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이야기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단다.
그때 우리나라는 힘이 약해서 몽골족에게 일년에 한번씩 예쁜 처녀를 바쳐야만 했단다.
찔레라는 이름을 가진 예쁘고 마음이 착한 소녀가 있었는데 그는 다른 처녀들과 함께
몽고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살게 되었단다.
찔레는 몽골에서 그나마 착한 사람을 만나 호화로운 생활을 했단다.
그러나 찔레는 그리운 고향과 부모와 동생들의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10여년의 세월을 눈물로 보내던 어느 날
찔레를 가엾게 여긴 주인이 사람을 고려로 보내 찔레의 가족을 찾아오라고 했으나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어. 찔레의 마음은 더 아팠고, 더욱 더 가족들과 고향이
그리워 병에 걸리고 말았단다
찔레의 병은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병이었어. 보다 못한 주인이 찔레에게 고향의
가족을 찾아가도록 허락을 했단다. 단 한 달만 있다가 돌아오라는 조건을 붙였지.
고향집을 찾아갔지만 이미 고향집은 다 불타 없어진 상태였고 찔레는 동생과 부모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여기저기 산 속을 헤매었지만 가족을 만날 수 없었단다.
한 달의 기한이 다가도록 찾지 못하고 몽골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어.
슬픔에 잠긴 찔레는 몽골로 다시 가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고향집 근처에서 목숨을 끊고 말았고, 이듬해 찔레가 부모와 동생을 찾아 헤매던
곳곳마다 찔레꽃이 피어났단다.
찔레꽃이 들판 여기저기 안 핀 곳이 없는 이유는
그렇게 찔레가 동생과 부모를 찾아다녔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찔레의 가시는 무엇이든 잡으면 놓지 않으려고 하는데
"우리 엄마, 우리 동생을 본 적이 있나요?" 하고
애타게 물어보는 찔레의 마음이 가시로 태어났기 때문이란다.'
두번째 이야기
외동딸을 시집 보내고 난 어머니는 홀로 긴 겨울을 수 삼 년 지냈다.
'죽기 전에 하나 뿐이 딸(달래)을 한번보고 죽어야지!' 언제나 입버릇처럼 되뇌던 어머니는
구부러진 허리에 죽장(竹杖)을 짚고 먼 길을 나섰다. 거의 4-5일이나 걸려서 달래가 사는
인근 마을까지 도착했을 때, 짙은 저녁 노을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갑자기 붉은 빛이
감도는 것을 보고 보리흉년이 들 것을 미리 알아차린 노모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보릿고개 때는 오지 말라'던 달래의 하소연이 아닌 충고가 떠올랐던 것이다.
"엄마, 나를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보릿고개 때는 오지 말아 줘!" 노모의 귓전에서는
달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듯 했다. 참으로 답답했다.
그 먼 길을, 이제 와서 돌아설 수도 없고, 배가 고파서도, 허리가 접혀서도 꼼짝 할 힘이 없었다.
어쨋거나 '보릿고개'에는 친정어머니도 오지 말라던 딸네 집에 불쑥 들어 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척에 있는, 그토록 그립던 딸네 집이 보이는 거리에서, 어머니는 용기를 잃은 것이다.
하지만 이름이나마 불러보고 싶었다.
만나지는 못할지라도 "달래야!" 하고 이름이나마 불러보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질 않았다.
어머니는 그만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은 체 줄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일 순간, 허기진 배를 쓸어 내리던 어머니 눈에 하얀 꽃이 핀 가시나무를 발견하고는
무작정 따먹기 시작했다. 가시나무 틈에 솟아난 새순(찔레)도 꺾어 먹었다. 달콤했다.
이 것만 먹어도 집으로 돌아갈 힘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로 한없이 따먹었다.
그러는 사이 어둠은 짙어 길은 보이지도 않고 피로에 지친 몸은
그 자리에 가시나무 밑에서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주린 배를 안고 잠든 어머니, 아니 잠 든 것이 아니라 숨을 거둔 것이다.
어쩌면 산골 꽃샘 추위에 얼어 죽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가시가 많은 새순(찔레)를 너무 많이 꺾어 먹어서 뱃속에
위장이 가시에 '찔려'서 죽었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 꽃을 '찔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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