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응”」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문정희 시인
출생 1947년 5월 25일, 전남 보성군
데뷔 1969년 월간문지학 시'불면','하늘' 발표
학력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현대문학
경력 2007년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수상 2008년 제28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올해의최우수예술가상 문학부문상

[감상]
“응”은 가장 아름다운 모국어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응?”하고 물으면 “응!”하고 대답하지요. 시인은 그것을 “눈부신 언어의 체위”라고 부르는군요. 하나의 손바닥에 또하나의 손바닥을 가져다대는 말. 손바닥끼리 마주쳐 소리가 나듯 두 마음이 오롯하게 합쳐지는 말. 굳이 배우지 않아도 모태로부터 익혀 나온 말. 입술을 달싹이지 않고도 심장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린 말. 가장 간결하면서도 한없는 긍정과 사랑을 꽃 피우는 말. 이 대답 하나로 우리는 나란히 산책을 나갈 수도 있고,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해와 달이 될 수도 있지요. “응”이라는 문자 속에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이응처럼. <나희덕 시인>
[감상]
말할 것도 없이 ‘응’ 은 상대방의 요구와 물음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의 기표이다.
교묘하게도 이단어는 모음과 유성자음으로만 이루어져 경쾌하고 발랄한 생동감을 내뿜는다.
이 어휘는 특히 아직 세상의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은 어린애들이나 풋풋한 수줍음을 상실하지 않은 젊은 여성이 콧소리로 발음할 때 가장 아름답고 신선하게 들린다.
위 시의 첫연은 다소 도발적이어서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젊은 남녀의 육체적인 행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시는 그저 “응” 이라고 하는 단어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울림의 독특한 효과를 천천히 저작(詛嚼)하면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번쯤 더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다면 제대로 이해한 것이 된다.
‘응’ 이란 단어의 시각적 이미지는
자음 ‘이응’ 이 모음 ‘으’ 의 위아래에 나란히 떠 있는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시인은 이것을 “눈부신 언어의 체위” 로 읽는다.
그것은 제 1연에서 주고받은 남녀의 대화와 긴밀한 대응관계를 이루면서,
해와 달이 모두 제 자리에 ‘떠 있다’ 고 표현함으로써 남녀 관계,
더 나아가 자음과 모음의 관계가 일방적이거나 종속적이지 않음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대답은 부정이나 거절의 의사표현이 아니라
긍정과 수용의 표현이므로 어떤 마찰과 분쟁도 야기하지 않는다.
이제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한 유아도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어휘의 생김새와 의미를 가지고 이토록 재미있고 깊은 의미를 담아내는
작품을 쓸 수 있는 재능은 아무에게나 허여된 것은 아니다 <장영우 시인, 동국대 문창과 교수>
[감상]
한 음절의 단어가 지닌 도상적 이미지를 매개로 인간적, 우주적 세계를 떠올리는 이 독특한 시상을 일컬어 <문자의 상상과 우주적 사랑의 발견>이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덧붙여 이 시의 질의-응답 구조가 인간이나 우주적 존재들 사이의 상호 소통 원리를 표상한다는 점은 이 시의 풍요로운 감상을 위해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즉 <하고 싶어?>라는 질문과 <"응">이라는 대답의 사이의 매개가 사랑이든 대화든 질문하는 자와 대답하는 자의 사이에는 긍정적 소통의 관계가 형성되는데, 이는 '"응"'이 세상과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의 진정한 의미는 소통에 있음을 강조한 시라는 점을 말해 준다. 또한 소통의 매개가 또한 <시>일 때에는 이 질문과 대답은 시적 자의식의 발로이므로 '"응"'은 시인과 시, 혹은 시와 독자 사이의 소통을 강조한 시로 읽힌다. <이형권 시인>
[감상]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응”
생각할수록 귀여운 대답이다
자로 재지 않는 순수한 아이의 대답 같기도 하여
꼭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런 응답이다
( 0 ) - 동그란 여자가
( - ) - 지평선 위에서
( 0 ) - 동그란 남자를 만나 서로
(응) - 할 때 둘의 육체가 하나로 완성되듯이
“응” 의 단어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사랑을 나누는 두물머리이며
둥근해와 둥근달이 만나 합궁하는 칠월칠석이다
우리 한번 할까?
“응”
유순한 대답은 잉태의 씨앗이며
부모와 어린 자녀의 첫 의사소통으로써
열린 대화의 문이며
연합된 가정의 아름다운 언어인 것이다
이 시를 읽노라면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당신이 물었을 때
"응"
대답하고 싶은 예쁜 시이다 <양현주>
● 출처 :『나는 문이다』, 뿔 2007 ● 詩. 낭송 : 문정희-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1969년『월간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새떼』『남자를 위하여』『오라, 거짓 사랑아』『양귀비꽃 머리에 꽂고』『아우내의 새』『나는 문이다』등이 있으며,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