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다란 나무
나뭇가지들이 갈라진다
몸통에서 올라오는 몸을 찢으며 갈라진다
찢어진 자리에서 구불구불 기어나오며 갈라진다
이글이글 불꽃 모양으로 휘어지며 갈라진다
나무 위에 자라는 또 다른 나무처럼 갈라진다
팔다리처럼 손가락 발가락처럼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갈라져 있었다는 듯 갈라진다
오래 전부터 갈라져 있던 길을
거역할 수 없도록 제 몸에 깊이 새겨져 있는 길을
너무 많이 가보아서 훤히 알고 있는 길을
담담하게 걸어가듯이 갈라진다
제 몸통으로 빠져나가는 수많은 구멍들이
다 제 길이라는 듯 갈라진다
갈라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듯
조금 전에 갈라지고 나서 다시 갈라진다
다시 갈라진다 다시 갈라진다 다시 갈라진다
다시다시다시 갈라진다
갈기갈기 찢어지듯 갈라진다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쉬지 않고 갈라진다
갈라져 점점 가늘어지는데도 갈라진다
갈라져 점점 튀틀리는데도 갈라진다
갈라진 힘들이 모인 한 그루 커다란 식물성 불이
둥글게 타오른다 제 몸 안에 난 수많은 불길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맹렬하게 갈라지고 있다
(창작과비평, 2009 가을호)
- 이성적인 화법과 놀라운 집중력으로 들여다본 세부묘사를 통해 인간의
내적인 삶을 따뜻하게 끌어내고, 풍경과 현상을 냉철하게 파헤치는 독특한
시세계로 문단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며 후학들의 모범이 되고 있는 김기택 시인의
시를 통해 우리가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없었던 사물이나 현상 그리고 그 안에
서 끌어낸 깊은 사유와 상상력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수상
시집 『태아의 잠 』『 바늘구멍 속의 폭풍』『사무원 』
『 소』『 껌』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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