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호승 -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같은
흰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는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것은
그 얼마나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 문학의 향기 > ♣ 정호승 시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시:정호승 (0) | 2009.12.08 |
---|---|
끝끝내 - 시:정호승 (0) | 2009.12.08 |
사랑 - 정호승 (0) | 2009.12.03 |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 정호승 (0) | 2009.12.03 |
우리가 어느 별에서 - 정호승 (0) | 2009.12.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