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김기택
한때
그 작은 연못은
커다란 분수였습니다.
땅속에 스며든 물방울 씨앗하나가
거대한 물기둥으로 솟아올라
하늘을 덮고 큰 그늘을 거느리던 곳이었습니다.
지붕에
맺힌 물방울들은
떨어지고 맺히고 떨어지고 맺히고
꽃이 되었다가 잎이 되었다가 열매가 되었다가
후드득 떨어지면 차고 커다란 바람이 되기도 하였다가
다시 무수한 물방울로 되돌아가곤 하였습니다.
지금
분수가 있던 자리에는
키 작은 냄비 같은 연못이 하나 있습니다
땅속에서 이글거리는 뿌리의 불꽃을받아
낮은 파문을 일으키며 끓고 있습니다.
솟아오르려고 하지만 작고 동그란 파문만 일어날 뿐.
작은
연못에 엉덩이를 대고
한 노인이 걸터앉아 있습니다.
한때는 솟구치는 물줄기였지만, 불꽃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높은 키도 사라지고 조용하고 편편해서
오가다 지친 사람들은 누구나 앉아 쉬었다 가는 곳입니다.
감상:
나무가 잘려나간 그루터기를 작은 연못으로,
잎이 무성한 나무를 분수로 보았네요.
나무는 세밀히 보자면 거대한 물기둥이지요.
뿌리에서 물을 빨아올리는 물관들이 기둥을 이루지고
무성한 잎사귀가 하늘을 가리는 모습은
솟아오른 분수에서 흩어지는 물방울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지금 그 물기둥 같던 나무는 잘려서
작은 냄비 같은 연못이 되어있습니다.
기둥은 잘렸어도 뿌리는 살아있어서
땅 속에서 이글거리며 불꽃을 일으키지만
낮은 파문만 일으킬 뿐 솟구칠 수 없습니다.
솟아오르려고 하지만 작고 동그란 파문만 일어날 뿐.
나이테를 파문이라고 하니
읽는 마음에도 파문이 이는 듯 합니다.
나무는 동그란 파문을 만들며 성장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 시가 뜨거운 감동을 주는 것은
1,2,3연의 섬세한 묘사가 아니라 마지막연의
조용하고 담담한 서술입니다.
작은 연못에 엉덩이를 대고
한 노인이 걸터앉아 있습니다.
한때는 솟구치는 물줄기였지만, 불꽃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높은 키도 사라지고 조용하고 편편해서
오가다 지친 사람들은 누구나 앉아 쉬었다 가는 곳입니다.
작은 연못에 힘없는 노인이 엉덩이를 대고 걸터 앉아있습니다.
솟구치는 물줄기, 타오르는 불꽃 같던 나무는 이젠 그루터기만 남아
오가다 지친 사람들은 누구나 앉아 쉬었다 가는 곳이 되어줍니다.
떨어지고 맺히고 떨어지고 맺히고
꽃이 되었다가 잎이 되었다가 열매가 되었다가
바람이 되기도 하였다가 다시 무수한 물방울로 되돌아가는,
치열한 삶이 아니면 저런 그루터기를 남길 수 있을까요?
노인과 그루터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한 쌍이 가슴을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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