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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의 전설/♣ 꽃의 전설

양귀비

by kimeunjoo 2009. 6. 12.

 

 

 

 

양귀비꽃


나 어릴 적 눈에 보일 듯 말듯 한 너의 까만 씨앗을 사서

내 자그만 꽃밭에다 정성 들여 심고 물주며 키웠더니,

이윽고 너 꽃이 활짝 피었는데, 글쎄 너 어찌나 예뻤던지.


애 띤 어느 소녀보다도 네가 젤 향기롭게 예뻤었지!

학교에서 들었던 중국의 양귀비가 저래 예뻤을까?

서양사 수업에서 들은 비너스가 저토록 미인이던가?


이리 저리 보며, 정말 뒷집 예쁜 자야보다 더 좋아 했지!

그렇게 하루 이틀 애지중지 무척이나 너를 좋아 했는데

 삼일 째가 되더니 글쎄 꽃잎이 하나 둘 넉 장 다 떨어지더니


그토록 나 아끼던 너 청순과 가련한 미의 양귀비꽃이

꽃피어 사흘 째 되더니 너 수명 다하여 단명하다니!

지금은 재배금지령에 너를 꿈에서나 만날 수 있으려나!

 

 

 

 

 

 

 

 

 

 

비야 비야 양귀비야

비야 비야 양귀비야

당명황의 양귀비야


금색같이 염전인데

네 무삼 화초인데

삼일 만에 꽃이 지니

단수한 게 원이로다.

 

양귀비 꽃의 단명함과 미인 양귀비의 비운을 함께 안타까워한 민요이다.


 

 

 

 

 

★양귀비의 전설

 

★양귀비 (꽃말; 적색-위안, 위로 / 흰색- 망각 / 노랑- 사치, 환상)

 

대부분 꽃의 얽힌 전설은 비극적인게 많은 데 이 꽃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있다.

 

아득한 옛날 인도에 한 행복한 왕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정원을 거닐다 이상한 새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왕자는 시종들에게 그 새를 잡아오게 했다.잡혀 온 새의 발목에는 금실이 매어져 있었고,
몸에서는 이상한 향내가 났다.왕자는 이 새를 금으로 된 새장에 넣었다.
그리고 침실 곁에 매달아 놓고 매일 바라보는 것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새는 통 노래를 하지 않았다.
그런던 어느 날 왕자가 꿈을 꾸었는데 먼 나라 공주가
시종들과 함께 자기의 꽃밭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왕자가 물었다.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그랬더니 공주가 말하기를
자기는 남쪽 아라후라 라는 나라의 공주인데
자기의 새가 발목에 금실을 끊고 달아나서 찾는 중이라고 했다.
왕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새가 바로 그녀의 것임을 알자 그만 가슴이 뜨끔했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그 새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공주는 그새의 이름은 자기 이름과 같아서 말할 수 가 없다고 했다.

 

자기네 나라에서는 공주의 이름을 알아내는 사람이
국왕이 되는 동시에 공주의 남편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이름은 새만이 알고 있으며,
새가 부르는 노래가 곧 공주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새는 한 가지 꽃만을 좋아하고,
그 꽃이 자기의 이름과 같은데 그 꽃이 여기에 없으니
그 새도 여기에 없는 것이 틀림 없다고 하며 그 곳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꿈에서 깬 왕자는 비로소 새의 비밀을 알게 되어서 여간 기쁘지 않았다.
이제 공주의 뜰에 핀 그 꽃만 따오면 되었다.그
래서 힘센 용사를 뽑아 공주의 나라로 보냈다.
그러나 한 사람도 돌아 오지 않았다.
결국 왕자 자신이 그 꽃을 찾아 아라후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공주가 사는 곳은 하늘까지 닿는 성이 세 겹으로 둘러 있고,
파수병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슬기로운 왕자는 무사히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꽃밭을 지키는 용사들은 모두 자기의 부하들이었다.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이나라에는 이상한 약이 있어
한번 먹으면 그 전의 일을 모두 잊어 버리게 되어 있었다.
왕자는 밤을 틈타서 드디어 꽃을 따오는 데 성공했다.

 

꽃을 가지고 돌아온 왕자는 새장 앞에 그 꽃을 놓았다.
그 때서야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새가 비로소 아름다운 목소리로
“ 파파베라 파파베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해서 이 새의 이름도 ,꽃의 이름도 그리고 공주의 이름도 모두
“파파베라”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 왕자는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여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양귀꽃은 인도의 국화이다.

 

그러나 원산지는인도가 아니라 유럽 동부이다.

유럽에서는 일찍이 석기 시대에 재배되었다는 사실이
스위스 지방의 호서 민족(湖棲民族 )의 유적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는 열매에서 나온 유액(乳液 )을 어린이에게 먹여서
잠을 재우는데 사용하였으며
아편이 제족된 것은 기원전 300년경 소아시아 사람들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이 꽃이 중국에 전해진 것은 7세기경 당나라 때 아라비아 사람들에 의해서인데,
그것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최초로 문헌에 나타난 것은 15세기,
그러니까 적어도 그보다 전인 신라 말이나 고려 때가 아닌가 한다.

 

 

잘 쓰면 약이고 지나치면 독이 되는 것이 어디 양귀비뿐인가.
다 사람 마음먹기에 따라 다를 뿐이다.


 

 

 

이 꽃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는 허가 없이는 심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밭이나 옥수수밭 가운데에 몰래 심었다.
아니면 야산 후미진 곳에 몰래 씨를 뿌려 두었다가 아편을 거둬 들이기도 했다.
아편을 짜서 팔자는 것이 아니라
의약품이 귀하던 시절에 없어서는 아니될 구급약이라서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 97년 10월 북한을 탈출한 이애란씨(가명. 양강도 출신)는
20일 탈북자동지회 회보 '망향' 12월호에 기고한 수기에서
"북한주민들은 양귀비를 대장염, 설사 치료제등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양귀비 잎을 깨끗이 씻어 쌈을 싸 먹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또 "북한주민들은 양귀비씨를 모아 깨 대용으로 사용하고,
떡고물을 만드는 데도 이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북한에 있을때 양귀비씨를 많이 먹었다"면서
"그 맛이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는지 몰랐다.
깨 대용으로 제격이었다"고 술회했다.

살길이 막막한 북한주민들은 아편을 먹고 슬그머니 죽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특히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외면당하고
배고픔을 참을 수 없을 때 고통없이 죽기 위해
알사탕 크기의 생아편을 필수품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이씨는 증언했다.

 

 

 

목적 여부를 막론하고 삶의 부정적인 요소로 자리잡은 양귀비는
국내법상 일반인들은 신고후 관상용으로 밖에 기를 수 없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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