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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용서의 의자 - 정호승

by kimeunjoo 2012. 8. 7.

 

 

 

용서의 의자 / 정호승

 

 

나의 지구에는

용서의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의자에 앉기만 하면 누구나

용서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는

절대고독의 의자 하나

쌩떽쥐뻬리의 어린 왕자가

해질녘

어느 작은 별에 앉아 있던 의자도 아니고

법정 스님이 오대산 오두막에 홀로 살면서

손수 만드신 못생긴 나무의자도 아니고

못이 툭 튀어나와 살짝 엉덩이를 들고 앉아야 하는

앉을 때마다 삐걱삐걱 눈물의 소리가 나는

작은 의자 하나

누군가가 만들어놓고

다른 별로 떠났다.

 

 

 

징검다리 / 정호승

 

물은 흐르는 대로 흐르고

얼음은 녹는 대로 녹는데

나는 사는 대로 살지 못하고

징검다리가 되어 엎드려 있다

오늘도 물은 차고 물살은 빠르다

그대 부디 물속에 빠지지 말고

나를 딛고 일어나 힘차게 건너가라

우리가 푸른 냇가의 징검다리를

이제 몇 번이나 더 건너걸 수 있겠느냐

때로는 징검다리도 물이 되어 흐른다

징검다리도 멀리 물이 되어 흘러가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밥값』창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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