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마가리'는 오막살이 이다.
*천재시인 '백석'의 1938년 3월에 발표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시기에 '백석'은 제자인 김진세의 친누이에게 청혼을 했지만 몸이 약하고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반대를 받아 실패한다.
또한 '자야'라는 기생과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도 그 이유에 해당 됐으리라.
'백석'은 여러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정작 자신이 사랑한 '란'이나 김진세의 누이와는 맺어지지 못했다.
그 와중에 쓰여진 시가 바로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이다.
영어와 러시아어에 능했고 시 잘 쓰고 핸섬한 모던보이 '백석'에겐 여자가 많았다.
그 중에도 소설가 ‘최씨’, 통영 처녀 '란(박경련)'과 기생 '자야'의 인연은 특별해 보인다.
그들 중에서 누런 미농지 봉투 속에 든 이 시를 백석에게서 직접 받았다고 전하는 '자야' 여사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첫눈 오는 날 길상사(성북동) 마당에 뿌려달라고 유언했고, 그리 되었다.
하지만 '나타샤'가 누구인지는 글쎄...
*백석의 여인 - 자야의 사랑
그사람을 사랑한 이유 / 이생진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그게 무슨 소용있어 '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어디서?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서 문학 할거야'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 '잠풍'은 잔잔하게 부는 바람, '달재'는 달강어로 쑥지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진장'은 진간장이다.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있던 '백석'은 '자야'의 하숙집으로 가 밤을 지세는 것이 일과였고,
'자야'가 서울로 올라가자 얼마 안 있어 영생고보 교사직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가 자야와 동거를 시작한다.
'백석'은 '자야'가 사준 넥타이를 매일 같이 매고 다녔고, '가난한 집'은 자야의 하숙 집이다.
*11월 30일 오후 3시 하동 들꽃산방에서 화가 오치근이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연락해왔다.
어린이 그림책 [오징어와 검북]을 한길사에서 출간했다고 한다.
바로 천재시인 백석의 동화시를 수묵 담채화로 그렸다는데...
몇 번 술 한 잔 하자는 약속을 못 지켜서 꼭 가봐야 하는데, 일요일(하늘)이라서
* 문득, 백석의 시를 읽다가 개그콘서트 안상태 기자의 대사가 떠오른다.
나~안, 혼자 쓸쓸히 소주 마시고 있고,
나타샤가 보고 싶을 뿐이고!,
눈은 푹푹 날리는데... 어데선가 흰 당나귀 울음 소리 응앙응앙 들리고!,
나타샤만 생각 나고,
*책 표지의 '백석'의 사진을 보라. 바로 영화 '모던보이' 이해명(박해일)의 모델이다.
'백석'의 친구 '김기림' 시인은 당시 최고의 모던보이 '백석'이 머리를 날리며 광화문에 나타나면 광화문이 환해졌다고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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