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문학의 향기/♣ 영상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by kimeunjoo 2012. 5. 7.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낭송 고두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혼자라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 쯤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평북 정주하면 소월이 있고 백석(白石·1912~1995)이 있다.

1988년의 월북시인 해금 조치 이후 ‘백석 붐’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백석 시인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현대시에서 드물었던 북방 정서와 언어의 한 정점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詩는 그의 절친한 친구가 소장하고 있다가 1948년에 발표했다. 해방 공간에 발표된 백석의 마지막 작품이다.‘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 집에’라는 제목의 뜻에 주목해볼 때 친구에게(혹은 스스로에게) 편지 형식으로 보낸 고백시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그래서일까. 소리 내어읽노라면 그가 나직이 말을 건네는 듯 ‘가슴이 꽉 메여 오’고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이곤 한다.

 

‘나’라는 맨 얼굴의 시어나 ‘-이며’ ‘-해서’ ‘-인데’와 같은 나열 혹은 연결어미나 ‘것이었다’라는 종결어미 등의 반복이 내뿜고 있는 독특한 산문적 리듬이야말로 이 詩의 백미다.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한다는 직유며,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직설이며,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역설 등 사무치지 않는 구절이 없다.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기까지의 의연한 회복과정이 유장한 리듬과 어우러져 한 편의 인생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1942년 일본 시인 노리다케 가즈오는 기자와 교사생활을 작파하고 만주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슬’히 살고 있던 그를 찾아간다. 그는 가즈오에게 ‘나 취했노라’라는 詩를 헌정했다.

20년 후 가즈오는 “파를 드리운 백석./백이라는 성에, 석이라고 불리는 이름의 시인./나도 쉰세 살이 되어서 파를 드리워 보았네.”(<파>)라는 詩를 그에게 헌정햇다. 파를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을 그를 생각한다.

쌀랑쌀랑 소리를 내며 싸락눈을 맞는다는, 이름만으로도 가슴 뻐근한 갈매나무를 생각한다.

 

 

정끝별 시인.

 

 

 

 

 

 

 

백석은 191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고보를 졸업하고 동경 청산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시인, 해방후 고향에 있었기에 월북 시인으로 잘못 알려져 한때 그의 시집은 판금이 되었었지요.

 

1995년 백석의 애인이었던 자야 김영한 여사가 내사랑 백석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백석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특히 이시가 알려지면서 단번에 천재시인 백석으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합니다.

이시는 만주에서 홀로 외로이 떠돌면서 쓴시인데 처절한 외로움이 전해져 가슴이 저립니다. 유강생님의 절절한 낭송으로시가 더욱 살아납니다.

긴 제목은 남(南)신의주 유동(동네이름)에 사는 박시봉이라는 사람의 방(房)에서라는 뜻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