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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영상시

혀만 취한 사람 - 김기택

by kimeunjoo 2012. 12. 22.

 

 

 

 

 

  혀만 취한 사람


   김기택



  술에 취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말에서는 독한 술 냄새가 난다.
  알코올에 절인 혀 냄새가 난다.
  주정이 마비시킨 발음 냄새가 난다.
  느린 혀가 발음을 만들기도 전에
  뜨겁고 힘센 말들이 가끔 굼뜬 혀를 깨문다.

  보란 듯이 멀쩡한 얼굴 늙은 대머리로
  보란 듯이 대낮에 혼란스러운 전철 안에서
  팬티도 입지 않은 혀를 덜렁덜렁 내놓고 있다.
  단단한 '말' 대가리를 빨아대고 있다.
  몇 시간째 지치지도 않고!
  아랫도리로는 못 하고 손으로도 못 하고
  입으로만 '자유' 행위를 하고 있다.
  만취한 니기미 씨발과 씹좆과 개새끼가
  혀에서 사정된다. 걸쭉하고 허연 침이
  제 몸을 한껏 우려낸 엑기스가
  사방으로 튄다. 우글우글한 올챙이들이
  그 속에서 죽을힘을 다해 꼬리를 흔들고 있다.

  혀에는 오톨도톨 전율이 돋아 있다.
  작은 돌기들 모두가 잔뜩 성이 나 있다.
  그 말이 내 귓구멍에 딱딱한 대가리를 들이대고
  게걸스럽게 쑤셔대는 바람에
  귓구멍이 다 늘어나고 헐 지경이다.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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