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비애 / 김상미
끝없는 비애 언제나 나는 흔들린다 바람에 흔들리고 사랑과 미움에 흔들리고
아름다움에 흔들리고 꽃에 흔들리고 오래된 바위에 흔들리고
물소리에 흔들리고 우연에 흔들리고 밥과 가족에게 흔들리고 삶과
죽음에 흔들린다
한 번 흔들릴 때마다
내 몸의 모든 솜털 유유히 일어서고
나는 바로 서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자잘한 악행
유유히 되풀이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더럽힘에 대한 그리움
나를 내 밖으로 힘차게 내던지는 불가사의한 그 힘
사람들은 그 힘을 연민이라 부르고
나는 그 힘을 끝없는 비애라고 부른다
끝없는 비애를 먹고 자라고 살찌는 나
언제나 나는 흔들린다 노란 은행잎에 흔들리고 황혼에 흔들리고
함성과 침묵에 흔들리고 검은 웃음에 흔들리고 너에게 흔들리고
믿음과 배신에 흔들리고 사라져가는 모든 것에 흔들리고 잡을 수
없는 욕망에 흔들린다
나로서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이 끝없는 비애
그것이 내가 발음하는 모든 것들 속의 나이고
내가 사는 시대이고
내가 버린 어머니의 영혼이 울며 나를 부르는 목소리이다
흔들리는 순간은 짧고, 그 슬픔은 영원하지만
나는 흔들림으로써 내 삶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과도한 이성이 댕강댕강 나를 잘라먹지 못하도록
절망의, 희망의 오래된 녹슨 문들을 삐꺽,하고 연다
미친 듯 살과 뼈가 부딪는 끝없는 비애의 화신이 되어
수많은 타인들이 가득한 광휘의 순간 안으로
다시 돌아와 나를 끌어들인다
온몸이 환한 빛이 될 때까지
온몸이 칠흙 같은 어둠이 될 때까지
아줌마 / 김상미
한 명의 아줌마 안에 수백 수십 명의 아줌마가 숨어있다
그 수심의 깊이는 아줌마가 아니면 절대 알지 못한다
아줌마는 현재 우리 집 안에도 앉아 있다
아줌마가 생각하는 것은 아줌마들에겐 중요한 것이다
아줌마의 생각을 알려면 아줌마들만의 은어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사회학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들이다
아줌마들은 너무 오래 부엌에만 갇혀 있었다
행복한 식탁에 사슬로 매달려 있는 수저 속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다
그속에서 개성을 잃었다
마음은 마음이 제집인데
아줌마들의 마음은 가족이란 밀집체 속에 너무 깊이 스며 있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얼굴이
아줌마들에겐 없다
아줌마들 중의 더러는 얼굴을 되찾기 위해
노라처럼 집을 뛰쳐나가지만
남편과 자식들이 뜯어먹은 아줌마들의 얼굴은
이미 제단 위에서조차 사라진 지 오래
어디에도 아줌마들의 얼굴은 없다
아줌마는 지금 우리 집 안에도 앉아 있다
얼굴이 없는 아줌마의 기형적 유전자는 아줌마들만이
알아볼 수 있다
아줌마는 나의 어머니이고
내 딸들이다
아줌마!하고 부르면 뭔가‥‥‥
가슴을 조이는 것 같은 슬픔이,
세상에 발가벗겨져 내동댕이쳐진 듯한 서러운 에너지가
울컥, 하고 내 속에서 두 발로 일어선다
아줌마는 내 속에 있다
수백 수십 명의 얼굴 없는 아줌마들처럼 내 속에
우울증 환자 / 김상미
그는 지독한 우울증 환자
의사가 준 알약을 먹고
자신만이 아는 길을 향해 떠난다.
그 길에 한 번도 들어서보지 못한 이들은
지옥처럼 불타고 있다고 말하는 그 길을.
가끔은 꿈속에서처럼 그와 마주칠 때가 있다.
상심의 지렛대 위에 정다운 얼굴들을 올려놓고
그 끝에 앉아 아슬아슬 웃고 있는 듯한.
그럴 때마다 손 내밀어 같이 놀아주고 싶지만
그는 지독한 우울증 환자
입속으로 무수한 알약을 털어 넣으며
몸 안에 있는 창이란 창은 모조리 잠그는 사람.
아무리 그에게 이쪽으로 오라, 이쪽으로 오라 소리쳐도
따뜻하고 포근한 솜이불 대신
싸늘한 북풍을 여행가방 가득 쑤셔 넣고
심연에 그어놓은 무수한 골목길을 따라
언제나 자신에게서 먼 곳으로, 먼 곳으로만 떠나는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로 아름답게 접히는 부분
아무리 그에게 보여주고 입혀주어도
불 꺼진 지하처럼 유독한 마음 안에 모조리 찢어 넣고
그는 간다, 가고 또 간다.
언제나 똑같은 자리
자신을 가두고 또 가두었던 끝없는 고통 속,
새카만 우울 곁으로.
'♧ 문학의 향기 > ♣ 영상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불씨 / 손현숙 (0) | 2011.03.15 |
|---|---|
| 귀가 서럽다 / 이대흠 (0) | 2011.03.15 |
| 매화가 필 무렵 ...복효근 (0) | 2011.03.14 |
| 꽃 마음으로 오십시오 - 이해인 (0) | 2011.03.14 |
| 꽃 피는 봄이 오면 - 이채 (0) | 2011.03.13 |
댓글