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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초여름 숲처럼 - 문정희

by kimeunjoo 2012. 5. 15.

       

       

       

            초여름 숲처럼 / 문정희 

            나무와 나무 사이엔
            푸른 하늘이 흐르고 있듯이
            그대와 나 사이엔
            무엇이 흐르고 있을까.

            신전의 두 기둥처럼 마주보고 서서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면
            쓸쓸히 회랑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
            오늘 저 초여름 숲처럼
            그대를 향해 나는
            푸른 숨결을 내뿜을 수밖에 없다.

            너무 가까이 다가서서
            서로를 쑤실 가시도 없이
            너무 멀어 그 사이로
            차가운 바람 길을 만드는 일도 없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흐르는 푸른 하늘처럼

            그대와 나 사이
            저 초여름 숲처럼
            푸른 강 하나 흐르게 하고
            기대려 하지 말고, 추워하지 말고,
            서로를 그윽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

             

             


            순간 / 문정희 


            찰랑이는 햇살처럼
            사랑은
            늘 곁에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못했다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처럼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버리고
            그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했다


             

             

            풍선 노래 / 문정희

            나를 가지고 놀아줘
            허공에 붕붕 띄워줘
            좀 더 좀 더 입으로 불어줘
            뜨거운 바람 넣어줘
            부드럽고 탱탱한 살결
            주물러 터뜨려줘
            아니, 살살 만져줘
            그만 터져버릴 것만 같아
            내 전신은 미끄러운 빙판
            삶 전체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날카로운 시간의 활촉이 나를 노리고 있어
            열쇠는 필요 없어
            바람의 순간을 즐겨줘
            아니, 신나게 죽여줘

             

             

            보석의 노래 / 문정희

             

            만지지 말아요
            이건 나의 슬픔이에요
            오랫동안 숨죽여 울며
            황금시간을 으깨 만든
            이것 오직 나의 것이에요

            시리도록 눈부신 광채
            아무도 모르는 짐짓 별과도 같은
            이 영롱한 슬픔 곁으로
            그 누구도 다가서지 말아요

            나는 이미 깊은 슬픔에 길들어
            이제 그 없이는
            그래요
            나는 보석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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