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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 최영미

by kimeunjoo 2012. 11. 21.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 최영미  

 

 

너의 인생에도

한번쯤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

 

바람에 갈대숲이 누울 때처럼

먹구름에 달무리질 때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을 남겼을까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괴어 있을까

 

너의 젊은 이마에도

언젠가

노을이 꽃이처럼 스러지겠지

 

그러면 그때 그대와 나

골목골목 굽이굽이

상처를 섞고 흔적을 비벼

너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으로

헤엄치고프다, 사랑하고프다

 

 

 

아도니스(Adoni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청년 사냥꾼이다.

키니라스와 미르라의 아들이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탐무즈와 동일시된다.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운 왕녀 스미르나에게 저주를 내려 친아버지 테이아스에게 연정을 느끼게 했다. 스미르나는 변장을 한 채 아버지와 동침하고 아도니스를 수태한다.

후에 새로운 첩이라 여겼던 여인이 친딸임을 발견한 테이아스는 격분해서 스미르나를 죽이려 한다.

아프로디테는 스미르나를 나무로 변하게 해 그녀의 목숨을 구했다.

이 나무에 멧돼지가 엄니를 갈다가, 일설에 따르면 분노한 테이아스가 나무에 화살을 쏘자 그 갈라진 사이에서 아기 아도니스가 태어났다. 아프로디테는 아기를 잠시 지하세계의 여신 페르세포네에게 맡겼다.

아도니스의 아름다움에 반한 페르세포네는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를 두고 다툰다.

 

미청년으로 자란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의 연인이 되었다.

사냥을 즐기는 그에게 아프로디테는 위험한 야수 사냥은 피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도니스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멧돼지 사냥을 나갔다가 멧돼지 엄니에 받혀 죽는다.

 

아프로디테가 눈물을 흘린 곳에 꽃이 피어났다. 복수초Adonis

 

 

 

 

육체와 영혼에 대한 어떤 문답/ 최영미

 

A : 너, 왜 그 남자랑 못 헤어지니?

B : 난 그 남자의 영혼을 봤거든. 그래서 미워할 수가 없어.

     그가 무슨 짓을 하든... 말하자면 연민의 정이지.

A : 그런데, 도대체 영혼이 무엇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B : 육체를 뺀 나머지지.

 

- 돼지들에게 / 실천문학 - 

 

 

 

목욕 / 최영미

 

한때 너를 위해

또 너를 위해

너희들을 위해

씻고 닦고 문지르던 몸

이제 거울처럼 단단하게 늙어가는 구나

투명하게 두꺼워져

세탁하지 않아도 제 힘으로 빛나는 추억에 밀려

떨어져 앉은 쭈그렁 가슴아ㅡ

살 떨리게 화장하던 열망은 어디가고

까칠한 껍질만 벗겨지는 구나

헤프게 기억을 빗질하는 저녁

삶아먹어도 좋을 질긴 시간이여

 

 

 

먼저, 그것이 / 최영미

 

고개 숙이며 온다

아스팔트를 데웠다 식히는 힘으로

장롱문이 소리없이 닫히는 힘으로

초조한 이마 위 송송한 구슬땀 몇개로

사랑은 온다

 

첫번째 사과의 서러운 이빨자욱으로

초생달 둘레를 둥들게 베어내며

뚱뚱한 초 하나로 밤이 완성될 때

 

보채는 아이의 투정처럼

식은 차 한잔의 위로처럼

피곤을 넘어 반성을 넘어

어쩌면 사랑은 온다

 

망설이는 마음 한복판으로

어제의 사랑을 지우며

더듬거리며 오늘, 사랑이 내게로 온다

주저하는 나보다 먼저, 그것이 내게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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