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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재 한줌 / 조오현

by kimeunjoo 2011. 5. 4.

 

 

 

 

재 한줌 / 조오현

 

 

어제, 그저께 영축산 다비장에서

오랜 도반을 한줌 재로 흩뿌리고

누군가 훌쩍거리는 그 울음도 날려보냈다.

 

거기, 길가에 버려진 듯 누운 부도

돌에도 숨결이 있어 검버섯이 돋아났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그대로 내려왔다.

 

언젠가 내 가고 나면 무엇이 남을 건가

어느 숲 눈먼 뻐꾸기 슬픔이라도 자아낼까

곰곰히 뒤돌아보니 내가 뿌린 한 줌 재뿐이네.

 

- 시집 <아득한 성자> ( 시학 2007 )

 

 

앵화 / 조오현

 

어린 날 내 이름은

개똥밭의 개살구나무

 

벌 나비 질탕한 봄도

꽃인 줄을 모르다가

 

담 넘어 순이 가던 날

피 붉은 줄 알았네

 

 

 

시인 조오현(1932 ~ )은 승려이다. 어릴 적에 절로 들어가 팔순을 바라보는 이 날까지 절을 지키고 있다. 만해 한용운과 같은 승려 시인으로 똑같이 백담사에서 나온 시인이다. ‘설악, 무산’이라는 승명을 쓰고, 스스로는 자신을 낮춰 ‘낙승(落僧)’이라고 부른다.

약력을 볼 때마다 스쳐 지나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절간 소머슴’으로 입산한 것을 굳이 밝히고 있는 점이다. ‘절간 소머슴’이 주는 이미지는 소박하고 친밀하다.

 

위의 시에서 '곰곰히 뒤돌아보니 내가 뿌린 한 줌 재뿐이네' 라는 표현은 삶의 허무함을 표현한 구절인데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세속적인 느낌이다.

그래서 누구든 쉽게 공감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반전의 부분은 '돌에도 숨결이 있어 검버섯이 돋아났다'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죽음이 삶의 마지막이라기 보다는 불교의 윤회적인 사상에 입각해서 다른 생명으로도 태어날 수 있다는 달관의 경지가 느껴진다. 동시에 인간적인 고뇌가 시의 밑바닥에 깔려있어서 푸근함을 안겨준다.

 

조오현 시인의 시 세계를 한 마디로 압축하여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모든 시편에서 ‘일체지향’을 보인다. 즉 사람과 자연, 자연과 사람의 경계를 일거에 허물어 버리는 경지를 내비친다. 이속의 삶, 구도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속인과는 동떨어진 드높은 곳에 결코 홀로 올라 앉아 있지 않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친근감을 준다. 그렇다고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중후한 사유의 세계가 그만의 독보적인 가락과 결합하여 이룬 성취는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법과 축생이 사는 법은 판이하다. 그런데도 요즘 세상을 보면 사람이 사람으로 살기보다는 축생으로 살기를 작정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겉모습은 분명히 사람의 모습이지만 사는 꼴은 축생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다. 그들은 축생처럼 사는 것이 사람이 사는 방법인 줄 안다. 사람이 축생처럼 살면서도 그것을 모르는 것은 어리석음이 안개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 안개를 걷어내지 않는 한 사람은 영원히 ‘사람이란 이름 의 축생’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의 시편은 우리의 무딘 의식에 때로 깨달음과 같은 밝음 으로 다가온다. 몇 번이고 되뇌어 생각하게 하는 진폭이 큰 울림을 내장하고 있다.

현대의 종교가 할 일은 무엇보다도 한 줌 재뿐인 삶의 가벼움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수도하며 구도하는 스님의 시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 김사인 시인

 

 

 

 

 

 

 

 

인천만 낙조 / 조오현

 

 

그날 저녁은 유별나게 물이 붉다붉다 싶더니만

밀물 때나 썰물 때나 파도 위에 떠 살던

그 늙은 어부가 그만 다음날은 보이지 않네

 

 

죽음에 대해 조오현 스님처럼 이런 말없으나 수만(數萬) 말(語)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가. 낙조가 지는 ‘인천 만’이라는 현실을 노래하면서도 현실을 넘어서는 현실주의자의 꿈. 갑자기 꿈과 현실, 상상과 현실이 손을 잡는다. 은유 때문이다. 은 유의 이중성 때문이다.

밀물도 그냥 물결치며 모래를 껴안지 않는다. 썰물도 그냥 펄럭거리며 모래를 떠나지 않는다. 그것들 사이에서 는 수만 굽이의 한 사람의 생이 말없이 물결친다. 밀물도 썰물도 그 생을 안고 출렁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란 인천만의 ‘붉디붉은’ 낙조를 바라보면서도 그 붉음의 허리 속에서 지는 가슴 부여잡고 있는 사람 하나, 멀리서 보는 이가 아닐까? 지하철에서도 수평선 보는 이가 아닐까. 그런 시를 꿈꾸자.

 

<강은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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