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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여기 쯤이면 / 오탁번

by kimeunjoo 2010. 1. 1.

         

         

         

         

         

        여기 쯤이면 / 오탁번

         

         

        여기쯤에서 그만 작별을 하자

        눈뜨고 사는 이에게는 생애의 벼랑은 언제나 있는 법

         

        거기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 하나 따서 가슴에 달고

        뜻없는 목숨 하나 따서 만났던 그 자리 그 어둠 앞에

        우리의 죄로 젖어 있는 추억을 삼고

         

        그만 여기쯤에서 작별을 하자

        똑같은 항아리가 어느 한쪽에 깨어져서 들어가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도 아니다

        우리의 입술은 아침저녁 비가 오고

        내 몸에 묻어 있는 눈썹 하나 머리칼 한 올이 나의 새벽까지

        따라와서 죄를 짓자고 속삭인다 해도

        너의 찬 손이 뜨거워지고 나의 안경이 흐려진다 해도

        말하지 마, 아무 말도 하지 마

         

        작별을 하자 그만 여기쯤에서

        생애의 벼랑에서 뛰어내려 젖은 입술을 입술에 비비며

        말하지 마, 아무 말도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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