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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이외수 시인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설렘.행복찾기

by kimeunjoo 2012. 8. 25.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설렘으로 오늘을 살아가자

 

 

 

 

마음이 흥분되고 가슴이 콩닥거리며 두근거리는 상태를 설렌다고 표현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설레던 순간들은 많았다. 그런데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설렘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정말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설렘마저 기억에서 잊혀가고, 생활에 묻혀 밋밋하고 무덤덤한 일상이 돼 간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설레는 것도 없고’ ‘뭐 특별하게 하고 싶은 것도 없고’라는 표현이 잦아지고, 주변에서도 자주 듣는 익숙한 표현이 됐다. 설렘이 사라지고 무덤덤하며 밋밋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을 벗어나 호기심 천국인 청소년기를 통해 경험한 많은 새로움들, 청년이 되어 알게 된 어른의 느낌들,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서 얻게 된 사랑의 순간들, 일을 통해 작은 성공들이 가져다 주었던 성취의 순간들, 학문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여기서 비롯된 즐거움들,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서 받았던 칭찬과 격려, 때로는 무너질 대로 무너지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던 순간에 이루어진 인생 역전의 행복감 등 많은 순간들이 설렘으로 가득 찬 순간들이었다.

 

물론 이것들은 결코 대가 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지나온 시간들을 뒤돌아보면 무너지고 물러서고 되돌아가기보다 힘들어도 주저앉지 않았고, 아파도 견디고 극복했으며, 최악의 순간에도 최선을 통해 극복해왔던 시간들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 이뤄졌던 설레는 순간들을 뒤돌아보니 행복감이 차오른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스스로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쳐온다. 이유는 설렘과 설렘 사이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던 고통과 절망의 순간들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장미꽃에 가시가 있고, 달콤한 망고스틴이 단단한 껍질로 무장되어 있는 것처럼, 마음 설레는 순간들은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마흔 이후 삼십 년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걷는 많은 남성들이 다시 회복해야 할 기억들이 있다면, 자신의 인생 가운데 설레던 순간들에 대한 기억이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마음과 생각에 거듭 떠올려 보지만, 자신의 인생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강력한 자극제의 효력을 잃은 지 오래다. 초라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꿈이나 희망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 남성들도 많다. 하지만 희망이 희망으로 확인되고, 꿈이라는 단어가 삶의 활력소가 되기 위해선 우선 내 앞에 있는 장애물로 인한 고민을 탈탈 털어버려야 한다. 그러고는 내가 맛보았던 설렘의 순간들을 기억해 내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제는 나이 들어 어렵다고 말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옛날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장애물 앞에 마주설 수 있는 나이가 중년이다. 어느 한순간이라도 인생이 쉬워 본 적이 있었던가?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래서 내가 부단히 노력할 때 가능성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다시금 인내할 때 성취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거울 속에 있는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뭔가 잘 안 되고 힘든 일이 있다면 무너진 나의 마음은 잠시 닫아두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과거의 설레는 순간들을 떠올려보자.

 

가을 전어만 집 나간 며느리를 돌아오게 하는 것은 아니다. 잊어버렸던 설렘의 순간들도 힘겨운 현실 때문에 가출한 희망이 돌아오게 할 수 있다. 날마다 설레는 마음을 갖자.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 수 있는 생명 이 자체가 커다란 설렘이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설레는 마음으로 매일매일을 열어가자.

 

 

 

 

내 안에 있는 행복 찾기

 

 

어떤 사람들은 성공은 다만 꿈이었을 뿐 현실에서 이루기엔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꿈을 이루지 못한 이유에 대해 물어보면 다양한 이유를 제시한다.

 

그런데 그러한 이유들이 그들이 변화하는 것을 방해하고 현실에 발목 잡히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패의 경험은 두려운 마음을 안겨 줬지만 인생을 실패로 만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패로 인해 마음 깊이 자리 잡게 된 패배주의가 문제다. 패배주의야말로 모든 것들을 실패로 몰아가는 주범인 것이다. 모든 것을 상실하고 자녀까지 잃은 사람의 인생은 한마디로 벼랑 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극한의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한 가장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반면 작은 실패에도 좌절하고 근심하다가 스스로 인생을 마감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도 듣곤 한다.

 

한 예로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어렵게 모은 푼돈으로 공부하며 직장 생활을 해 온 중년 남성이 있었다. 그의 과거는 아픔 그 자체였다. 그래서 술만 먹으면 지난 아픔이 생각나 눈물을 흘리고, 화가 나면 지난 과거를 회상하며 독설을 쏟아 냈다. 나이가 들수록 지친 마음은 더 깊어졌고 오십대 중반임에도 더 이상 일할 수 없어 퇴직하고 말았다. 분노로 지친 마음을 붙들고 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날마다 실패하고 하는 일마다 낙망했던 한 남성의 경우는 오히려 희망을 품고 최선을 다한 결과 성공을 이루기도 했다. 불행하지만 불행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행복한 미래만을 붙들고 최선을 다한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 문제는 항상 일어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에 대한 태도가 인생을 다르게 만든다는 점이다. 문제에 직면해 이를 극복하는 사람은 문제가 성공의 발판이 되지만, 문제를 회피하며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불안해 하는 사람은 스스로 문제아가 된다.

 

남자들은 중년이 될 때까지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좋지 못한 과거의 기억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같다. 마흔이 넘은 남자 대부분은 자신들이 경험한 실패에 대한 기억이 성공의 경험보다 많다. 그래서 매사에 역동성이 줄어들고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된다. 마흔을 살아오면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일들은 부정적인 감정 습관을 가져다 주고 부정적인 사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혹여 실패주의로 마음과 생각이 정복당한 상태라면 하루라도 빨리 구출해 내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기보다 아예 다른 생각을 하는 편이 나을 때가 많다. 어둡고 부정적인 마음속에 행복한 생각들을 채워 보라.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 찬 지친 마음에 행복을 새겨 넣으면, 마음에 힘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은 희망의 마음만으론 채우기 부족한 중년이 아닌가. 한번 작은 일들 앞에서도 감사함을 넘치도록 표현해 보자. 아주 작고 사소한 즐거움과 감사라 할지라도 일단 마음에 차곡차곡 쌓다 보면, 어느새 상처받은 과거의 얼룩들은 지워질 것이다. 훗날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에는 마음 깊이 새겨진 상처 자국에 대해 마음 성형 시간을 가질 필요는 있다. 누구나 힘들고 어렵다.

 

그러나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과거의 그림자를 붙들고 시름시름 앓아선 안 된다. 오히려 힘들고 어려울수록 내 인생의 행복을 찾아내자. 그 행복을 꼭 붙들며 아픈 현실을 딛고 일어서자. 내일이라는 희망을 향해 오늘 내가 찾아낸 행복을 디딤돌로 삼자. 견디고 이기다 보면 행복을 누릴 기회가 꼭 찾아오는 것이 인생이다.

 

 

 

 

베풀어라 그러면 내게로 돌아온다

 

 

 

사람의 얼굴을 살펴보면 그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심지어 개인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 개인의 얼굴에는 그의 인생 이력서가 담겨 있으며, 부부의 얼굴에는 그 가정의 행복이력서가 담겨 있다.

 

어떤 남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찾아볼 수 없는가 하면, 어떤 남자는 찡그린 표정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밝은 얼굴과 미소를 갖고 있다.

무엇이 우리의 얼굴을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곧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다. 내게 주어진 현실을 풀어가는 삶의 태도가 나의 표정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마음이 즐거워지기도 하고, 무거워지기도 한다.

 

은퇴 이후에 10년 넘게 산속에서 혼자 생활하는 한 남성이 있다. 그분은 일상이 즐겁고 쾌활하다. 나 홀로 산속에 살면서도 매일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한다. 한겨울 폭설이라도 내리게 되면 한 달 가까이 집 밖으로 못나갈 때도 있지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작고 사소한 일들이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소중하게 대하다 보면 일상이 즐겁다고 한다.

 

흔히 사람들은 환경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환경을 대하는 나 자신이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행복감은 달라질 수 있다.

 

중년 남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살아가는 환경이 좋아지기보다는 척박해진다. 직장에서도 나이든 사람에게 주는 압박감을 떨칠 수 없고, 가정에서도 해결해야 할 이런저런 일들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젊을 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몸 상태가 고통으로 느껴진다. 더 좋아지리라는 기대감보다 나빠질 가능성을 더 많이 갖게 된 셈이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늘어지고 처진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된다. 가능성보다는 소멸을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남자들은 고독해진다. 그래서 외로움이 일상의 정서가 될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산불로 전기가 끊기면서 일상생활이 마비될 정도로 여러 가지 고통을 겪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언뜻 집에 소형발전기라도 하나 준비해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몸이 거하는 집에도 비상용품이 필요하듯, 우리 마음에도 이런 자가 발전시스템을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항상 사람들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찾아오진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자신의 일상을 맑은 날씨로 만들기 위해 밝게 생각하는 법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은퇴 이후에 ‘이렇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야 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만들어주는 행복연습이 필요하다.

 

아침에 직장동료들을 향해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고, 따뜻한 미소로 후배들을 격려하며, 업무에 지친 동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상을 만들어 보자. 집에 돌아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밝은 목소리로 가족을 부르고, 즐거운 미소로 자녀들의 방문을 열고 인사를 나누면 내게 돌아오는 것은 행복이다.

 

일에도 지치고 힘든데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에 사용할 에너지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을 누군가를 위한 희생으로 생각한다면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내가 웃고 친절을 베풀고 따뜻한 인사를 나누는 동안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만나는 사람을 활기차게 대할 때 내 인생에도 활력이 넘치게 된다. 나를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맑고 밝은 미소로 대하고,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볼까” 신경 끄자

 

 

 

 

삼십 대에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 사람처럼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따라잡기를 시작한 사람이 있었다.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어투로 말하다 보니 어느덧 닮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겉모습은 비슷할지 몰라도 인생의 격차마저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더 큰 좌절로 떨어지게 되었다.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면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실속 없는 겉모습만 갖춘 셈이다. 한 가지 얻은 것이라면 이렇게 따라 살다 보니 내가 따라 살려던 사람의 실체 정도는 알게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멈춰 섰다. 나는 나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삼십 대 중반이 돼서야 하게 된 것이다.

 

흉내를 내고 살아도 똑같은 인생을 살 수 없고, 무엇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자리에서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롤모델로 삼았던 분의 삶을 복사하듯 사는 것은 배우는 것도 아니었고, 제대로 사는 것은 더욱 더 아니었다.

 

중년이 되면서 누구처럼 돼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문득문득 닮고 싶은 사람과 비교하고 있었고, 그가 선 정상에 내가 도달하지 못할 때면 안타까워하는 것을 떠나 안절부절하곤 했다.

 

내가 닮고 싶었던 사람은 이미 자신의 길을 향해 오래 전부터 집중했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을 기울인 결과 정상의 위치에 서게 되었음을 간과했던 것이다.

 

인생은 같아질 수 없다. 같은 시대에 같은 느낌으로 그 자리에 똑같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바보스러운 일이었다. 누군가와 같아져야 한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이다. 다만 누구처럼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내가 생활하면 되었던 것이다. 마흔이 지나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살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자신이 이뤄야 할 삶의 목적이 분명하지 못한 사람들은 누군가를 따라 살게 된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는 것은 하늘의 북극성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삶의 방향과 지켜야 할 가치를 발견하면, 누구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살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고난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이를 감사하며 감당해 낸다. 사람들은 성공을 원한다. 인생의 주인이 되기를 원한다. 돈, 사랑, 명예를 원한다. 안정된 소속감을 원한다. 관심과 존경을 원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충족되면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갈망들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돈을 원한다고 할 때는 돈 자체, 즉 지폐나 수표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랑도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사랑 받고 사랑하는 행위에 진정한 가치가 있듯이 말이다.

 

백만 달러 지폐를 손에 쥐는 것은 ‘목표’가 될 순 있지만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내 인생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흔들림 없는 삶을 살아간다.

 

인생의 목적이 분명한 남성들은 가정과 일과 인간관계에 대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최고의 자리에 서고 싶고 목적을 이루길 원한다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흔해빠진 질문은 내던지고, 오직 목적지에만 시선을 고정시켜야 한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남자가 성공한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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