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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나비의 꿈 - 먼데이 키즈 (Monday Kiz)

by kimeunjoo 2009. 6. 26.

            먼데이 키즈 (Monday Kiz) - 나비의 꿈 꿈꾸고 있는것 같아 예전처럼 다 모두 똑같아서 이젠 여기 없는 너를 하루종일 찾아 헤맸어~ 익숙해져버린 습관처럼 너의 이름을 또 부르고 그저 단 하루도 가지 못한 채로 제자릴 맴도는데 너 없는 긴 하루가 지나가고 오늘도 함께한 기억 속에 살아가도 서늘하게 떠나가던 그 모습이 되살아나 산산이 내 맘을 부수고 떠나간 너를 돌릴 수도 없는 내 눈물은 끝없이 가슴을 타고 흘러 날 보던 미소도 그 오랜 추억도 모두 다 씻어내는 날이 올까 꿈속에 너는 언제나 예전처럼 날 너무 사랑해서 아주 작은 숨결조차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아~ 꿈을 깨면 마치 연기처럼 모두 사라질 것 같아서 웃고 있는 너를 보는 순간에도 눈물이 흐르는데 너 없는 긴 하루가 지나가고 오늘도 함께한 기억 속에 살아가도 서늘하게 떠나가던 그 모습이 되살아나 산산이 내 맘을 부수고 떠나간 너를 돌릴 수도 없는 내 눈물은 끝없이 가슴을 타고 흘러 날 보던 미소도 그 오랜 추억도 모두 다 씻어내는 날이 올까 언제부터 이렇게 엇갈린 길 위에서 나는 (너 없이~ 난) 다시 볼수 없는 널 이렇게 찾아 헤맸는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나에게 돌아와 내 꿈처럼 (내 꿈처럼) 아직도 기억 속에 사는 나를 위해 자꾸만 내 시간을 되감곤 해 그때로 우리가 사랑하던 그날들로 따스하게 손 내밀던 그 모습이 되살아나 내 모든 기억을 돌리고~ 모질게 내 가슴을 뒤흔드는 내~ 눈물은 남겨진 미움도 씻어내려 마치 운명처럼 다시 예전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날이 올까 마치 운명처럼 다시 예전처럼~ 꿈처럼 사랑하는 날이 올까










장자의 나비의 꿈


昔者 莊周夢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則必有分矣. 此之爲物化.


胡 : 오랑캐 호

蝶 : 나비 접

之 : 의 지

夢 : 꿈 몽


나비가 된 꿈이라는 뜻으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 또는 인생의 무상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호접지몽(胡蝶之夢)’은 ‘물아(物我)의 구별을 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장자(莊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기는데,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분간하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약해서 ‘호접몽(胡蝶夢)’이라고도 한다.


장자는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불안한 시대를 살았던 그는 인간의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사유하게 되었고, 그 자유를 추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 결과 물(物)의 시비(是非)·선악(善惡)·미추(美醜)·빈부(貧富)·화복(禍福) 등을 구분짓는 일이 어리석은 일임을 깨닫고, 만물은 결국 하나의 세계로 귀결된다[物我一體]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제창하였다. 호접지몽이라는 고사에 이러한 생각이 비유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다음은 《장자》의 〈제물론편(齊物論篇)〉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가 되어 있었다. 이는 대체 장주인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장주와 나비는 분명 별개의 것이건만 그 구별이 애매함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사물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도대체 그 사이에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피상적인 구별, 차이는 있어도 절대적인 변화는 없다. 장주가 곧 나비이고, 나비가 곧 장주라는 경지, 이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세계이다. 물아의 구별이 없는 만물일체의 절대경지에서 보면 장주도 나비도, 꿈도 현실도 구별이 없다. 다만 보이는 것은 만물의 변화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이처럼 피아(彼我)의 구별을 잊는 것, 또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비유해 호접지몽이라 한다. 오늘날에는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해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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