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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시인뜨락

정호승의 새벽편지

by kimeunjoo 2012. 7. 13.

[정호승의 새벽편지]

 

내일이라는 빵을 굽기 위해서는

 

 

정호승 시인

 

 

나는 ‘밥’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빵’이라는 말도 좋아한다. 빵은 서구적 이미지가 있는 말이라 한국인인 내게 어울리는 말이 아닐 수 있으나 지금과 같은 글로벌시대에 빵은 밥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나는 빵을 아주 좋아한다. 빵 중에서도 곰보빵을 좋아하는데, 이 빵을 좋아하게 된 데에는 까닭이 있다.

고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무전여행을 할 때였다. 울산 방어진해수욕장에서 하룻밤 자고 나자 배가 고팠다. 어디 뭘 얻어먹을 데가 없나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단체로 여름휴가를 온 어느 회사 직원들끼리 빵 봉지를 나누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너도 하나 먹어라” 하고 줄까 싶어 얼른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무도 주는 이가 없었다. 나도 한 봉지 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때 누가 빵 봉지를 뜯다가 빵 한 개를 툭 떨어뜨렸다. 얼른 내가 집어 들었다. 모래가 잔뜩 묻어 있는 빵이었지만 모래를 터는 둥 마는 둥 하고 맛있게 먹었다. 그게 바로 곰보빵이다.

빵 이야기를 하니까 한 청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생각하고 돈 한 푼 없이 서울을 떠났다. 걷거나 어렵게 버스를 얻어 타거나 하면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배가 고프면 남의 일을 거들어주고 얻어먹었다. 그렇게 한 달째 되던 날, 사흘을 굶은 끝에 배가 너무 고파 그만 어느 시골 가게에 들어가 빵을 훔쳤다.

혹시 주인이 쫓아올까 봐 냅다 정신없이 도망치다 어느 지점에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훔쳐온 빵을 먹으려고 하자 그게 빵이 아니라 분말세제였다. 그때 그는 얼마나 놀라고 슬펐는지 눈물이 다 났다고 한다. 그날 이후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은 없었으나 그날의 슬픔만큼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빵엔 ‘고통’이라는 재료 꼭 필요

나는 청년의 이야기에 가슴 깊이 아픔이 느껴졌다. 빵이라는 말에는 인생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데 그 의미가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 주인공 장발장도 배고픔 끝에 훔친 빵 하나 때문에 인생이 불행해지기 시작했다.

하나의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 밀가루, 이스트, 설탕, 소금, 계란 등의 재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내일이라는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재료들 중에서도 고통이라는 재료가 꼭 필요하다.

누구든 고통 없이는 내일이라는 빵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고통은 불행이라는 이름으로 누구에게나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온다. 이것이 삶의 본질이다. 운명과 죽음이 삶의 일부이듯 고통도 반드시 거쳐야 할 삶의 한 과정이다. 그래서 누구나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도스토옙스키는 “내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내가 고통을 겪을 만한 가치조차 없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라고 했다. 인간 존재의 가치가 바로 고통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내일이라는 빵에도 고통이라는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빵은 없다. 사랑과 이별의 고통, 분노와 상처의 고통, 배반과 증오의 고통, 가난과 좌절의 고통이 밀가루와 이스트와 함께 들어가 있다. 물론 기쁨의 눈물 몇 방울과 희망의 미소 몇 모금이 가끔 들어가기도 했다.

문득 사순절에 예수 수난극을 관람한 한 부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연극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은 그들은 공연이 끝나자 무대 뒤로 가서 예수 역할을 한 배우를 만나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때 남편이 극 중에서 배우가 지고 갔던 십자가 소품을 발견하고 부인에게 카메라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여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내 모습을 한번 찍어줘요.”

남편은 예수를 흉내 내 어깨에 커다란 십자가를 짊어진 자신의 모습을 찍으려고 했다. 그러나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속이 텅 빈 것인 줄 알았는데, 이게 왜 이렇게 무겁죠?”

남편이 배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배우가 말했다.

“만일 무거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나는 그 역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십자가의 본질은 무거움에 있다. 그 무거움은 바로 고통의 무게를 의미한다. 만일 십자가가 무겁지 않다면 그건 한낱 가벼운 나무둥치에 불과하다. 우리 삶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십자가처럼 고통의 무거움에 의해 형성된다. 만일 가벼움에 의해 형성되기를 원한다면 가벼운 것이 십자가가 아니듯 그것 또한 우리의 삶이 아니다. 당연히 내일이라는 빵조차 먹을 수 없게 된다. 내일이라는 빵을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무거운 고통이라는 재료가 적절히 들어가야 한다.

포퓰리스트 주장엔 ‘고통’ 빠져

평창도 실패라는 고통의 재료가 들어갔기 때문에 겨울올림픽 유치 성공이라는 맛있는 빵을 굽게 되었다. 미래의 나라 곳간을 비워버릴 수 있는 정치 포퓰리스트들의 온갖 주장에는 내일이라는 빵을 굽기 위한 오늘의 고통이 도외시돼 있다. 고통과 인내의 재료 없이는 어떤 국가의 국민도 맛있는 빵을 구을 수 없다.

정호승 시인 2011-07-14

 

 

 

 

[정호승의 새벽편지]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

 

일본 호류(法隆)사에는 절 앞에 소나무 숲길이 길게 형성돼 있다. 대부분 오랜 시간의 나이테를 지닌 건강하고 잘 생긴 소나무들로 보는 것만으로도 청정한 느낌이 든다. 호류사 안마당에도 윗부분이 뚝 잘린, 수령 몇백 년은 된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데 그 기품이 여간 예사롭지 않다. 내가 한참 동안 그 소나무를 쳐다보고 있자 일행 한 분이 호류사는 천년 된 소나무로 지었다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이 절을 1400여 년 동안이나 대대로 지켜온 ‘궁목수’ 가문이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천년 이상 갈 수 있는 절이나 궁궐을 짓는 목수를 궁목수라고 하는데, 니시오카 가문이 바로 그런 가문이라고 한다.

이 가문에서는 “천년 이상 갈 수 있는 건물을 지으려면 천년 된 노송을 써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나무로 건물을 짓는다면 모름지기 천년은 갈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궁목수로서 그 나무에게 면목이 서는 일이다”라고 후손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이는 나무의 두 가지 생명, 즉 자연적 생명으로서의 수령과 목재로 사용된 뒤부터의 생명 연수가 같다는 뜻이다. 나무의 나이를 통해 그 나무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뎌낼 수 있을까를 파악한 것이다. 그러니까 견딤의 기간이 쓰임의 기간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천년을 견딘 나무니까 천년의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다.

천년 노송의 향기 품은 천년 사찰

나는 이 가문의 가르침이 시라는 집을 짓는 언어의 목수인 내게도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좋은 시의 집을 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과 사물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체험이라는 나무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오랜 세월 동안 온갖 고통과 시련을 견뎌온 나무라야 한다. 만일 그런 나무가 없다면 단 한 줄의 시도 쓸 수 없게 된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견딤의 힘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는 20대 초 군 복무할 때다. 1970년 2월, 신병훈련을 마치고 배치 받은 공병부대로 가자 일주일 뒤 제대한다는 한 병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어이, 정 이병, 넌 언제 제대하나?”

 

“네! 73년 초입니다!”

나는 병장의 질문에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하하, 73년? 그때까지 언제 기다려, 잘해 봐, 응?” 하고 내 어깨를 툭 쳤다. 주위에 있던 다른 병장들도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때 그 얼마나 아프고 견뎌야 할 세월이 아득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군 복무기간이 약 22개월이지만 그때만 해도 36개월이었다. 제대하려면 꼬박 3년을 참고 견뎌야 했다. 그래서 군모에 ‘세월아, 구보로!’라고 쓴 병사가 있는가 하면, ‘백인(百忍)’이라고 쓴 이도 있었다.

나는 모자 안쪽 잘 안 보이는 곳에 ‘참을 인(忍)’자 세 개를 썼다. 한 해가 지나면 한 자를, 또 한 해가 지나면 또 한 자를 지웠다. 그러나 글자 한 자를 지우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구나 견딘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견디고 견디다가 구부러지고 뒤틀어진 나무처럼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궁목수 가문에서는 그런 나무도 적재적소에 사용했다고 한다.

심하게 구부러지고 뒤틀린 나무라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고 그 나무의 성질을 잘 이용해 알맞은 용처에 썼다고 한다. 심지어 남쪽 벽에 쓸 나무는 산의 남쪽에서 자란 나무를 쓰고, 서쪽 벽에 쓸 나무는 산의 서쪽에서 자란 나무를 썼다고 한다.

그렇다. 내가 만일 똑바로 자라지 못하고 뒤틀린 나무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쓰일 데가 있다. “나 같은 놈이 어디 쓰일 데가 있겠어!”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 궁목수 가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용무늬가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통가구 전주장(全州欌)만 해도 용목이라는 나무를 사용한다. 그런데 그런 나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 병 때문에 몸의 일부가 옹이 지고 뒤틀린 나무가 그렇게 용무늬로 나타난 것이다. 목공예 소목장(小木匠)들은 구하기도 어렵고 부르는 게 값인 그런 나무의 무늬를 최고로 친다.

지금 나의 고통과 상처도 그런 용목이 되기 위한 것이다. 가장 잘 견디는 것이 가장 잘 쓰이는 것이므로 용목처럼 견딤으로써 인생의 아름다운 무늬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통이라도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는 인내의 힘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참기 힘든 고통도 미래의 보약

니시오카 궁목수 가문에서는 천년 노송으로 집을 짓고 나면 언젠가는 후대에서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다시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천년을 내다보며 집을 짓고 천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은 것이다.

지금도 호류사를 지은 목재의 일부를 대패질하면 천년 된 노송의 향긋한 솔 내가 난다고 한다. 견딤이 낳은 쓰임의 향기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우리 젊은이들한테도 그런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자살이 국가적 질병이 된 이 시대에 젊은 청년들마저 견딜 수 없다고 자살해 버린다면 언제 어디에 누가 쓰일 수 있을 것인가. 견딤은 미래의 나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 내게 견딤이 있어야 귀하게 쓰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호승 시인   2011.04.21

 

 

정호승의 새벽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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