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신춘문예 당선작들의 시선
경제위기 속 20대 불안감 그린 작품 다수
암울한 현실… 그래도 골방에 숨진 않을거야
〈아칸소스테가〉는 심장 근육이 굳어지는 희귀병에 걸린 아내 때문에 실의에 빠졌던 남자가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남자는 아내가 기르는 애완용 이구아나가 상추를 먹지 못하고 앞으로 기어가지도 못하는 기형을 딛고 살아가는 것을 보며 먼 옛날 바다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와 육지동물의 조상이 된 아칸소스테가를 떠올린다. 남자는 '무슨 노래든 당신이 부르고 싶으면 부르는 거야'라고 아내를 위로한다.
◆ 위기의 최전선과 20대의 불안
2009년 문학의 첫발을 내디딘 '신춘문예 새내기'들의 소설은 암울한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서사를 선보였다. 가중되는 경제난은 공터를 서성이며 잉여인간 취급을 당하는 도시 빈민들의 애환으로 표출되거나(박화영의 〈공터〉·세계일보), 취직에 실패한 뒤 남의 주민등록증을 훔쳐 남의 이름으로 살아가는(진보경의 〈호모 리터니즈〉·서울신문) 비루한 삶, 목숨을 버린 친구의 흔적을 찾아 떠났지만 끝내 실패하고 마는 세 청년(황지운 〈안녕, 피터〉·문화일보)의 운명을 통해 형상화된다. 문학평론가 심진경씨는 "사회경제적 위기를 최전선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맞고 있는 20대들의 불안감을 그린 소설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바라보는 행위에서 신춘문예 도전자다운 새 출발의 용기가 읽히기도 한다. 문학평론가 우찬제 교수(서강대 국문과)는 "당선작들이 자기 밖의 타자적인 것들과 적극적으로 교섭하면서 사회적 맥락을 형성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우 교수는 "서사적 자아가 자기 안의 내면적 몽상이나 유희적 경향을 보였던 2008년 당선작들에서 목격되던 이른바 '골방의 서사'들과 확연히 달라졌고, 1980년대 소설들처럼 계급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존재론적 문제로 사태를 탐문한다"고 말했다.
◆ 현실의 무게를 벗고,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다
시 당선작들도 지하도 계단에 누워 있는 노숙자 청년(양수덕 〈?피쉬〉·경향신문)과 죽어서 관에 눕는 작은아버지(강지희 〈즐거운 장례식〉·문화일보) 등을 통해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의 고통을 바라보지만, 그것은 '부풀어 오른 공기 주머니 속에서 한잠 실컷 자고 일어나/ 배부르지 않을 만큼만 둥실,/ 떠오르고 싶어'(김은주 〈술빵 냄새의 시간〉·동아일보)처럼 이내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극복된다.
시 당선작들을 분석한 문학평론가 이광호 교수(서울예대)는 "가난과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에 놓인 이들을 묘사하는 방식이 상대적으로 어둡지 않은 것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조선일보 시 당선작인 민구의 〈오늘은 달이 다 닳고〉를 비롯한 주요 당선작들이 전통적인 서정시의 소재를 빌려오되 그것을 현실 문제에 맞게 흥미롭게 변형한 것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 때 달은 비누다/(…)/ 오늘은 달이 다 닳고 잡히는 족족 손에서 빠져나가 저만치 걸렸나'의 달은 전통적인 달의 이미지와 달리 욕망을 채우지 못한 현대인의 눈에 비쳐진 허기의 달이라는 것이다./조선일보,2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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