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보면 / 이근배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대학 시절 첫 철학시간, 칠판에 적어놓은 화두다.
‘이것이 철학이다, 인생이다’라고 말한 노 은사님은 작고하신 지 오래다. 그분의 음성이 시로 적혀 있다.
오늘도 나는 살고 있다. 넘어지지 않아도 될 곳이 어딘지 모르겠다. 툭툭 떠나가고 있는 ‘어떻게 살 것인가’. 살다가 보면 알 날이 있을까? 사랑한 사람, 더 사랑하기 위해. ─ 원재훈 시인 . 주간동아
오랜 역사와 더불어 꽃피워온 얼ㆍ말ㆍ글의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도록 구성된 「한국대표 명시선 100」 이근배 시인의 시집 『살다가 보면』. 한국문학작가상, 중앙시조대상, 고산문학상, 만해대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하며 자신만의 시세계를 펼쳐온 저자의 시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서해안’. ‘들길에서’, ‘한강은 솟아오른다’ 등의 시편이 모두 5부로 나누어 수록되어 있다.
자화상 / 이근배
― 너는 장학사(張學士)의 외손자요
이학자(李學者)의 손자라
머리맡에 얘기책을 쌓아놓고 읽으시던
할머니 안동김씨는
애비, 에미 품에서 떼어다 키우는
똥오줌 못 가리는 손자의 귀에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을 못박아주셨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라 찾는 일 하겠다고
감옥을 드나들더니 광복이 되어서도
집에는 못 들어오는 아버지와
스승 면암(勉庵)의 뒤를 이어
조선 유림을 이끌던 장후재(張厚載) 학사의
셋째 딸로 시집와서
지아비 옥바라지에 한숨 마를 날 없는 어머니는
내가 열 살이 되었을 때
겨우 할아버지 댁으로 들어왔다
그제서야 처음 얼굴을 보게 된 아버지는
한 해 남짓 뒤에 삼팔선이 터져
바삐 떠난 후 오늘토록 소식이 끊겨 있다
애비 닮지 말고 사람 좀 되라고
―비례물시非禮勿視하며
비례물청非禮勿聽하며
비례물언非禮勿言하며
비례물동非禮勿動하며……
율곡(栗谷)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할아버지는 읽히셨으나
나는 예 아닌 것만 보고
예 아닌 것만 듣고
예 아닌 것만 말하고
예 아닌 짓거리만 하며 살아왔다
글자를 읽을 줄도 모르고
붓을 잡을 줄 모르면서
지가 무슨 연벽묵치(硯癖墨癡)라고
벼루돌의 먹때를 씻는 일 따위에나
시간을 헛되이 흘려버리기도 하면서.
그러나 자다가도 문득 깨우고
길을 가다가도 울컥 치솟는 것은
―저놈은 즈이 애비를 꼭 닮았어!
할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그 꾸지람
당신은 속 썩이는 큰아들이 미우셨겠지만
―아니지요 저는 애비가 까마득히
올려다보이거든요
칭찬보다 오히려 고마운 꾸중을
끝내 따르지 못하고 나는 오늘도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를 맞는다.
*-너는 장학사(張學士)의 외손자요
이학자(李學者)의 손자라 -
이근배 시인은 1940년 충남 당진에서 유학자인 이각현(李覺鉉)공의 장남 선준(銑濬)공과 거유 장후재 (張厚載)학사의 셋째 딸 순의(順儀)여사의 외동아들로 태어남.
*勉庵(면암) : 崔益鉉(최익현)의 호
*栗谷(율곡) : 李珥(이이)의 호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硯癖墨癡(연벽묵치) : 문방사우에 빠지는 어리석음
<작가가 그린 자화상>이근배 ‘그릴 얼굴이 없다’
이근배(시인)
나는 요즘 들어 연벽묵치(硯癖墨癡)라는 말을 자주 쓴다.
종이(紙), 붓(筆), 먹(墨), 벼루(硯)가 문방생활의 필수품이던 시대에 글이 높은 선비들이 유난히 그것들을 혹애(酷愛)하여 미친 듯이 빠지고 어리석게 달려드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내가 그 몹쓸 병에 걸려 40년 가까이 벼루 찾기에 없는 돈을 바치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한 달 전쯤 나는 문단의 큰 어른들과 동료 후배 문인들이 만당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내가 나를 쓴 시 ‘자화상’을 읽었다. 이 땅의 많은 시인들이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써온 것 가운데 나는 서정주 선생의 시가 가장 높이 보이고 울림도 커서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암송해 오고 있는 터이어서 그 시를 따를 수 없을 바에야 ‘자화상’만큼은 쓰지 않겠다고 속으로 일러 왔었다.
그런데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가 반드시 ‘자화상’을 글제로 쓰라는 청탁에 그만 붓을 들었던 것이고 발행하는 문학세계사 30년 기념 행사장에서 읽게 된 것이다.
내가 시랍시고 쓴 ‘자화상’에 “글자를 읽을 줄도 모르고/ 붓을 잡을 줄도 모르면서/ 지가 무슨 연변묵치라고/ 벼루 돌의 먹 때를 씻는 일 따위에나/ 시간을 헛되이 흘려버리기도 하면서” 하는 대목이 들어있다.
서정주 선생은 스물세 살 때 자신을 시로 그리면서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고 했었다. 그 말씀을 흉내 내고 싶지는 않지만 나의 일흔 해의 삶을 돌이켜보면 자랑거리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고 못나고 부끄러운 짓거리로만 내 생애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나의 본적은 충남 당진군 송산면 삼월리 209번지이다. 태어나서 오늘까지 한 번도 옮긴 적이 없다. 그곳은 할아버지 댁이었는데 나는 그곳 할아버지의 사랑방에서 똥오줌 못 가릴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스물네 살 때 고향을 떠나 살고 있다.
내가 아버지 얼굴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열 살 때였는데 온양에서 살림을 꾸리던 아버지는 나라 찾는 일에 뛰어들어 내가 태어나기 3년 전부터 감옥을 드나들었고 어머니는 옥바라지에도 힘이 부치는 터이어서 할아버지는 큰손자인 나를 떼어다 당신의 품속에서 키우셨다.
사랑방 문갑 위에는 남포석 벼루와 청화백자 산수문 연적이 있었고 할아버지는 붓으로 생활하셨다.
할아버지는 사람 사는 법을 가르치려고 율곡(栗谷)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읽히셨는데 지금도 입으로는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을 외우고 있으나 나는 예 아닌 것만 보고 예 아닌 것만 듣고 예 아닌 것만 말하고 예 아닌 짓거리만 하며 살아왔다.
머리맡에 얘기책을 쌓아놓고 읽으시던 할머니 안동 김씨는 “너는 장학사의 외손자요, 이학자의 손자라”는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 내 귀에 못박아주셨는데 한 말의 거유 최익현(崔益鉉)의 뒤를 이어 조선 유림을 이끌던 외할아버지가 꾸어주셨다는 황룡이 품안에 달려드는 그 태몽 값도 못 치르고 할아버지의 가르침도 못 따른 채 헛나이만 먹었으니 무슨 낯을 들겠으며 내손으로 내 낯짝을 그릴 수 있으랴.
다만 할아버지가 “저 놈은 즈이 애비를 꼭 닮았어” 자주 하시던 그 꾸지람이 왜 내게는 분에 넘치는 칭찬으로만 들렸던지? 그 말씀이 자다가도 문득 깨이고 길을 가다가도 울컥 치밀어 올라 나는 뉘우치고 뉘우치며 살고 있다.
이근배
필명을 사천沙泉으로 쓰며 194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1958년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했고, 1961년부터 1964년 사이에 경향, 조선, 서울, 동아 등 각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 시조, 동시 등이 당선, 시쓰기를 시작했다. 월간 '한국문학' 발행인 겸 주간, 계간 '민족과 문학' 주간 등을 역임했다.
서울예대, 추계예대, 중앙대 등에서 시창작 및 시론을 강의했으며 2006년 현재 재능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람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중앙시조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지은 책으로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 <노래여 노래여>, <시가 있는 국토기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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