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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고독은 평등하다 / 이생진

by kimeunjoo 2009. 12. 20.

고독은 평등하다 / 이생진

 

 

 

                       
어디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섬에 간다고 하면 왜 가느냐고 한다. 고독해서 간다고 하면 섬은 더 고독할 텐데 한다. 옳은 말이다. 섬에 가면 더 고독하다. 그러나 그 고독이 내게 힘이 된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고독은 힘만 줄 뿐 아니라 나를 슬프게도 하고 나를 가난하게도 하고 나를 어둡게도 한다.


어떤 사람은 고독해서 술을 마시고 어떤 사람은 고독해서 수화기를 든다. 모두 자기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지혜를 짜낸다. 하지만 고독은 자유로워야 한다.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져야 하고 지도처럼 방향이 명확해야 한다. 마음대로 만든 공간을 마음대로 누웠다가 마음대로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우이도 돈목마을에서 칠십 평생을 살았다는 박영순 노인이 생각난다. 서울 딸네 집에 갔더니 하루도 못 살겠다고 하던 노인. 앞집도 뒷집도 집을 비운 채 육지로 가고 없는데 그 노인이라고 외롭지 않을 리가 없다. 다만 살던 데가 마음 편해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고독은 누구에게나 있다. 권력이 많은 사람에게도 있고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도 있다.


고독은 어디나 있다. 부산한 도시에도 있고, 외딴 섬에도 있다. 살아있는 동안은 고독의 연속이다. 고독 때문에 병나는 사람도 있고 그 병을 치료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병원 의사도 고독하고 간호사도 고독할 때가 있다.


고독하지 않은 사람이 만든 옷은 몸에 맞지 않고 고독하지 않은 사람이 조립한 시계는 시간을 잴 줄 모른다. 시인이 고독했을 때 펜을 들면 시가 되고 화가가 고독했을 때 화필을 들면 그림이 된다. 그러나 고독했을 때 흉기를 들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고독은 깨끗한 마음과 평화로운 의지로 다스려야 한다.

 

이생진 산문집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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