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세계
1930년부터 박용철·정지용·이하윤 등과 〈시문학〉 동인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시문학〉·〈문학〉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내 마음 아실 이〉·〈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을 발표했다. 초기시는 박용철의 도움을 받아 펴낸 〈영랑시집〉(1935)에 실려 있는데, 주로 자아의 내면에 바탕을 둔 섬세한 감각을 민요적 율조로 노래했다. 이 시기의 시는 '촉기'라는 단어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여기서의 '촉기'란 그의 해석에 의하면 "같은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탁한 데 떨어지지 않고, 싱그러운 음색과 기름지고 생생한 기운"이다. 그리고 그것은 육자배기를 비롯한 우리 민요에 흐르고 있는 정조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그가 민요적 율조에 절제된 시어를 써서 자연을 노래한 점은 한국시사에서 김소월과 함께 전통시가의 맥을 잇는 시인으로 규정짓게 한다. 초기시 가운데 절반 이상이 4행시인 것만 보아도 그가 율격적 구조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시 가운데 4음보 4행으로 된 것은 한시와 시조의 영향을 받은 듯하나 1, 2행이 대구를 이루고, 4행에 와서 의미가 갑자기 변화하는 것으로 보아 시조보다 1행이 더 많고 한시의 기승전결 구조와 맞지 않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의 시에는 '슬픔·눈물·기다림·마음' 등의 시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 시어들이 나타내는 비애의 느낌은 이전의 시인들처럼 영탄이나 감상에 머물러 있지 않고 마음속으로 향해 있을 뿐 아니라 민요적 율조로 극복되어 있다.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에서 애절하면서도 그렇게 슬프지 않은 마음을 나타낸 것처럼 그의 시의 서정성은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다. 어린 나이에 아내를 잃은 슬픔을 노래한 〈쓸쓸한 뫼 앞에〉(시문학, 1930. 3)를 비롯해, 모란이 피기까지의 '기다림'과 모란이 떨어져버린 뒤의 '절망감'을 보여주고 끝행에서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는 화자의 의지를 보여준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문학, 1934. 4) 등이 이 시기에 발표한 작품이다.
후기시는 한동안 시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1940년을 전후해 발표한 〈거문고〉(조광, 1939. 1)·〈달맞이〉(여성, 1939. 4)·〈독을 차고〉(문장, 1939. 7) 등에서 비롯된다. 이 시기에는 섬세한 감각을 민요적 율조로 읊었던 초기 시와는 달리 자아를 확대하고 세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탕으로 했다. 즉 초기에는 형식에 치중한 반면 후기에는 내용에 치중한 것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 그는 인생과 사회에 대한 절망과 회의를 노래하면서 '죽음'을 강렬하게 의식했다. 이때의 '죽음'은 초기에 노래했던 비애의식이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회의를 나타낸 것으로 일제 말기의 어려운 현실을 잘 보여주었다. 이러한 회의와 민족관념은 억압받는 우리 민족을 기린에 비유한 〈거문고〉와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로 시작되는 〈독을 차고〉를 거쳐 〈묘비명〉(조광, 1939. 12)·〈한줌 흙〉(조광, 1940. 3)에 이르면서 운명론으로 기울어진다.
이와 같은 시 경향은 해방이 되자 판이하게 바뀐다. 해방의 감격을 그대로 읊은 〈바다로 가자〉·〈겨레의 새해〉 등을 발표하여 조국의 산천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과 새로운 조국건설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시들도 현실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 부족한 격정적 토로에 그쳤다. 시집으로 〈영랑시선〉(1949)·〈현대시집〉(1950)·〈모란이 피기까지〉(1975)·〈찬란한 슬픔〉(1985) 등이 있다.
兪炳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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