서 윤무를 추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다. ‘저것은 플루트와 바이올린 트럼펫도 틈틈이 울린다 거기에서 사랑스런 그 사람이 혼례의 윤무를 추고 있는가보다. ……’

 

 

 

제 10곡 저 노래가 들려오면 (Hor' ich das Liedchen klingen)
민요풍의 선율이 옛 노래를 회상하는 시인의 심상을 드러낸다. 느리게 전개되는 악상에서 슬픔은 더욱 고조된다. ‘옛날 저 사람이 노래 부르던 저 노래가 들려오면 달랠 길 없는 번뇌로 인하여 가슴이 메어 터질 것만 같다. ……’

 

제 11곡 한 총각이 한 처녀를 사랑했으나 (Ein Jungling liebt ein Madchen)
발라드풍의 서사와 풍자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가사의 내용 역시 얽히고설킨 사랑에 대한 조롱이 여과 없이 드러나며 싱코페이션의 잦은 사용으로 풍자적인 느낌이 더욱 강조된다. ‘어느 한 총각이 어느 한 처녀를 사랑했으나 그 처녀는 다른 총각을 사랑하고 다른 총각은 또 다른 처녀를 사랑하여 이 처녀와 결혼해 버렸네. ……’

 

제 12곡 맑게 갠 여름 아침에 (Am leuchtenden Sommermorgen)
돌연 5곡풍의 서정적인 아르페지오 반주가 등장한다. 분노의 마음이 용서의 마음으로 잠시 변하는 것을 표현하는 듯하다. ‘맑게 갠 여름 아침에 꽃동산을 거닐고 있자니 꽃들은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아무 말 않고 걸어갔다. ……’

 

 

 

제 13곡 나는 꿈 속에서 울고 있었네 (Ich hab' im Traum geweinet)
시인은 꿈속에서 울다가 돌연 잠이 깨고 만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에서 시인은 창백한 독백을 읊조리는데 반주가 없는 모놀로그는 가사의 의미를 더욱 극대화시킨다. ‘나는 꿈속에서 울고 있었네 그대가 무덤 속에 있는 꿈을 꾼 때문이네 잠을 깨었어도 계속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네. ……’

 

제 14곡 밤마다 꿈속에서 (Allnaechtlich im Traume seh' ich dich)
단순화된 악구들은 지금까지 지탱해왔던 고통스러웠던 사랑에 대해 마무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꿈에서 그녀를 만나 눈물로 슬픔을 승화시킨 후 모든 사랑과 추억은 사라져버린 사이프러스처럼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밤마다 꿈속에서 그대와 만나서 상냥하게 인사하는 그대를 보고 나는 왈칵 울음을 터뜨리면서 그대의 그리운 발에 매달렸네. ……’

 

15곡 옛 이야기의 나라에서 (Aus alten Maerchen winkt es)
활발하게 이어지는 조바꿈과 ach!로 이어지는 외마디 함성은 그간의 고통을 완전히 승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7곡과 같은 드라마틱한 감성이 인상적이다. ‘옛 이야기의 나라에서 하얀 손이 손짓하여 부르고 마법의 나라에서는 노랫소리와 악기의 소리가 들려온다. ……’

 

제 16곡 옛날의 불길한 노래 (Die alten, boesen Lieder)
시인은 지금까지 이어진 모든 이야기를 하이델베르크의 술통보다 더 큰 관에 넣어 바다에 가라앉히려고 한다. 점차 상승하는 듯한 악구들은 코다로 이어지며 모든 악구를 반복하며 앞의 시들을 환기한 후 점차 침잠하는 관처럼 모든 곡은 종결되게 된다. ‘옛날의 불길한 노래, 화가 치미는 나쁜 노래, 그것들을 이제는 장사지내자 커다란 관을 가지고 오라. ……’

 

 

 

노태헌 / 음악 컬럼니스트
음악 컬럼니스트 노태헌은 클래식음악 전문지 [라 뮤지카], [그라모폰 코리아],
[코다],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안단테]등에 클래식 음반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다.

 

이미지TOPIC / corbis

해설출처: 네이버, 명곡 명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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