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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외로울 때 - 이생진

by kimeunjoo 2012. 12. 30.

 

Just a little climb

 

 

 

 

외로울 때 / 이생진


이 세상 모두 섬인 것을
천만이 모여 살아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욕심에서
질투에서
시기에서
폭력에서
멀어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떠있는 섬
이럴 때 천만이 모여 살아도
천만이 모두 혼자인 것을
어찌 물에 뜬 솔밭만이 섬이냐
나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고독 / 이생진 

나는 떼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취한 사람 / 이생진

취한 사람은
사랑이 보이는 사람

술에 취하건
사랑에 취하건
취한 사람은
제 세상이 보이는 사람

입으로는 이 세상
다 버렸다고 하면서도
눈으로는 이 세상
다 움켜쥔 사람

깨어나지 말아야지
술에 취한 사람은 술에서
사랑에 취한 사람은 사랑에서
깨어나지 말아야지


 

 

 

고백 / 이생진

이젠 잊읍시다
당신은 당신을 잊고
나는 나를 잊읍시다

당신은 내게 너무 많아서 탈
당신은 당신을 적게 하고
나는 나를 적게 합시다

당신은 너무 내게로 와서 탈
내가 너무 당신에게로 가서 탈
나는 나를 잊고
당신은 당신을 잊읍시다

 

 

 

Light VS dark

 

 

 

 

다시 나만 남았다 / 이생진 


다시 나만 남았다
영혼을 쫓아다니느라 땀이 흘렀다
영혼을 쫓아다니는데 옷이 찢겼다
자꾸 외로워지는 산길
염소쯤이야 하고 쫓아갔는데
염소가 간 길은 없어지고 나만 남았다
곳곳에 나만 남았다
허수아비가 된 나도 있었고
돌무덤이 된 나도 있었고
나무뿌리로 박힌 나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불쌍해서 울었다
내가 많아도 나는 외로웠다

 

 

 

하늘로 가려던 나무 / 이생진

나무가 겁없이 자란다.
겁없이 자라서 하늘로 가겠다 한다.
하지만 하늘에 가서 무얼 한다
갑자기 허탈해진다.

일요일도 없는
하늘에 가서 무얼 한다
나무는
그 지점에서 방황하기 시작한다.

 

 

 

 

 

혼자 남았을 때 / 이생진


다 떠나고 혼자 남았을 때
사람이기보다 흙이었으면
돌이었으면
먹고 버린 귤껍대기였으면

풀되는 것만도 황송해서
오늘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돌틈에 낀 풀을 잡고 애원하는 꼴이
풀뿌리만도 못한 힘줄로
더듬더듬 밧줄을 찾았지만
고독엔 밧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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