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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시인뜨락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 백석

by kimeunjoo 2009. 6. 12.


[한국 현대시 10대 시인] <5>백석

 

 

  운명의 벼랑끝서 불러보는 마지막 희망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 감칠맛 나는 평안도 방언 토속 정취 압권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출처 : 고형진 엮음, <정본 백석 시집>, 문학동네, 2007

 

 

◆약력

▦1912년 평북 정주 출생. 본명 기행(夔行) ▦오산중학, 일본 도쿄 아오야마(靑山) 학원 졸업 ▦1935년 시 ‘정주성(定州城)’ 조선일보에 발표 등단 ▦1936년 유일한 시집 <사슴> 간행 ▦해방 이후 고향에 머물다 1995년 별세

 

◆해설

 

백석은 일제 강점기 시인 중 가장 독자적인 개성을 드러냈다. 1935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1936년에 시집 <사슴>을 출간했고 한글작품 발표가 가능하던 1941년 4월까지 지속적으로 시를 발표했다.

평안도 산골 마을의 토속적 정취를 감칠맛 나는 소박한 방언으로 표현한 백석은 점차 마음의 영역에 관심을 가지면서 척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민을 시에 담아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1948년 10월 <학풍>지에 게재되었는데 해방공간에 발표된 백석의 마지막 작품이다.

‘남신의주’와 ‘유동’은 지명이고 ‘박시봉’은 사람의 이름이다. ‘방(方)’은 편지를 보낼 때 세대주 이름 아래 붙여, 그 집에 거처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시의 제목은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 집에서’라는 뜻이다. 제목의 평범한 뜻과는 달리, 이 시는 소중한 것을 모두 잃어버리고 외로운 떠돌이가 되어 바람 센 거리를 헤매는 화자의 가련한 처지를 고백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첫머리에 나오는 ‘어느 사이에’라는 말은 화자의 가혹한 운명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자신도 지각하지 못한 사이에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상실의 끝판으로 내몰린 자의 뼈저린 탄식이 이 말에 응축되어 있다.

화자는 다가오는 추위를 피해 가까스로 누추한 방을 하나 얻어 몸을 눕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밀려드는 공허감과 무력감과 자책감에 시달린다.

슬픔과 회한이 가슴에 사무쳐 종국에는 죽음까지 떠올린다. 그 위기의 순간에 화자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행동을 취한다.

이것은 상실의 끝판에서 마지막 희망을 찾으려는 몸짓이다. 감당하기 힘든 자신의 삶을 운명에 귀속시키고 체념한 화자는 다시 고통을 안겨줄지 모르는 외부의 시련에 맞서 자신을 지켜줄 상징적 표상을 설정한다. 그것이 바로 ‘굳고 정한 갈매나무’다.

‘먼 산 뒷옆에 바위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둠 속에 눈을 맞으면서도 의연한 자태를 유지하는 갈매나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이 시는 평이한 언어와 표현으로 인간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상실의 체험과 극복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여기 담긴 감정의 추이 과정은 인간 체험의 보편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러기에 이 시는 상실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그들의 마음을 위안할 수 있었다.


이숭원(문학평론가ㆍ서울여대 교수)

입력시간 : 2007/10/18 17:53:15
수정시간 : 2008/01/09 19:59:02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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