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을 위하여 / 홍윤숙
어떤 시인은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하고
어떤 화가는 평면을 보면 모두 일으켜세워
그 속을 걸어다니고 싶다고 한다
나는 쓸데없이 널려 있는 낡은 널빤지를 보면
모두 일으켜세워 이리저리 얽어서 집을 짓고 싶어진다
서까래를 얹고 지붕도 씌우고 문도 짜 달고
그렇게 집을 지어 무엇에 쓸 것인진 나도 모른다
다만 이 세상이 온통 비어서 너무 쓸쓸하여
어느 한구석에라도 집 한 채 지어놓고
외로운 사람들 마음 텅 빈 사람들
그 집에 와서 다리 펴고 쉬어가면 좋겠다
때문에 날마다
의미 없이 버려진 언어들을 주워 일으켜
이리저리 아귀를 맞추어 집 짓는 일에 골몰한다
나 같은 사람 마음 텅 비어 쓸쓸한 사람을 위하여
이 세상에 작은 집 한 채 지어놓고 가고 싶어
반음(半音)
카랑카랑 마른 내 뼛속에는
고장난 바이올린이 숨어 있나보다
작은 바람에도 큰 소리 울리며
반음쯤 틀리는 소리를 낸다
나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도 반음쯤 틀리는 노래를 부른다
내 귀는 익숙해져
이제는 반음쯤 틀리는
이 세상 만사가 다
당연한 정음(正音)이라 받아들인다
세상이 모두 반음쯤 틀리게
올라가고 내려간들 무슨 상관인가
우리가 모두 한두 음씩 틀리며
뛰고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여기서부터는 아무도 동행할 수 없다
보던 책 덮어놓고 안경도 전화도
신용카드도 종이 한 장 들고 갈 수 없는
수십 억 광년의 멀고먼 여정
무거운 몸으로는 갈 수 없어
마음 하나 가볍게 몸은 두고 떠나야 한다
천체의 별, 별 중의 가장 작은 별을 향해
나르며 돌아보며 아득히 두고 온
옛집의 감나무 가지 끝에
무시로 맴도는 바람이 되고
눈마다 움트는 이른 봄 새순이 되어
그리운 것들의 가슴 적시고
그 창에 비치는 별이 되기를
길을 걷다가../ 홍윤숙
길을 걷다가
잠깐씩 발을 멈추고 뒤돌아본다.
잎 떨군 나무가지들이
기하학적 선으로 아름다운 문양을 그리고 있는
그 모양이 처음 본 세상처럼 신선하다.
묘연한 길 끝 어딘가에
젊은 날 초상화 한 폭 떠오를 것도 같은
나는 다시 걷는다
가다가 다시 돌아본다. 돌아보는 일이 조금씩
즐거워진다.
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무수한 시간의 조각들이 끝도 없이 나르는 길을
오선지에 사분음표 도레미파 파미레도
오르내리는 악보처럼 찍으며 걸어간다
언제까지 이렇게 걸을 수 있을까?
이 길에 머지 않아 겨울 깊어지고 얼음 깔리면
다시 구석진 골방 흰 벽에 갇혀서
공허한 허기를 삭은 등뼈로 버티겠지
오늘 아직은 남은 길에 햇살 따스하니
하루를 천 년처럼 누리며 간다.
빈 항아리
비어 있는 항아리를 보면
무엇이든 그 속에 담아두고 싶어진다
꽃이 아니라도 두루마리 종이든 막대기든
긴 항아리는 긴 모습의
둥근 항아리는 둥근 모습의
모없이 부드럽고 향기로운
생각 하나씩을 담아두고 싶어진다
바람 불고 가랑잎 지는 가을이 오니
빈 항아리는 비어 있는 속이 더욱 출렁거려
담아둘 꽃 한송이 그리다가
스스로 한묶음의 꽃이 된다
누군가 저처럼 비어서 출렁거리는
이 세상 어둡고 깊은 가슴을 찾아
그 가슴의 심장이 되고 싶어진다
빈 항아리는 비어서 충만한 샘이 된다.
무엇이든 그 속에 담아두고 싶어진다
꽃이 아니라도 두루마리 종이든 막대기든
긴 항아리는 긴 모습의
둥근 항아리는 둥근 모습의
모없이 부드럽고 향기로운
생각 하나씩을 담아두고 싶어진다
바람 불고 가랑잎 지는 가을이 오니
빈 항아리는 비어 있는 속이 더욱 출렁거려
담아둘 꽃 한송이 그리다가
스스로 한묶음의 꽃이 된다
누군가 저처럼 비어서 출렁거리는
이 세상 어둡고 깊은 가슴을 찾아
그 가슴의 심장이 되고 싶어진다
빈 항아리는 비어서 충만한 샘이 된다.
“의미 없이 버려진 언어들을 주워 일으켜/
이리저리 아귀를 맞추어 집 짓는 일에 골몰한다/
나 같은 사람 마음 텅 비어 쓸쓸한 사람을 위하여/
이 세상에 작은 집 한 채 지어놓고 가고 싶어”
(‘쓸쓸함을 위하여’ 중)
‘사는 법’과 ‘내 안의 광야’ 등의 시집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그려온 원로시인 홍윤숙(85)씨가 16번째 시집 ‘쓸쓸함을 위하여’를 펴냈다.
신작 시집으로는 2004년 ‘지상의 그 집’ 이후 6년 만이다. 2005년 출간된 시전집 이후 발표한 작품들을 묶었다.
‘마지막으로 시집을 엮는다’는 소회로 선보이는 책이다. 황혼녘을 담담하게 응시하는 쓸쓸함이 곳곳에 그득 차 있다. 하지만, 해질 무렵 남아 있는 길을 비추는 햇살에서 느낄 수 있는 따스함도 안겨준다.
“언제까지 이렇게 걸을 수 있을까/
이 길에 머지않아 겨울 깊어지고 얼음 깔리면/
다시 구석진 골방 흰 벽에 갇혀서/
공허한 허기를 삭을 등뼈로 버티겠지/
오늘 아직은 남은 길에서 햇살 따스하니/
하루를 천 년처럼 누리며 간다”
(‘길을 걷다가’ 중)
2006년 늦은 여름부터 2008년까지 세 번의 큰 수술과 긴 투병생활을 한 홍씨는 지난해 말 신작 시 ‘길을 걷다가’ 등을 발표하며 2년 동안의 침묵을 깨트렸다. 홍씨는 “수술과 병상생활로 인해 심신은 황폐해지고 공황상태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며 “그 악몽 같은 나날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나를 지탱해준 것은 이 마지막 시집에 대한 희망이었다”고 밝혔다.
시집 끄트머리에 실린 에세이 ‘언어, 사랑의 관계지음’을 통해서 “시는 나의 영원한 스승이고 성서이다. 하여 나는 날마다 그 스승을 따라 성서를 안고 희망으로 떠났다가 고통으로 돌아온다”며 “고통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산실이기에 피하지 않고 몸을 던진다”고 전한다.
홍씨는 “언젠가 방랑(放浪)이란 낱말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며 “그 말이 얼마나 신선하고 유혹적이며 심신을 뜨겁게 달구는가를, 청춘의 또 다른 말 방랑; 다시는 없을 그 푸르던 날들을 아득히 돌아본다”고 회상했다. 148쪽, 7500원, 문학동네
1925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홍씨는 서울대학교 사범대 교육학과 재학 중 6·25동란을 겪고 학업을 중단했다. 1947년 문예신보에 시 ‘가을’, 1948년 ‘신천지’에 ‘낙엽의 노래’, 같은 해 ‘예술평론’에 ‘까마귀’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시인협회상과 대한민국문화예술상, 공초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등을 받았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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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한국일보
1947년 <문예신보>로 등단한 홍윤숙 시인이 열여섯 번 째 시집 <쓸쓸함을 위하여>를 상재 하였다. 홍 시인은 이번 시집을 생애 마지막 시집으로 엮는다고 책머리에 밝히고 있다. 2006년 늦여름부터 들이 닥친 육신의 질병으로 큰 수술과 긴 병상 생활로 인해 황폐해지는 심신을 견디며 시인을 지탱해 준 것이 바로 시이며,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시집을 엮어 내려는 의지와 희망이었다고 전언한다.
시력 63여년을 아우르는 홍 시인의 시가 지금도 시적 긴장과 큰 울림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시단에 현존하는 전설이요 경이로움이다. “시는 참으로 내게는 준엄한 고문이요 심판이다(비정의 작가노트 중 일부,1977)”라고 고백하기도 하였던 홍 시인의 시에 대한 자세는 치열하고도 준엄하다.
오늘날 한국 시단의 문제점 중에 하나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시인의 조로(早老) 현상이다. 젊은 날 한때 반짝 빛나는 작품으로 여기저기서 북치고 장구쳐주면 너무도 일찍 대가의식에 빠져 눈에 힘주고 콧김 날리며 어깨 으쓱거리고 다니다 그만 덜 익은 감 떨어지듯 스르르 스러져가는 아까운 시인들이 있는 실정이다. 마치 스크린에 나오는 배우들이 한 때의 인기에 영합해 지나치게 자신의 이미지를 남용한 결과 실제 나이보다 너무 일찍 늙고 낡아 버려 스크린 뒤로 사라지 듯, 시인들 중에서도 매스컴의 북치고 장구치는 놀음에 놀아나다 새로운 스타가 나오면 쓰레기 버려지듯 버려지고 잊혀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낙오되기도 한다.
때론 시를 쓰는 작업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아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안정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되면, 안일과 타성에 빠져 젊은 날 한때 쓰던 자신의 시를 베끼며 겨우겨우 시인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아무리 시에 대한 재주가 남다르더라도 요절하지 않는 한 오래 나이 먹고 늙어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 시에 혼신을 다하던 초심의 열정을 수십 년 유지하려면 대단한 지구력과 자신에 대한 준엄한 채찍이 필요한 것이 예술의 세계인 것이다.
홍 시인은 자신의 시론에서 “어떤 시도 침묵을 능가할 시는 없다. 어떠한 삶도 또한 침묵을 능가 할 삶은 없다. 침묵 앞에서 내 삶은 유희이고 내 시도 유희이다. 유희란 영원히 불완전한 것이다. 따라서 내 시도 불완전하다 (침묵 앞의 유희 중 일부, 1978)”라고 전언 하는 홍 시인의 말은 시를 향한 치열하고도 엄격한 정신의 일단을 만날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쓸데없이 널려 있는 낡은 널빤지를 보면/모두 일으켜세워 이리저리 얽어서 집을 짓고 싶어진다’ 라고 말하는 홍시인은 전쟁을 겪은 세대다운 사유를 하고 있다. 감수성 예민한 젊은 시절에 겪은 조국의 6.25 전쟁은 홍 시인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에 깊은 충격과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전쟁이 몰고 온 공포와 전율, 기아와 절망, 떠도는 유민과 가난, 그리고 폐허의 땅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던 시간을 건너오면서 삶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에 하나인 안전에 대한 욕구가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에 깊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74년 발표된 시집 <타관의 햇살>에서 홍 시인은 지상에서의 삶을 잠시 나그네 되어 머물다 가는 객지로 인식하고 있다. 홍 시인의 고향이 평안북도인 점을 생각하면 전쟁과 이데올로기로 분단된 조국의 산하에서 다시는 갈 수없는 육신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남 달랐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홍 시인의 타향의식은 그의 시적 자아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삶 자체가 피안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일시적 방문이라는 의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한 의식은 위의 시속에서도 찿아 볼 수 있다.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고향을 가슴으로 앓으며 견디는 타관생활의 쓸쓸함과 현실에서 든든한 삶의 뿌리를 내리고 싶어 하는 무의식은 홍 시인에게 집을 짓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서까래를 얹고 지붕도 씌우고 문도 짜 달고/그렇게 집을 지어 무엇에 쓸 것인진 나도 모른다’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조그만 나무 조각을 보고도 본능적으로 집을 짓고 싶어 하는 홍시인은 집이 완성 된 뒤에 그 집을 자신의 안위나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이 세상이 온통 비어서 너무 쓸쓸하여/어느 한구석에라도 집 한 채 지어놓고/외로운 사람들 마음 텅 빈 사람들/ 그 집에 와서 다리 펴고 쉬어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홍 시인이 그토록 짓고 싶어 하는 집은 외롭고 마음이 텅 빈 사람들의 안식처로 제공하고자하는 아가페적 사랑의 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홍 시인의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그가 평생 헌신해온 그의 시를 통해 언어의 집 한 채 지어놓고, 어떤 재앙에도 이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불멸의 집 한 채이기를 꿈꾼다. ‘때문에 날마다/의미 없이 버려진 언어들을 주워 일으켜/이리저리 아귀를 맞추어 집 짓는 일에 골몰한다/나 같은 사람 마음 텅 비어 쓸쓸한 사람을 위하여/이 세상에 작은 집 한 채 지어놓고 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때 묻고 낡아버린 일상의 언어를 주어 모아 새롭게 깁고 엮어서 쓸쓸한 나그네 영혼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존재의 집’한 채 지어 놓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 시낭송가를 뽑는 경연장을 참관 한 적이 있었다. 한국시인협회가 후원하고 모 단체가 개최하는 권위 있는 이 행사는 초등부, 중등부, 성인부로 나뉘어져 경연을 펼쳤다. 놀라운 사실은 성인부에 참가한 시낭송가 지망생들이 들고 나온 시 작품 중에서 홍 시인의 시가 단연 많았다는 것이다.
아름답고 특색 있는 목소리로 암송되는 홍 시인의 시 속에선 때론 바람이 불기도 하고, 때론 밀물이 도도히 밀려오기도 하고, 때론 휘파람 소리 들리고, 때론 아늑하고, 때론 꽃들이 피어났다. 홍 시인의 시는 경연장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황홀과 전율, 그리고 깊은 위로와 바다를 향해 울리는 맑은 종소리가 되어 영혼을 흔들고 있었다. 경연장 밖에는 우기에 접어든 장마비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고 있었으나 경연장 안에는 홍 시인이 지어 놓은 언어의 집-그 따스한 밀감빛 등불이 켜진 지상의 방 한 칸 안에서 경연자도 참관자도 모두 ‘다리 펴고’ 아늑하였다.
이미 홍 시인은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시의 집 한 채 지어놓았다.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밀감빛 등불 따스하게 켜진 홍 시인의 시의 방 한 칸에 들어 앉아 자신들의 영혼을 쉬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따스한 불 켜진 홍 시인의 지상의 방 한 칸에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다리 펴고 쉬고 있는 것이다.
‘빌수록 가득 차는 지상의 나날/이제 돌아갈 집도 멀지 않으니/ 슬퍼하지 마라 곧 밤이 온다(슬퍼하지 마라 곧 밤이 온다 중 일부)’ 를 읊조려 본다. 마음이 따스해진다. 눈물이 차오른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싶어진다. 문단의 큰 어른이신 홍 시인의 쾌유를 빈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 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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