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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너를 사랑한다 / 강은교

by kimeunjoo 2009. 12. 30.

         

         

         

         

         

        너를 사랑한다 / 강은교

         

         

        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몰랐다

        꽃 밖에 꽃이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아,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은
        한없이 통통하다는 것을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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